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했어, 김 부장”...이 평범한 한 마디가 모두의 심금을 울린 까닭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JTBC 토일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의 캐스팅이 알려졌을 때, 시큰둥하면서도 뭔가 기대가 되었다. 주인공 김낙수 역에 류승룡이 너무나 찰떡이어서 다소 김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던 건 사실이다. 입사 25년 차 김 부장이라면 평소 류승룡이 보여준 연기로 충분히 소화를 하고 남을 만한 배역으로 보였다. 반면 특별한 킥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변신도 없을 법한 캐스팅이니 말이다.
게다가 류승룡은 배우 염정아와 함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갑갑한 남편을 얼마나 잘 그려냈나? 그럼에도 김낙수 캐릭터로 류승룡이 결정됐을 때 희한하게 기대가 되는 부분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배우 류승룡이 지닌 특유의 능청스러우면서도 은근 힙한 유머감각 때문이었다.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뭔가 류승룡의 개그 연기에는 다른 개그파 배우들과는 다른 특유의 멋이 있다.

예상대로 <김 부장 이야기>의 김낙수는 류승룡이 보여줄 수 있는 연기의 최대치를 보여주는 캐릭터다. 물론 극 초반 눈치 없고 밉상이고 답답한 김 부장을 보고 있노라면, 몇몇 시청자들은 트라우마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든 그런 류의 직장 상사 때문에 숨이 턱턱 막힌 인생의 위기가 존재했을 테니 말이다. 그만큼 류승룡은 조직에 뼈를 묻었지만, 은근 능력치가 떨어져 사람 답답하게 만들면서 고집도 센 간부 역할을 잘 소화해냈다. 하지만 그의 연기에서 리얼리티만이 있었다면, <김 부장>은 화제작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을 것 같다.
류승룡은 김낙수를 연기하면서, 특유의 미운 인물에 미워할 수 없는 능청스러운 개그 연기를 적절히 녹여냈다. 그 결과 시청자는 ‘썩소’를 짓다가도 어느 순간 ‘김 부장’에 감정이입 되거나 그를 응원하는 희한한 감정의 흐름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당연히 달콤씁쓸함의 아이러니를 느끼는 미소를 짓게 되는 것이다. 아, 류승룡의 개그 연기는 ‘멋’있기도 하지만 ‘맛’도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한편 좋은 드라마는 꼭 주인공만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김낙수의 ACT 기업 식구들이 보여주는 연기는 직장생활의 생생함을 생생하게 그려내기에 충분하다. 류승룡이 원래 또 ‘독고다이’보다 주변 캐릭터와 호흡하는 주연배우형이라서 그 그림이 꽤 진솔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가 후반부에 이른 지금 의외로 <김 부장 이야기>의 킥은 류승룡이 아니다. 이 드라마의 킥은 배우 명세빈 쪽에 기울어지는 것 같다. 배우 명세민은 <김 부장 이야기>에서 김낙수의 아내인 박하진으로 등장한다. 박하진은 언뜻 뻔한 ‘현모양처’를 그려낸 듯한 오해를 살 수도 있다. 소위 바가지를 긁는 아내라기보다 남편의 고충을 이해하고 그를 위로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녀를 단순히 소비형 ‘현모양처’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그녀가 남편에게만 현모양처가 아니라 그녀의 동생, 그리고 이웃에게도 항상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실 <김 부장 이야기>는 김낙수의 퇴직 서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가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김낙수는 조직의 일원으로서 위, 아래가 확실한 남성기업의 체계에 순응된 존재였다. 하지만 그는 그 곁다리로 밀리면서 오히려 그 외에 다른 세상에서 다른 감정을 체험한다. 그가 하찮게 느낀 소박하지만 좋은 사람들이 있는 세계 말이다. 그 세계는 좀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가 오가고, 업무적인 위로가 아닌 진심이 담긴 다독임이 오가는 세계다.
그리고 <김 부장 이야기>에서 박하진은 그 세계의 주인공 역할을 톡톡히 한다. 배우 명세빈의 연기는 박하진이 평범한 현모양처 캐릭터가 아닌 다독임의 세계를 표현하는 인물로 그려낸다. 특히 박하진이 퇴직한 남편 김낙수를 맞이하는 장면은 <김 부장 이야기>의 킥이라고 할 수 있는 장면이다.

뜬금없이 오후에 집에 들어와 먹을 거나 달라고 말하는 김낙수. 박하진은 아무 말 하지 않지만 남편이 가져온 박스를 보고 그의 퇴직을 알아차린다. 잠시 당황하던 그녀는 기가 죽은 김낙수에게 “이제 백수냐”고 놀리면서 그를 발로 차며 장난을 건다. 기가 죽은 김낙수가 자리를 피하자 그 뒤에 슬며시 선다. 그리고 제대로 아내의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김낙수에게 박하진은 남편을 불러세운다.

그리고 두 팔을 벌려 “수고했어, 김 부장”이라고 말한다. 이후 두 사람은 포옹하며 지난 세월의 회한을 느끼며 함께 오열한다. 자칫 신파적이거나 혹은 코믹과 감동이란 뻔한 코드로 갈 수 있는 이 짧은 장면이다. 하지만 명세빈은 일상적이면서 담담한 연기로 이 장면을 <김 부장 이야기>의 킥으로 훌륭하게 살려냈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JTB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