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장 이야기’, 블랙코미디인데 결코 쉬운 웃음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끝없이 추락한다. 그리고 결코 작은 판타지도 보여주지 않는다. 이름이 낙수일 때부터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이 인물은 물처럼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아니 추락한다. JTBC 토일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이하 김부장 이야기)>는 그 추락하는 김부장이 왜 그렇게 추락할 수밖에 없는가를 추적한다. 그건 김낙수(류승룡)라는 한 인물의 이야기지만, 그래서 서울 자가에 대기업을 다녔던 부장들 혹은 그와 비슷하게 세상의 성공 기준에 맞춰 살았던 가장들에 대한 일종의 보고서처럼 보인다.

“저 현관부터 화장실. 그리고 수겸이, 어? 네 방까지가 사원, 대리 10년 월급, 응? 그리고 자 주방, 다용도실 그리고 여기 침실 여기까지가 과장 5년 월급, 그 다음이 마지막으로 이, 차장 5년 동안 피 터지게 일해서 그냥 어? 탈탈 털어서 겨우 겨우 산 게 이 거실하고 저 베란다야, 어? 당신이 그냥 하도 이사 다니는 거 지긋지긋하다고 해서 내가 마지못해 샀지만 두 사람 명심해, 응? 이 집은 내 51년 인생의 트로피야.”

김낙수가 서울에 자가로 집을 샀을 때 가족들을 앉혀 놓고 했던 그 말은 이 경쟁적인 한국사회에서 가장들이 얼마나 짠한 존재들인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김낙수는 그때 뿌듯한 마음에 그런 이야기를 늘어놨겠지만, 51년 인생을 탈탈 털어서 아파트 한 채 산 걸 트로피로 여기는 삶이란 얼마나 쓸쓸한가.

그 초라함과 허망함 그리고 쓸쓸함은 김낙수 부장이 결국 회사에서 지방으로 좌천되고 그곳에서도 인력을 감축하라는 압력을 받다 결국 스스로 퇴사한 후, 부동산 사기를 당해 퇴직금을 날리고 대출 빚까지 떠안게 된 처지를 통해 보여진다. 그런 일이 퇴직 후 1년도 되지 않아 벌어진다. 회사 다닐 때부터 밀려난 동기의 자살 시도를 접하며 공황장애 증상을 겪었던 김낙수는 부동산 사기까지 당하자 더 심한 증상을 드러낸다. 결국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트로피’만으로는 살 수 없다며 집을 내놓는다. 51년 인생은 그렇게 순식간에 무너져 간다.

대기업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빛 좋은 개살구다. 어려서 자기 바나나를 뺏어 먹고도 왜 그랬냐는 추궁해 오히려 뺨을 때리던 형과 그럴 수도 있지 않냐는 부모 밑에서 어떻게든 형보다 성공하려 했던 김낙수는 그래서 서울대도 가고 대기업에도 들어갔다. 하지만 그렇게 아등바등 대기업에서 부장까지 오른 김남수의 말로는 어땠나. 형처럼 따랐던 상무는 자신을 버렸고, 회사는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후 단물 빠진 껌처럼 버리지 않았던가.

그래서 어쩌면 서울대니 대기업이니 하는 간판을 따라온 김낙수는 그 일들이 자신이 원하고 하고 싶은 일이어서가 아니라, 그런 자신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인정받고 싶은 경쟁심 때문에 해왔던 것처럼 보인다. 자식에게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해주겠다며. 그래서 학원도 보내고 과외도 시키고 재수까지 해서 연대에 자식을 보냈다. 하지만 그게 진정 자식이 원하는 삶이었을까. 김낙수의 그 이야기를 들은 정신과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그게 지금 제 귀에 어떻게 들리는지 아세요? 나 못 먹었던 바나나는 마음껏 사줬다. 그렇게 들립니다. 부장님 때와는 다르게 한 송이에 3천 원 하는 이 바나나요.”

<김부장 이야기>는 세상의 성공했다는 기준에 맞춰 살아온 중년들의 쓸쓸한 삶을 되짚는 드라마다. 세상이 원하는 기준 속에서 대기업까지 다녔지만 결국은 잘려서 진짜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쓸쓸한 김부장의 이야기. 그래서 이 드라마는 결코 쉬운 판타지를 그려넣지 않는다. 워낙 절실하고 진지하게 쓴 작품이라 섣부른 판타지가 들어갈 수 없는 핍진함이 채워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드라마, 아니 우리 시대의 김부장들이 그나마 숨통을 틀 수 있는 작은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이 드라마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결국 퇴사한 김부장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가 보여준 반응이 그 작은 희망처럼 보인다. 멍하니 소파에 앉아 정신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는 김낙수를 보고 아내는 직감한다. 남편이 그 오랜 세월 다니던 회사를 나왔다고. 그러더니 갑자기 밝은 얼굴로 남편에게 다가와 아내는 물을 튕긴다. 마치 장난하듯이.

“어이. 어이 백수. 김백수씨? 와이프는 주말에 면접인데 일할 건데, 너는 놀게? 퇴직금 얼마 나왔어, 어? 내놔. 내놔, 내놔. 어? 나 가방도 사고 옷도 사고 해외여행도 가고, 어? 어? 돈 줘, 돈 줘, 돈 줘, 돈, 어? 내가 100만원 주면 내가 아주 라면을 기똥차게 하나 끓여준다....” 그렇게 한참을 장난을 치던 아내는 지긋이 김낙수를 향해 손을 벌리며 말한다. “고생했다. 김부장.” 그 한마디가 얼마나 큰 위로였을까.

그런데 그 상황에서도 이 바보 같은 가장은 말한다. “미안해.” 도대체 뭐가 미안하다는 걸까. 수십 년 세월을 그 전쟁터 같은 곳에서 지긋지긋하게 싸우다 돌아온 그가 아닌가. 그렇지만 좀 더 버텨주지 못했다는 게 오히려 미안한 우리네 김부장들이다.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아휴.” 아내는 그 남편을 꼭 안고 등을 두드려준다. 참았던 뜨거운 눈물을 함께 흘린다.

어쩌면 우리네 김부장들이 살아온 삶을 풀어낼 해법 따윈 없을게다. 중요한 건 세상의 기준에 맞춰 가족 모두가 남부럽지 않게 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그가 이제는 세상이 아닌 온전한 자신의 행복을 향해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거기 자신을 이해해주고 고생했다 말해주는 가족이 있다는 거다. 거기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김부장 이야기>는 말하고 있다. 결코 쉬운 판타지를 섣불리 내보이지 않고 그 밑바닥까지 들여다보려 한 이 작품의 진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gmail.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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