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 파헤치는 용감한 지상파 토크쇼 ‘당혹사’가 흥하려면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새로운 프로그램들이 속속 선을 보이는 요즘, TV 시청자들에겐 모처럼 즐거운 시즌이다. SBS에서 준비한 2부작 파일럿 <당신이 혹하는 사이>는 본격적으로 방송 복귀를 알린 윤종신과 <그것이 알고 싶다>로 유명해진 배정훈, 장경주 PD와 손을 잡고 내놓은 교양예능이다. 특이한 점은 설정과 주제다. 일종의 가벼운 부캐플레이가 있다. 메인MC 윤종신이 음모론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만들려는 영화 제작자로 분하고, 자신의 집이라 우기는 멋진 공간에 영화감독 장진과 변영주, 콘텐츠 기획자 송은이, 대세막장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봉태규,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투페이스 빌런 역할을 해낸 장영남, 과학자겸 SF 작가 곽재식 등을 초대해 본격 음모론 탐닉 토크쇼를 펼친다.

첫 번째 이슈로 코로나19의 배후에 빌게이츠가 있다는 항간의 음모론을 다뤘다. 코로나 팬데믹을 예언한 40년 전 SF소설로 시작해 일루미나티, 트럼프 지지자들과 미국 의회 공격을 주도한 큐어런 등 미국 정치, 백신의 위험에 대한 가짜뉴스, 지금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안하무인 시절 빌게이츠의 행동, 다국적 제약사의 인구 감소 음모론, 상주 선교센터를 비롯한 일부 종교인들의 부적절한 선동, 안아키와 백신, 백신 관련 유명한 과거 사건들을 들춰내며 항간에 떠도는 음모론의 그럴듯함에 혹하게 만든다. 물론, 사실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거나 짚어야 할 부분들은 변영주 감독이나 곽재식 작가가 대부분 해결하지만, 미국 주식 전문가 장우석, SBS 의학전문 조동찬 기자와의 영상 통화를 통해 전문 영역에 대한 팩트 체크도 확실히 한다.

음모론을 내세우고 스토리를 만드는 과정이란 흥미로운 설정을 붙이며 눈길을 끈다. 정치, 시사상식, 경제, 문화, 역사 등등 다방면의 교양 지식을 지적 호기심, 문화사적 취향을 갖춘 출연진들이 풀어가는 일종의 살롱 문화를 옮겨온 듯한 팟케스트 방송을 눈으로 보는 것 같다. 지적 유희, 살롱 문화식 정보와 교양의 향연이란 측면에서 TV교양물의 새 장을 열었던 <알쓸신잡>이 떠오르기도 하고, 이슈나 음모에 대해 을 푸는 유튜브 방송의 확장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실제로 윤종신, 변영주, 봉태규는 영화 담론을 푸는 유일한 TV콘텐츠 JTBC <방구석 1> 사단이기도 했다.

하지만, 각자의 전문영역이 있던 <알쓸신잡>에 비해 주제의 폭이 좁고, 강연형 예능에 비하면 지식 습득 차원에서 흡입력이 떨어진다. <당혹사>는 자유로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지만 진행 자체는 발제자가 주도하는 독서모임과 같은 형식이다. 스토리텔러 역할을 하는 장진 감독이 이야기를 이끌고 윤종신을 포함한 나머지 출연자들이 살을 덧붙이는 식이라 각자의 역할, 분야, 캐릭터가 확연히 드러나진 않는다.

여기에 이 모든 설정의 시작이었던 시나리오 완성을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설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빌 게이츠가 연관된 코로나19 음모론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시나리오를 만들어가는 구성은 중후반부로 넘어갈수록 신경 써서 보지 않으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음모론을 다룬다는 점만 특색일 뿐 일반적인 스튜디오 토크쇼와 크게 다를 바 없게 됐다.

그러면서 음모론에서 교양의 효용을 어떻게 전달하느냐는 숙제가 고스란히 남게 됐다. 교양예능, 인문, 강연 프로그램을 찾는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보면 바로 남는 직접적인 효용이다. 하지만, 음모론은 호기심과 탐구의 영역이다. 다방면에 잡다한 지식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흥미를 주고, 몰입감을 안겨 줄 수는 있지만, 알고 싶은 욕구, 삶에 도움이 되는 정보라는 측면에서 한 발 떨어져 있는 콘텐츠다. 기대되는 캐스팅과 실험적인 설정이 있고, 경우에 따라 몰입도도 나쁘지 않지만 출연자들이 매력부터 지식 혹은 정보까지 남는 것이 직관적이지 않다. <방구석 1>에서 발현된 윤종신의 지적 호기심과 탐구력이 무대를 깔아주고, 이른바 지식소매상들이 활약을 해야 하는 그림이지만, 출연진 중 그 누구도 지식소매상의 위엄을 드러내기 힘든 상황이다.

시도도 좋고, 출연진도 기대되고, 음모론을 파헤치는 지상파 토크쇼라니 용감하기까지 하다. 만약, 재정비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시야와 입담의 향연이 강한 조합인 만큼, 시나리오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에 더욱 무게중심을 두거나, 음모론이 주는 교양 차원의 효용으로 설득하거나, 만담꾼들의 입담을 더욱 활발히 터주는 등 확실한 노선을 정하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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