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범잡’, 일상어처럼 쓰는 분노조절장애? 폭력이다

[엔터미디어=정덕현] “분노조절장애라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것은 잘 보면 장애가 아니에요. 장애는 조절이 안돼야 장애인 거잖아요. 운전을 하다가 앞차랑 시비가 붙어서 내렸는데... 마동석이 내렸다. 그럼 분노가 쏙 들어가죠? 바로 조절이 되는 건 장애가 아니죠. 그러니까 마동석을 보고도 달려들어야 장애인 거죠. 조절이 안 되는. 근데 내린 사람이 나보다 약해 보이거나 (그래서 더 덤비면) 그건 장애가 아닌 거죠. 폭력이죠.”

우리가 흔히 일상어처럼 쓰고 있는 분노조절장애라는 표현은 과연 맞게 쓰고 있는 걸까. tvN <알쓸범잡>의 박지선 교수는 이 표현에 대해서 마동석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이 찰떡 같은 비유가 저격하고 있는 건, ‘장애라는 표현이 마치 본인은 그러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조절이 안돼서 생긴 일인 양, 사건을 포장하는 면이다. 그건 장애가 아니라 그저 약자에 대한 폭력일 뿐이라는 것.

흔히 버스기사를 무차별 폭행했다는 사건 보도나 지하철에서 마스크 때문에 큰 실랑이가 벌어졌다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분노조절장애라고 전가의 보도처럼 쓰는 표현은 피해자 입장에서 보면 또 다른 두 번째 피해를 입히게 되는 일이 될 수 있다. 자신이 한 일을 마치 통제되지 않는 다른 원인 때문에 벌어진 일인 양 말하는 유체이탈의 뉘앙스가 들어 있어서다.

박지선 교수는 한국이 분노에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살인 범죄자 통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한국의 살인 범죄자 연령대가 전 세계의 분포와 너무 다르다는 것.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일탈행동을 많이 하는 이들은 10대 후반, 20대 초반인데 반해, 우리는 살인범죄자수 중에서 4,50대가 절반에 해당할 정도라는 것이다. 박지선 교수는 이 수치가 말해주는 건 이 문제가 한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고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틀의 문제라고 했다.

분노의 표출만큼 좋지 않은 것이 분노의 억압이라는 박지선 교수는 4,50대의 범죄율이 높은 건 결국 부정적인 상호작용이 계속 돼서 분노가 축적이 돼서 저지르는 범죄라는 추론이 가능하다고 했다. 반면 10대에 범죄율이 낮은 건, 입시제도 때문에 24시간 통제되고 있어서라는 것. 우리 사회가 가진 억압과 분노의 축적 그리고 범죄의 상관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날 다뤄진 데이트 폭력이나 스토킹 역시 우리가 흔히 분노조절장애라는 표현으로 종종 다뤄지기도 했던 사건 유형들이다. 하지만 박지선 교수가 소개한 대구에서 벌어졌던 사건의 경우, 데이트 폭력에서부터 점점 확대되어 끔찍한 살인으로까지 이어진 그 과정이 단순히 조절 실패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주도면밀하게 계획해서 벌어진 그 사건은 약자를 향한 끔찍한 폭력이었다는 것.

<알쓸범잡>은 우리 사회에 점점 많아지고 있는 분노와 이로 인해서 생겨나는 범죄들을 다각도로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줬다. 사회의 구조적인 틀이 어떻게 분노로 이어지고 어느 순간 폭발하게 되는가를 알려주면서 동시에 그것이 장애로 치부될 수 없는 폭력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줬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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