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도시’, 익숙한 서사에도 몰입감 부여한 지창욱과 도경수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평범하게 살아가던 한 남자가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흉악범으로 체포된다. 자신이 저지른 살인이 아니었지만, 자신이 저질렀다는 증거들이 넘쳐나고, 결국 감옥에 수감된 그는 이 사건의 진상을 알아채게 된다. 누군가 자신의 동선과 흔적들을 하나하나 가져다가 증거로 세워 그를 살인범으로 세워 놓았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탈옥과 복수의 서사다.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조각도시>의 서사는 익숙하다. 그 흔한 복수극의 서사가 그것이다. 빌런에게 모든 걸 빼앗긴 주인공이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돌아와 복수를 펼치는 이야기는 <몬테 크리스토 백작>부터 <글래디에이터>까지 이어지는 복수극의 전형이다. 억울하게 감옥에 수감된 주인공 박태중(지창욱)은 사건의 전말을 알고 난 후 탈옥을 계획한다. <프리즌 브레이크> 같은 탈옥의 과정이 펼쳐진다.

게다가 <조각도시>의 최강빌런 안요한(도경수)은 죄수들을 데려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비밀 레이싱장에서 죽고 죽이는 레이스를 벌이게 한다. <글래디에이터>의 원형경기장이 떠오르고, 부자들을 모아 놓고 벌이는 경기라는 점에서는 <오징어 게임>이 떠오르기도 한다. 즉 <조각도시>는 우리에게 익숙한 장르물들의 면면들을 조각처럼 채워 넣은 작품이다.
물론 한 가지 분명한 차별점은 있다. 그건 원작인 영화 <조작된 도시>가 처음 보여줬던 것처럼 CCTV 등으로 모든 이들의 사생활이 노출되고, 이것이 얼마나 조작 가능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가를 범죄 느와르를 통해 그려낸 지점이다. <조각도시>는 이 설정을 가져와 보다 장르적으로 도파민을 자극하는 극적 복수극으로 리메이크했다.

익숙한 장르물의 조각들이 느껴지지만, <조각도시>는 바로 그 액션과 스릴러, 복수극 장르 문법의 명확한 타격감을 제대로 구현해낸 작품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결과에 도달할 것인지를 알면서도 빠져들게 만든다. 박태종의 분노와 복수심은 물론이고, 그에 대한 연민을 갖는 노용식(김종수)과 그의 딸 은비(조윤수) 같은 동조자들의 감정들이 더해져, 이 끔찍한 범죄의 조각을 일삼는 무리들에 대한 처절한 응징을 바라게 만들어준다.
여기에 도드라지는 건 확실한 복수의 동기부여를 하게 만드는 빌런들의 역할이다. 안요한이라는 캐릭터가 흥미로운 건 권력자들의 자제가 저지른 살인을 무고한 이에게 뒤집어 씌우는 이른바 ‘조각’을 하는 대가로 자신이 만든 조각상을 의뢰자가 고가에 사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런 설정은 이 빌런이 그저 그런 범죄자가 아니라, 자신이 하는 범죄를 마치 조각하듯 예술의 차원으로 여기는 사이코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별다른 감정동요를 거의 보이지 않고, 모든 걸 자신이 계획한 대로 이루려는 이 빌런의 차분함은 바로 그것 때문에 더 섬뜩한 느낌을 준다. 도경수는 진짜 미친 사람처럼 이 역할을 찰떡같이도 소화해낸다. 워낙 연기를 잘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빌런 역할에서도 도경수의 연기는 진가를 발휘한다. 여기에 요한의 VIP 고객으로 등장한 백도경 역할의 이광수의 미친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껄렁껄렁하면서도 잔혹한 이 빌런은 요한과는 또 다른 색깔의 악역을 그려낸다.
원작 영화인 <조작된 도시>에서 <조각도시>로 이름을 바꿔 리메이크된 데는 바로 이 빌런의 존재를 좀 더 ‘예술적으로(?) 미친’ 존재로 세워둔 점에서 잘 어울린다. 조작의 차원이 아닌 조각의 차원으로 미친 인물이랄까. 물론 몸 사리지 않고 액션 연기를 펼치는 지창욱의 존재감이 압도적이지만, 역시 조작을 조각으로 가능하게 해준 건 전적으로 도경수의 미친 연기력이 아닐 수 없다.

<조각도시>는 여러 장르물의 조각들을 잘 이어 붙인 작품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소 과하다 싶은 장르의 변주가 들어가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물의 강력한 감정들이 얹어짐으로써 그 흩어질 수 있는 조각들을 단단히 붙여준다. 특히 그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 무고한 서민들이 권력자들에 의해 조각 당하는 설정은, 평범한 우리들에게는 이 복수극에 보다 깊은 몰입감을 갖게 해주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저들의 조각을 산산이 부숴 그 추악한 실체를 만천하에 공개하고픈 욕망을 자극하는 그런 작품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gmail.com
[사진=디즈니 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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