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릿 핑거스’, 좋은 걸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발표 시간을 가장 싫어하는 송우연(박지후)은 어느 날 우연히 길거리에서 크로키 스케치를 하는 모임 스피릿 핑거스를 보게 되고, 그 모임의 부회장인 구선호(최보민)의 제안으로 모델을 서게 된다. 잘 생긴 구선호에 반해서 그 어마어마한 도전(?)을 하게 된 송우연은 그 후 스피릿 핑거스라는 이상한 모임에 들어가면서 변화한다. 모델 서는 일쯤은 이제 너무나 쉬운 일이 되어가고, 자신 없었던 그림도 점점 실력이 늘어가며 주변에도 친구들이 늘어난다.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스피릿 핑거스>가 송우연의 변화를 통해 보여주는 건 ‘자존감 회복’이 어떻게 그 사람을 생기 발랄하게 만드는가 하는 것이다. 모델을 선다는 것은 누군가의 앞으로 나선다는 것이고, 자신을 어떤 형태로든 표현한다는 뜻이다. 또한 그 모델을 그림으로 그려낸다는 건 저마다의 개성적인 표현을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스피릿 핑거스라는 그림 동아리가 하는 모델 서기와 그림 그리기는 모두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원작 웹툰이 가진 힘이기도 하지만, <스피릿 핑거스>의 매력은 귀여움 한도 초과의 순수한 로맨스에서 나온다. 송우연은 첫눈에 반한 구선호를 짝사랑하지만 그 마음을 드러내지 못한다. 너무나 ‘멋진 사람’이라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가 같은 동아리의 통통 튀는 매력의 소유자 민트 핑거 남그린(박유나)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더더욱 마음을 숨긴다. 멋진 사람과 멋진 사람이 어울리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며 자신은 그들과는 거리가 멀다 여긴다.

좋은 걸 좋다고 말하지 못하는 건 그랬다가 편안한 오빠 동생의 관계조차 깨지고 서먹해질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것은 구선호의 마음을 알고 있지만 그와의 남자 여자 관계를 꺼리는 남그린의 두려움이기도 하다. 남그린은 연인이 되면 너무나 편하게 지냈던 친구로서의 구선호와의 관계가 불편해질 거라 여긴다. 그래서 애써 선을 긋지만, 구선호가 군대에 갈 거라는 이야기를 하자 충격을 받는다.

좋은 걸 좋다고 말하지 못해 가슴앓이하고 때론 설레는 순수한 로맨스의 매력이 넘쳐나는 드라마지만, ‘스피릿 핑거스’라는 독특한 동아리가 던지는 메시지는 이 서사를 확장시킨다. 즉 그림을 좋아하지만 공부 잘했던 오빠와 늘 비교당하며 오로지 성적에만 집중하라는 엄마에게 그 좋아하는 걸 말하지 못하는 송우연의 이야기가 그렇다. 로맨스를 넘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나 꿈 같은 것들 역시 드러내서 좋아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획일화된 억압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여기에는 담긴다.

그래서 이 귀여움 한도 초과의 청춘 로맨스 드라마는 들여다보면 볼수록 사랑의 차원을 넘어서는 억압된 삶을 풀어주는 힐링과 위로의 차원을 담는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의 캐릭터화된 인물이 주인공 남기정(조준영)이다. 자존감이 바닥인 송우연과는 정반대로, 학생이지만 피팅 모델을 하며 본인에 대한 자의식이 과잉인 이 인물은 우회나 후진을 모르고 오로지 직진하는 인물이다. 물론 모태솔로 연애 초보로 자신이 왜 그렇게 화가 나고 왜 그렇게 송우연에 대해 신경쓰는 지 잘 몰라서 전전긍긍하지만, 끝내 그 답을 찾아가는 그런 인물.

돌려 말하지 못하는 이 인물은 송우연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데도 거침이 없다. 자격지심을 드러내며 자신이 10원짜리 동전 같다고 말하는 송우연에게 남기정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이렇게 말한다. “그거 아냐? 너 예뻐. 내 눈에 너 예쁘다고.” 그리고 송우연에게 가슴이 떨리는 걸 느낀 그는 엉뚱하게도 이런 말을 꺼내놓는다. “이제 알았다. 내가 기분 안좋았던 이유. 나... 좋아해라.” 표현이 어설프지만, 숨김없이 좋은 걸 좋다고 말하는 남기정은 그래서 연애 초보 애벌레 같지만 더할 나위 없이 건강한 청춘이다.

<스피릿 핑거스>의 투명하고 순수한 로맨스는 사랑의 차원을 넘어서는 ‘자기 존재의 표현’이라는 삶의 해방감을 느끼게 해준다. 모임에 들어와 서서히 자신의 색깔을 찾아가는 송우연의 모습이나, 그런 그녀를 옆에서 챙겨주며 연애를 알아가는 남기정, 또 좋아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구선호와 남그린의 성장담은 로맨스 그 이상의 힐링을 안겨준다.

아마도 이 드라마의 귀여운 도발은 입시경쟁부터 취업전쟁에 이르는 단색만을 요구하는 우리 사회의 획일화 속에서 개개인의 색깔과 자존감을 잃게 만드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에서 비롯됐을 게다. 좋은 걸 그냥 좋다고 말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스피릿 핑거스’ 같은 사회를 그래서 꿈꾸게 됐을 게다. 그것은 너무나 작아 보여 자극적이고 강해 보이는 드라마들 사이에서도 이 분명한 색깔을 드러내는 드라마가 오히려 도드라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지만 분명한 색깔을 가진 마음들이 하나하나 모여 어떤 거대한 변화를 보여줄 수 있는지 이 드라마를 통해 저마다 확인해볼 수 있기를.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gmail.com

[사진=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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