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사랑스러운 캐릭터지만, 정소민·안은진에 정을 붙이기 어려운 까닭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요즘 방송에는 날로 거짓말이 넘쳐난다. 정치 뉴스에서 보는 거짓말이야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니 그렇다 치자. 예능과 드라마에서도 거짓말이 너무나 가볍게 쓰인다. 물론 누구나 작은 거짓말쯤은 하고 살겠지만 문제는 그 거짓말이 신뢰를 무너뜨린다는 사실이 아닐까? 최근 유튜브 <핑계고>에서 조세호가 ‘웃기려고 지어내는 말은 어디까지 허용이 되냐’고 물었다. 유재석이 ‘목적이 있는, 자기 이익을 위한, 또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거짓말은 해서는 안 되지 않겠느냐’라고 답했다. 결국 기준은 ‘내 이익을 위해선가, 아니면 배려인가’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와 같은 상식이 예능에서는 너무나 쉽게 무너진다. SBS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에 아예 거짓말을 습관처럼 하는 출연자가 등장했다. 구독자 140만 채널을 운영하는 정신과 의사 오진승이다. ‘아내와 한 번도 싸운 적 없다’, ‘오은영 박사의 조카다, 배우 오정세와 사촌이다’라고 자기소개를 했고, 방송은 하관이 닮았다며 비교 사진까지 내보냈다. 더 나아가 다른 프로그램에 오은영과 함께 출연한 장면도 보여줬다. 그런데 모두 거짓말이었단다. 관심을 받고 싶어서 그랬단다. 이러고도 상담가로서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재미 삼아 한 농담이라지만 부부 예능에 아이 얼굴까지 노출시킨 건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드라마도 사정은 비슷하다. 요즘 로맨스 드라마를 보면 ‘착하고 열심히 사는 젊은이’로 설정된 주인공이 간 큰 거짓말을 겁 없이 잘도 한다. SBS <우주메리미>와 <키스는 괜히 해서!>가 대표적이다. <우주메리미>에서 유메리(정소민)는 전세 사기로 집을 잃은 뒤 50억짜리 타운하우스 입주권을 얻기 위해 전 남친과 이름이 같은 김우주(최우식)에게 ‘가짜 남편 행세’를 부탁한다. 50억 원이라니, 이건 사실상 편취 목적의 사기가 아닌가.

<키스는 괜히 해서>의 고다림(안은진) 역시 거짓말이 습관처럼 붙어 다닌다. 헤어진 남자친구 앞에서 제주도에 와서 처음 본 공지혁(장기용)을 연인이라고 속이고, 더 나아가 ‘아이 엄마’가 채용 조건인 육아용품 회사에 지원하기 위해 싱글대디인 남사친에게 ‘가짜 부부 행세’를 해달라고 제안한다. 착하고 성실한 인물이라는 설정이지만 정작 남들은 엄두도 못 낼 거짓말을 너무 쉽게 해내는 인물들이다. 두 드라마의 공통점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애꿎은 타인을 거짓말에 끌어들인다는 점이다. 시청자 입장에서 정을 붙이기 어려운 이유다.

그와 반대로 ‘정직’이 기본인 사람도 있다. 채널A <절친 토크멘터리-4인용 식탁>에 출연한 주현미. 연예인이 되기 전 약국을 하던 시절에 ‘마이신 많이 먹으면 내성 생긴다’며 동네 주민들에게 약을 팔지 않아 원성을 샀다고 한다.

실은 나도 그 주민 중 한 사람이었다. 아이 낳고 얼마 되지 않아 손톱 옆이 곪는 ‘생인손’ 때문에 마이신을 사러 갔는데 약을 먹을 게 아니라 외과에 빨리 다녀오라고 권하는 게 아닌가. ‘아기를 재워놓고 나왔다, 병원에 다녀올 시간이 안 된다’고 하자, ‘아기를 데리고 오라, 내가 봐줄 테니 얼른 다녀오라’고 했다. 그래서 진짜 아기를 맡기고 병원에 다녀왔다. 얼마 안 있어 가수로 데뷔하고 약국을 그만두었지만 내내 올곧게 살아오지 않았을까?

예능도, 드라마도 도덕과 상식이 무너진 이들이 너무 흔하다 보니 이런 소소한 일화가 더 귀하게 느껴진다. 거짓말을 별것 아닌 재미로 소비하는 문화, 도덕이 흐려진 콘텐츠, 작가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드라마 속 거짓말이 우리의 기준을 흐트러트린다.

 

정석희 TV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사진=SBS, 채널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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