‘벌거벗은 세계사’, 아는 사실도 설민석이어서 특별해진 역사 여행

[엔터미디어=정덕현] 인문학이 예능의 소재로 떠오른 건 벌써 오래 전부터의 일이다. 그 중에서도 역사는 이미 MBC <무한도전>에서 종종 다뤘던 것처럼 스테디셀러로 자리한 소재다. <무한도전>에도 나와 독보적인 히스토리텔러로서의 존재감을 보여줬던 설민석은 그 후 <선을 넘는 녀석들>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아예 전체를 이끌어가는 메인 출연자로 자리했다. 그가 들려주는 역사의 이야기들은 그이기 때문에 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면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tvN이 새로 시작한 교양예능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는 아예 제목에 설민석을 담아 넣었다. 그만큼 설민석이라는 인물이 이 프로그램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물론 이 프로그램은 기존의 인문학을 다루는 교양예능들이 갖고 있는 강연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그래도 여행이라는 색다른 형식을 포장지로 선택하는 차별화를 추구했다.

설민석과 함께 떠나는 세계사 여행이라는 콘셉트는 그래서 여행을 떠나기 위해 공항에 은지원, 존박, 이혜성이 출국절차를 밟고 비행기에 오르는 모습을 연출해 넣었다. 그 비행기의 이름은 히스토리 에어라인’. 마치 공항에 세워진 비행기 내부처럼 보이는 세트에 탑승한 출연자들이 설민석과 함께 그랜드 투어(과거 유럽의 젊은 귀족들이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해 석학과 함께 지식을 습득하는 배움여행)’를 떠나는 콘셉트를 연출한 것.

첫 번째 여행지는 독일이었다. 창밖으로 비행기가 이륙하고 도착한 첫 번째 도시는 독일의 뉘른베르크. 그 곳을 첫 번째 여행지로 설민석이 선택한 이유는 이날의 주제인 아돌프 히틀러라는 이름을 끄집어내기 위함이었다. 그곳에서 열린 나치 전당대회에서 만들어진 뉘른베르크법이라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법이 만들어지고 이로써 유대인 인종청소의 비극이 시작됐다는 것.

설민석은 히틀러의 홀로코스트가 어떻게 당시 독일인들의 지지를 받아 실제로 이뤄졌는가를 하나하나 설명해준다. 당시 1차세계대전으로 피폐화됐던 독일의 경제상황이 만든 인플레이션 속에서 대부업을 하던 유대인들을 분노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 그 끔찍하고 처참한 비극의 역사가 설민석의 열정적인 강연으로 소개되었다.

홀로코스트의 끔찍함은 당시 유대인들의 머리카락에서부터 심지어 가죽까지 이용한 앨범을 만들 정도로 상상을 초월했다. 게스트로 출연한 다니엘은 독일사람이지만 자신도 처음 본 그 광경에 아연실색했다. 또한 순수혈통에 집착해 인종청소를 한 것은 물론이고 아리아인의 혈통을 널리 늘린다는 명분으로 인간 교배장을 만드는 나치 히틀러의 광기는 듣는 이들을 경악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설민석은 히틀러가 어떻게 그런 인물이 되었는가를 그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추적했다. 어려서는 화가에 꿈을 갖고 있었던 인물이었지만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았던 그는 꿈을 포기하고 부모가 둘 다 사망하자 독일로 건너가 군인이 되어 승승장구한다. 그리고 정치에 입문해서는 남다른 연설 능력으로 군중들을 선동하며 총통이 되었다는 것. 괴벨스를 만나 날개까지 단 그는 우상화 작업을 통해 신 같은 존재로 등극하게 된다. 하지만 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켜 승승장구하던 히틀러는 결국 소련 침공에서 무너지고 미국이 참전하면서 결국 몰락하게 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설민석은 어찌 보면 시청자들이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생각한 세계사의 한 부분을 더 생생하고 실감나는 이야기로 들려주었다. 당시 독일에서 인플레가 얼마나 심했는가를 0.25마르크였던 빵 한 덩이가 800억 마르크로 올랐다는 구체적 수치로 설명해주고, 그런 경제 현실 속에서 히틀러의 달콤한 목소리가 어떻게 들렸을까를 이해시킨다. 2차 세계대전의 전쟁 양상을 지도를 통해 상세히 설명해준다.

사실 애초 <벌거벗은 세계사>가 세계사 여행이라는 콘셉트를 내세워 영상으로 그 나라를 여행하는 듯한 형식을 부여했지만, 실제로 프로그램의 추동력은 그 역사의 한 대목을 생생하게 설명해주는 설민석에 있었다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뒷부분에 가면 여행이라는 느낌보다 설민석의 빠져드는 강연에 몰입됐던 게 사실이니 말이다.

뉘른베르크에서 시작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은 설민석 강의가 흐름이 끊기지 않고 계속 들여다보게 만드는 힘이 아닐 수 없다. 독일편의 말미에 이런 아픈 비극 속에서도 독일이 현재 EU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과거사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설파하고, 그렇지 못한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다음 회는 아니지만 앞으로 이어질 일본편을 기대해달라는 예고까지 이어놓은 설민석이었다. 설민석이 아니면 이런 몰입감이 가능했을까. 그가 있어 특별해진 역사 여행이 아닐 수 없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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