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피면’, 조여정과 고준의 앙상블은 빼어나지만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확실히 KBS 드라마 <99억의 여자>에 비해 KBS <바람피면 죽는다>가 조여정에게 맞춤옷이다. <99억의 여자>는 스릴러 장르의 드라마지만 회차가 진행될수록 3류 코미디에 가까워졌다. 무게감도 특별한 재미도 없으니 당연히 99억의 돈가방에 휘둘리는 주인공 정서연의 캐릭터도 흐지부지해졌다. 그 캐릭터에 특별함을 만들어내려 애쓰는 조여정의 연기도 그다지 빛을 보지는 못했다.

<바람피면 죽는다>의 강여주는 정서연과 다르다. <바람피면 죽는다>의 주인공 추리소설 작가 강여주는 개성 넘치는 캐릭터다. 바람 피는 남자에 대한 처절한 응징만을 생각하는 소설가. 그리고 살인 이후 그 살인을 덮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는 소설가. 어찌 보면 황당해 보이는 이 인물을 배우 조여정이라면 잘 살릴 수 있다. 몇 년 간 조여정은 늘 그래왔으니까.

조여정은 낯선 인물을 세공해서 연기하는 걸 즐기는 배우다. 그녀는 데뷔 시절 귀여운 미인상의 외모 때문에 로맨틱코미디에 어울릴 법한 배우로 발이 묶여 있었다. 하지만 정작 배우가 연기를 즐기는 캐릭터는 그와는 좀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어딘가 어둡고, 우울하고, 비밀이 많고 복잡한 캐릭터들. 조여정은 이런 종류의 캐릭터들을 다소 느린 정박으로 연기하면서 떠도는 공기처럼 공허한 인물들에 생동감보다는 입체감을 만들어줬다.

다만 조여정이 사랑하는 캐릭터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걸렸다. 주말극이나 미니시리즈가 아닌 4부작 드라마 <베이비시터>의 천은주를 통해 처음 빛을 발했다. 이후 <완벽한 아내>의 이은희를 통해 그녀가 연기하는 방식의 틀을 확고히 잡았다. 그리고 영화 <기생충>의 주인집 사모님 연교를 통해 개성 있는 연기에 코믹감과 생활연기를 더할 줄 아는 여유까지 보여주었다.

<99억의 여자>는 조여정 연기를 감상하기에 아쉬웠지만 <바람피면 죽는다>는 그녀의 그런 연기를 즐기기에 충분하다. <바람피면 죽는다>에서 조여정의 강여주는 코믹과 스릴러를 오가면서 정적이지만 긴장감 넘치는 압도적인 화면 장악력을 보여준다. 아울러 조여정은 굉장히 많은 추리적 설정들이 곳곳에 펼쳐지는 이 드라마에서 긴장감 있는 서사의 중심을 잡아준다.

또한 강여주 남편 한우성을 연기하는 고준의 연기와도 꽤 호흡이 잘 맞는다. 섹시남에서 능글남, 어리바리남을 오가는 고준의 연기는 조여정의 연기와는 전혀 패턴이 다르다. 고준은 한우성의 각기 다른 면모를 장어처럼 미끌미끌 넘나든다. <바람피면 죽는다>에서 두 사람의 각기 다른 색감이 미묘한 조화를 이루며 굉장히 시원하고 유쾌하게 느껴진다.

살짝 아쉬운 것은 국정원 비밀요원 차수호(김영대). 드라마에 굉장히 중요한 한 축을 맡고 있어서 배우 김영대의 연기는 풋풋함만으로 모든 것을 커버하기가 힘들다. 이 때문에 강여주와 김영대가 붙는 장면들은 좀 더 긴장감과 재미가 넘칠 수 있는데, 살짝 맥이 빠지는 느낌이다.

다만 <바람피면 죽는다>의 아이러니한 점은, 배우 조여정에게는 탁월하지만 대중들에게 친숙한 형태의 드라마는 아니라는 점이다. <바람피면 죽는다>는 조금씩 추리적 증거들이 모이고, 여기에 간간이 블랙코미디의 양념을 얹어 한 걸음 두 걸음 진행하는 드라마다. 매운 맛보다는 밍밍하지만 감칠맛이 있는 작품이다. 추리물 마니아들은 좋아하겠지만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종류의 코미디나 스릴러가 아니다. 또한 눈에 확 띄는 새로운 면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 보니 아쉽게도 시청률 흥행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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