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범잡’이 얄팍한 청춘 드라마보다 시청률 높은 이유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최근 종영한 tvN <알쓸범잡>은 한국에서 일어난 범죄에 대해 프로파일러, 법조인, 물리학자, 영화감독이 대화하는 예능이다. 전작인 <알쓸신잡> 시리즈와는 초기에는 결이 비슷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이 프로그램만의 색깔을 만들어냈다.

<알쓸범잡>의 좋은 점은 범죄서사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더구나 음침한 범죄 뒷담화가 아닌 우리의 일상에 범죄가 어떻게 발생하고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예능과 교양 중간의 어떤 긍정적인 지점을 만들어냈다. 시청률도 초반의 정체기를 겪은 이후 안정적으로 3.5% 안팎을 유지했다.

반면 각 방송사에서 시작한 청춘드라마들은 시청률에서건 평가에서건 지지부진하다. 캠퍼스의 로맨스와 고민이 주를 이루는 KBS <멀리서 보면 푸른 봄>의 시청률은 전작 <오월의 청춘>의 기세를 잇지 못하고 2% 중반에 머무르고 있다. 두 대학생의 위험한 연애를 그린 JTBC <알고 있지만>은 2회만에 시청률 1%대로 주저앉았다.

시청률이 전부는 아니지만 청춘드라마들이 예전만큼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최근의 두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멀푸봄>은 조별과제, 가짜 연애, 왕따 문제 등을 다루고 있지만 그 어느 것도 깊이 있게 파고드는 힘은 없다. 알고 보면 복잡할 수 있는 대학생간의 미묘한 감정 서사를 굉장히 순화해서 그려가기 때문에 아기자기한 화면이 보여주는 사랑스러움 외에 깊이 빠질 요소는 많지 않다. 이미 <넷플릭스>를 통해 스페인 드라마 <엘리트들> 등을 섭렵한 시청자들에게는 <멀푸봄>은 고등학생도 아닌 중학생의 연애처럼 느껴질 것이다.

한편 <알고 있지만>은 20대의 달콤한 로맨스가 아닌 위험한 사랑을 그린다. 아쉽게도 젊은 주연 배우들은 위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주인공 유나비를 연기하는 배우 한소희는 분명 특유의 오묘하고 우울한 아우라가 있다. 하지만 그 분위기는 <알고 있지만>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유나비가 위험한 남자 박재언에게 빠져드는 감정 말고 여주인공의 별다른 서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유나비가 어떤 감정 연기를 보여주건 결국 드라마는 지루하게 느껴진다.

결국 <알고 있지만>의 위험한 사랑에서 위험의 몫은 남자주인공이 박재언이 떠안고 있다. 송강이 연기하는 박재언은 언뜻 과거 에로틱 영화의 명작 <나인 하프 위크>의 위험한 유혹자 존을 떠오르게 하는 인물이다. 물론 송강에게 <나인 하프 위크>의 배우 미키 루크의 주니어 버전 같은 연기까지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애매모호한 표정을 짓고 질겅대는 말투로 말한다고 모호하고 섹시한 유혹자 캐릭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이 배우에겐 <나빌레라>에서 그려낸 젊은 백치미 남자의 멍한 건강함까지가 한계인 듯싶다.

<멀푸봄>과 <알고 있지만> 모두 청춘물을 표방하지만 그저 표방에서 끝난다. 청춘이 원하는 것, 두려워하는 것, 궁금해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결론적으로 시대에 대해 고민이 없다. <오월의 청춘>이 옛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젊은층에게 사랑 받은 이유는 어쨌든 옛날의 그 20대의 고민들이 현실감 있게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알쓸범잡>이 시간이 흐를수록 젊은 세대들에게 인기를 끈 이유도 사실은 거기에 있다.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범죄는 먼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 가까운 곳에 함께한다. 아날로그 시대처럼 범죄는 교도소 안의 현실이 아니다. 가상세계와 현실세계가 맞물리는 지금 범죄는 우리의 일상 바로 곁에 있기 때문이다. 트위터의 마약거래부터 N번방의 비극, 그리고 보이스피싱이나 로맨스스캠까지. 누군가는 그 범죄에 이용당하거나 가담하고, 또 누군가는 그 범죄들에 대한 공포에 시달린다. 우리는 블록체인처럼 범죄와 일상, 사이버세계와 현실이 이어진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알쓸범잡>은 이런 범죄 사례 하나하나를 분석하면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해결하는 것은 물론 고민할 거리들을 던져준다. 범죄의 원인과, 어떤 피해자들이 생성되며, 어떻게 어이없는 판결들이 이뤄지는지 알려준다. 또한 제주 4.3이나 해외의 대량학살 범죄 등을 범죄의 비극 속에 인류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들려주기도 한다. 또 우울증과 자살에 대해 함께 대화 나누며 해결 방안에 대해 전문가의 조언을 듣기도 한다.

이처럼 <알쓸범잡>은 얄팍한 청춘 드라마가 스토리텔링으로 미처 긁어주지 못한 현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많은 CCTV만큼 수많은 범죄의 가능성과 마주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알쓸범잡>의 현실적 범죄 토크는 공포인 동시에 안도감을 주었을 것이다. 상투적인 문구지만, 좀 더 깊이 아는 것은 의지할 것 없는 이들에게 든든한 힘이니까.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tvN, KBS,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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