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범잡’의 반면교사, 재발 막으려면 꼭 기억해야

[엔터미디어=정덕현] 일요일 밤 굳이 꿈에 나올 법한 끔찍한 범죄들을 하나하나 복기하는 이유는 뭘까. tvN <알쓸범잡>은 이 스핀오프가 나오게 했던 <알쓸신잡>과는 그 느낌 자체가 다르다. 범죄가 소재다. 그것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충격적인 사건들이 매회 등장한다.

사실 다시 일주일의 시작을 앞두고 있는 일요일 밤에 <알쓸범잡>이 편성되어 있다는 건 어딘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의외로 이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상승곡성을 그리고 있다. 2.6%(닐슨 코리아)로 시작했던 시청률은 꾸준히 상승해 3.6%를 찍었다. 무엇이 우리의 시선을 잡아끌고 있는 것일까.

익산의 교도소 세트장에서 촬영된 <알쓸범잡>이 담은 이야기들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봤던 교도소가 세트장이지만 그 공간에 직접 들어와 보니 느껴지는 남다른 실감에서 시작한다. 윤종신도 장항준 감독도 가능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교도소 견학 같은 걸 할 수 있다면 범죄를 예방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거라고 말했다. 그만큼 자유가 제한되는 그 고통이 그 공간을 체험하는데서 느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날 다뤄진 사건들 중 주목된 건, 박지선 교수가 전해준 이태원 살인사건과 장항준 감독이 들려준 이리역 폭발사고 그리고 정재민 법무심의관이 실제 국제법 경험을 토대로 들려준 보스니아와 르완다 제노사이드였다. 영화로도 나와 잘 알려진 이태원 살인사건은 두 명의 주한미군 자녀들이 공범으로 저지른 사건으로 무려 20년이나 걸려 겨우 진실이 밝혀지고 범인이 검거됐던 사건이었다. 초동수사 부실로 인해 피해자 유족들이 오랜 세월동안 고통을 겪었고 결국 국가는 이 책임을 인정해 배상을 했던 사건.

사실 이 이태원 살인사건은 용의자들이 모두 무죄가 되어 본국으로 돌아감으로써 유야무야될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이 영화화되면서 만들어진 국민적 관심으로 다시 재조명되었고 결국 재조사를 하게 되면서 진실이 밝혀지게 됐던 것이었다. 즉 자칫 덮일 수 있었던 이 끔찍한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게 된 건 모두의 ‘관심’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알쓸범잡>이 굳이 이러한 범죄들을 다시금 복기하는 이유일 게다.

장항준 감독이 들려준 이리역 폭발사고는, 총체적인 ‘안전불감증’이 만든 대참사였지만 ‘이리’라는 지명 자체가 익산으로 바뀌게 된 현재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가물가물해진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이리역에서 700미터 떨어져 있는 민가에 10톤짜리 기관차 본체가 날아갈 정도로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던 당시 사고로 역 반경 4km 이내에 건물 9,530여 채가 파괴되었고 59명이 사망하고 185명이 중상을 입었다. 엄청난 사고였지만, 제대로 된 처벌과 책임 추궁은 이뤄지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결국 이렇게 조금씩 지워진 대참사의 기억은 훗날 그토록 많이 벌어졌던 사건사고들이 이어진 이유는 아니었을까.

정재민 법무심의관이 자신이 국제전범재판소에서 파견근무를 했던 경험을 토대로 들려준 보스니아 내전의 제노사이드는 이런 비인간적인 폭력이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도 벌어졌다는 사실은 시청자들에게는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국제뉴스 보도를 통해 보스니아 내전의 참상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홀로코스트가 얼마나 참혹했는가는 실감하기가 어려웠을 테니 말이다. 결국 전범 카라지치가 국제재판소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보스니아는 진정한 독립을 하게 됐다.

하지만 이러한 비교적 최근에 벌어진 홀로코스트는 보스니아 내전만이 아니었다. 1994년 르완다에서 벌어진 대학살은 100일 동안 무려 100만 명 이상이 사망했던 제노사이드였다. 후투족과 투치족 사이에서 벌어진 보복 대학살은 심지어 종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는 끔찍한 지옥을 만들었다.

박지선 교수는 이러한 제노사이드가 벌어지는 원인에 대해 두 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하나는 ‘타자화’이고 다른 하나는 ‘비인격화’라는 것. 즉 나와 남을 나누고 상대방을 사람보다 못한 존재로 세움으로써 이런 제노사이드 같은 대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늘 같이 살아왔던 이들 사이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여겨진다. 일종의 ‘혐오’가 사회 곳곳에서 여러 양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재, 타자화에 이어 비인격화는 그 혐오 속에서 우리가 늘 발견하던 것이 아닌가.

<알쓸범잡>은 사실 보기가 결코 편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지점들을 굳이 꺼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편해도 들여다보고 잊지 않아야 할 사건들이 존재하고, 그것을 통해 그런 일들이 또 다시 벌어지지 않게 하려는 노력이 절실한 현실을 보면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주말 밤 굳이 끔찍한 범죄들을 복기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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