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용과 안은진의 키스, 가식적인 현실에 진심을 찾아줄까(‘키스는 괜히 해서’)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그래 좋아했지. 밝고 귀여워서 좋아했어. 근데 그거 밝은 게 아니라 대책 없는 거였고 귀여운 게 아니라 정신 연령이 낮은 거였더라. 네 꼴을 좀 봐, 어? 생기라고는 하나도 없이 그냥 축 늘어진 데친 시금치 같다고. 야, 세상의 어떤 남자가 데친 시금치랑 사귀고 싶겠냐?” SBS 수목드라마 <키스는 괜히 해서!>에서 고다림(안은진)에게 전 남친 김정권(박용우)은 그렇게 말하며 이별을 통보한다.

잘 나가는 오피스걸을 꿈꾸지만 현실은 노량진을 전전하는 공시생인 고다림. 취업을 못했다고 데친 시금치 취급을 당하고 남자친구에게 버려진 그녀는, 여동생 결혼식에도 등 떠밀려 제주도로 강제여행(?)을 떠난다. 공시생이라는 걸 숨기기 위해 여동생이 그녀를 미국에서 일한다고 거짓말을 해서다. 그 누구도 고다림의 진가를 알려 하는 사람이 없다. 아무 것도 없는 스펙으로 함부로 판단할 뿐.

한편 스타트업 기업을 유니콘으로 만들어주는 컨설턴트 공지혁(장기용)은 세 치 혀로 전 세계 투자자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지만 정작 자기 좋다고 달려드는 여자들에게는 관심이 없다. 아니 로맨스 자체에 무관심하다. 그런데 김정권을 스카웃하기 위해 제주도에 갔다가 우연히 고다림을 만나고 그녀와 가짜 일일 연인 행세를 하다가 그녀에게 빠져버린다. 정체를 숨기기 위해 했던 키스 한 번이 그의 마음을 주체할 수 없게 만든다. 그 키스 한 번을 남긴 채 바람과 함께 사라진 그녀를 찾기 위해 틈만 나면 그녀가 말했던 ‘할아버지 나무’를 찾아 나설 정도다.

고다림과 공지혁이 키스 한 번으로 엮어지는 이 로맨스는 그래서 ‘신데렐라’ 서사의 틀을 갖고 있다. 스펙은 없지만 고다림의 따뜻한 마음과 남다른 가치를 알아보는 공지혁이라는 왕자님이 등장하고, 바로 그 왕자님이 고다림에게 푹 빠져버리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다. 게다가 공지혁의 아버지 공창호(최광일)는 국내 1위 육아용품 전문기업 내추럴베베의 회장이다. 겉보기엔 단란한 가족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불륜으로 아내를 우울의 늪에 빠뜨린 쇼윈도 가족이다. 드라마는 그 회사로 엄마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애엄마라고 속여 위장취업하게 된 고다림이 다시 공지혁을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신데렐라 서사를 밑그림을 갖고 있지만, 이 드라마가 그 위에 쓰고 있는 메시지는 가식적인 현실과 진가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것이 대학과 집안, 직장 같은 스펙으로 판단되는 현실이지만, 그것이 사람의 진가를 말해주지는 않는다는 것. 유능한 개발자로 스카웃 대상이었던 김정권이었지만 직접 만나 겪어보니 쓰레기였다는 사실이나, 육아용품 회사 회장의 인자한 얼굴을 하고는 아내에게 잔혹한 짓을 해온 공창호의 이야기가 그렇다.

반면에 살기 위해 거짓으로 위장 취업하게 됐지만 고다림은 어쩌면 이 육아용품 회사에 진짜 잘 어울리는 인재일 가능성이 높다. 제주도에서 길을 건너다 아이를 데리고 있는 임산부가 흘린 과일을 일일이 집어주고 아이까지 챙겨주는 모습은 향후 이 인물이 보여줄 진가를 슬쩍 꺼내놓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공지혁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 장면이다.

사랑과 일도 스펙 같은 가짜이자 겉면에 따라 이뤄지는 현실 속에서 고다림과 공지혁이 보여줄 일과 사랑은 그 현실과는 사뭇 다른 진짜다. 그리고 그 진짜는 멀리서 봐서는 알 수 없는 것이고 직접 겪어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가치다. 이 도발적인 로맨스가 일단 키스부터 함으로써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도 그런 의미일 게다. 사랑과는 담을 쌓으며 살아갈 것 같았던 공지혁은 바로 그 키스 하나가 아니라, 그 이면에 담긴 고다림의 마음을 느꼈을 테니 말이다.

육아용품 회사 회장이라는 이유로 이혼은 절대 해줄 수 없다고 말하는 공창호와 달리, 위장취업을 했지만 진심으로 아이를 위하는 마음으로 일할 고다림의 진가가 드러나길 바라는 마음. 그것이 <키스는 괜히 해서>의 신데렐라 로맨스의 외피 밑에 담긴 이 드라마의 진심이다. 질산과 황산이 만나 다이너마이트가 되듯, 안은진과 장기용의 로맨스 연기가 폭발해 드러낼 이 드라마의 진심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gmail.com

[사진=SBS]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