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이루어질지니’보다 ‘은중과 상연’이 더 긴장감 있는 이유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로맨틱 코미디 대가 김은숙 작가와 톱 아이돌 배수지의 <다 이루어질지니>는 넷플릭스에 공개되자마자 큰 사랑을 받았다. 다만 김은숙 작가의 넷플릭스 히트작 <더 글로리>에 비해서는 시청자들의 호불호, 아니 불호 쪽이 훨씬 강한 편이다.

감정 결여 인간 기가영(배수지)은 두바이 여행 중에 천여 년 만에 인간세계로 돌아온 램프의 요정 지니 이블리스(김우빈)를 만난다. 가영은 램프하나 잘못 골랐다가 인생이 꼬인 것이다. 지니는 흙냄새 나는 주인 가영을 단번에 알아보지만, 가영은 이 지니가 귀찮고 짜증나서 미칠 것 같다. 지니는 세 가지 소원을 빨리 말하라는데, 가영은 세 가지 소원보다는 이 귀찮은 녀석을 떼어내고만 싶다.

하지만 어느새 두바이에서 한국까지 따라온 지니. 인간에 대한 애정은 1도 없지만, 할머니가 지시한 룰을 지키며 자신의 루틴대로 살아가던 가영 앞에 지니는 예측 불가의 사건을 자꾸만 일으킨다. 그리하여 정령과 감정 결여 인간은 로맨스인지, 결투인지, 판타지인지 알 수 없는 혼란의 세계로 빠져든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영은 어느새 사랑이란 감정을 배워나간다.

아마도 김은숙 작가 특유의 주인공들끼리의 ‘티키타카’를 좋아하는 시청자나 이야기 전개보다 주인공들의 말싸움 속에 쌓이는 케미를 즐기는 시청자라면 <다 이루어질지니>가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김은숙 작가 특유의 ‘티키타카’에 질린 시청자라면, <다 이루어질지니>는 흥미 있는 콘텐츠는 아니다.

회차 초반 두바이에서 시작해 한국의 시골마을로 이어지는 지니와 가영의 서사는 생각보다 흥미롭지 않다. 지니와 가영의 말장난 같은 김은숙 스타일 대사에서 연륜이 아니라 과잉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특히 ‘디즈니’를 ‘디즈니’로 말하지 못한 것이라거나 몇몇 조연 캐릭터들의 유머는 대작가의 노쇠함마저 느껴지는 부분이다.

특히 <다 이루어질지니>는 김은숙 작가의 다른 작품과 달리 주인공 커플 가영과 지니의 서사가 중심이다. 이 서사가 생각보다 흥미롭지 않다는 것도 문제지만,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가영 역의 배수지의 연기 또한 아쉽다. 전작 쿠팡플레이 <안나>에서의 호연이 무색하게 무미하게 느껴지는 연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폭군의 셰프> 임윤아가 교과서 위주로 공부한 연기 같다면, 배수지의 연기는 참고서 위주로 공부한 연기 같다는 인상이 짙다. 그 때문에 임윤아는 기본적인 인물의 패턴을 연기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폭군의 셰프>에서 보듯 기본 이상의 감정 연기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맥이 빠진다. 배수지의 연기는 그 반대. 배수지는 대사가 없을 때, 혹은 어떤 감정이나 포인트를 보여주는 한 장면에서 시청자를 잡아끄는 힘이 있다. 다만 오히려 기초적인 틀, 평범하고 일상적인 순간들의 장면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연기가 부족하다. 그 때문에 상당수의 장면이 밋밋하게 흘러가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감정 결여 인간 캐릭터라고 무조건 무미하게 연기하는 게 최선은 아니다.

같은 시기에 넷플릭스에 공개된 <은중과 상연>의 류은중 역의 김고은과 천상연 역의 박지현이 보여주는 연기와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 확연해진다. <은중과 상연>은 <다 이루어질지니>에 비하면 지극히 느린 전개이지만, 두 배우가 보여주는 일상의 미묘한 감정선을 오가는 섬세한 연기 때문에 오히려 화려한 <다 이루어질지니>보다 더 긴장감 있고, 큰 감정의 진폭을 경험할 수 있다. 물론 드라마 주인공 캐릭터 구성이나 연출이 만들어내는 호흡 또한 <다 이루어질지니>보다는 <은중과 상연> 쪽이 훨씬 훌륭하다. <은중과 상연>은 오랜만에 드라마가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닌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다만 <다 이루어질지니>는 배우 김우빈의 연기를 보는 재미는 충분하다. 2013년 SBS <상속자들>에서 조각공룡 같은 신선한 매력의 마스크로 등장했던 신인 배우는 이제 다양한 코믹 연기를 선사하면서도 훅 들어오는 매력의 정령 지니를 연기하기에 손색이 없는 장면들을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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