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페스트라는 시의적절한 주제가 가진 정보의 힘

[엔터미디어=정덕현] tvN <벌거벗은 세계사>가 재정비 후 돌아왔다. 애초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설민석이라는 이름을 지웠다. 그건 이 프로그램이 애초 내세웠던 설민석이라는 스토리텔러 대신 매 회 다른 주제에 따라 출연자가 달라질 거라는 말 말해주는 대목이다.

자문위원의 공개적인 비판으로 인해 야기된 논란에 석사학위 표절 논란까지 겹치며 결국 설민석이 하차를 결정했다는 사실은 이 프로그램에는 적지 않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결국 한 번쯤은 겪을 수밖에 없었을 일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설민석의 이른바 스토리텔러라는 위치와, ‘역사의 신운운하던 지나친 상찬 사이에 놓인 괴리가 언젠가는 터질 뇌관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 돌아온 <벌거벗은 세계사>는 어땠을까. 솔직히 말하면 아쉬움이 반이고 그럼에도 나름 괜찮다는 게 반이다. 물론 이날의 주제인 페스트에 대한 전문가인 의사이자 저자인 장항석 교수가 그 자리를 충분히 채워준 건 사실이다. 그래도 남는 아쉬움은 분명하다. 역시 교양이라고 해도 스토리텔러가 전해주는 그 맛이 확실히 다르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름 괜찮을 수 있는 가능성도 보여줬다. 그건 정보 자체의 시의적절한 선택이 그런 아쉬움을 채워줄 수 있을 만큼 힘이 있다는 사실이다.

돌아온 <벌거벗은 세계사>는 그 주제로 페스트를 잡았고 그래서 14세기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시작해 17세기까지 이어진 이 감염병의 양상과 그 이유 그리고 그 영향을 다각도로 짚어다. 일단 폐스트가 유럽으로 전파되는 과정 자체가 흥미로웠다. 3년 간 공성전을 펼치다 결국 퇴각을 결정한 몽골군이 카파에 페스트로 사망한 사체를 투석기로 투척함으로써 시작된 페스트 감염은 이후 이 곳 사람들이 배를 타고 도망치면서 시칠리아를 거쳐 유럽으로 확산됐다.

하루에 1.6km를 이동했던 페스트의 놀라울 정도로 빠른 확산의 이유 또한 흥미로웠다. 당대에 위생 개념이 거의 없던 유럽의 상황이 이를 부추겼고, 마침 소빙기로 기근과 흉작이 반복되어 영양상태가 좋지 않았던 유럽인들의 약해진 면역력도 그 빠른 전파의 이유였다. 여기에 원인을 정확히 몰라 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과학이 발달하지 않아 엉뚱한 처치나 믿음들이 만들어낸 비극들도 더해졌다. 심지어 불안과 공포를 넘어 희생양을 찾는 상황까지 만들어져 유대인들이 그 마녀사냥의 타깃이 되었던 비극까지 벌어졌다.

<벌거벗은 세계사>가 다룬 페스트이야기는 14세기부터 17세기 사이에 벌어진 일이지만, 그 소재 자체가 코로나 시국과 너무나 유사한 지점들이 많이 충분히 시의적절 했다 여겨진다. 비말로 전염되는 그 양상도 그렇지만, 위생관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잘못된 믿음이 집단감염으로 이어지는 양상도 현재의 코로나 시국에 다시금 생각해볼 여지를 만들어줬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가 가치 있게 여겨진 건, 페스트의 그 과정을 통해 유럽 사회가 르네상스가 열리고, 과학이 발달하는 등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즉 코로나19처럼 힘겨운 상황들을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고 이겨내느냐에 따라 향후 미래의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 이야기는 에둘러 들려주고 있었다.

본래 역사가 가진 힘은 그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그것이 현재의 위치에 어떤 의미와 영감을 주는가 하는데 있다. 그런 점에서 돌아온 <벌거벗은 세계사>는 그 소재가 가진 시의적절함이 세계사의 맛과 의미를 충분히 채워준 면이 있다. 물론 꽤 괜찮은 스토리텔러였던 설민석의 빈자리는 분명히 아쉬움으로 존재하지만, 시의적절한 소재의 선택과 그 역사적 사실을 분명히 꺼내놓으면서도 동시에 그 현재적 의미를 꺼내놓을 수 있다면 그 빈자리는 충분히 채워질 수도 있다는 걸 돌아온 <벌거벗은 세계사>는 보여주고 있다.

설민석이 최근 ‘벌거벗은세계사’에서 그랜드마스터로 활동하다 역사왜곡을 지적받으며 망신을 당했습니다. 이게 과연 설민석만의 문제인지, 어떻게 하면 재발을 방지할 수 있을지 정덕현 평론가가 짚어봤습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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