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느긋하게 먹고, 마시고, 좋은 풍경을 보며 쉬고... 2014년 시작한 나영석 사단의 <삼시세끼> 시리즈는 힐링 예능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이 <삼시세끼>를 통해 이서진은 <꽃보다 할배>에서 시작한 투덜대지만 만능 생활인인 본인의 캐릭터를 확고히 했다. 또 차승원과 유해진은 <삼시세끼> 어촌편을 통해 새로운 매력으로 대중에게 다가서기도 했다.

<삼시세끼> 이후 힐링 예능은 스테디셀러로 안착했다. 이효리는 JTBC와 함께 <효리네 민박>과 <캠핑클럽>에 출연해 섹시스타에서 요가와 내면의 자유를 표방한 새로운 샐럽의 느낌을 만들어냈다.

이후에도 여행과 잔잔함이 특징인 힐링 예능은 꾸준히 인기를 끌었다. 특히 코로나로 비대면 시대에 접어들면서 힐링 예능은 평화로운 일상에 대한 대리만족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tvN <바퀴 달린 집> 시즌2가 미적지근한 반응과 함께 사라진 반면 <알쓸범잡>이 의외의 선방이 기록한 것처럼 힐링 예능은 저물어가는 느낌이다. 그리고 가장 최근 힐링 예능이라 부를 만한 JTBC <바라던 바다>에 대한 시청자들의 호응은 크지 않다.

아무래도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평화로운 여행에서 힐링을 느낄 정도의 여유조차 없는 듯 보인다. 그보다는 마스크를 쓰고 사는 답답한 일상과 짜증을 깔끔하게 해소할 콘텐츠를 원하는 분위기다.

그 대표가 바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다. <꼬꼬무>에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이 담겨 있었다. 대화가 어려운 시기에 누군가와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는 포맷, 음모론의 서늘함, 재난과 연쇄살인 범죄 등의 섬뜩한 스토리.

<꼬꼬무>, <알쓸범잡> 등의 성공으로 ‘힐링’의 시대는 가고 ‘킬링’은 이제 예능의 새로운 방식이 되었다. 마치 페스트 시대에 대피소에 모인 공포에 질린 시민들처럼 사람들은 말하고 토의한다. 하지만 지금 현재의 재난에 대해서는 분석할 수 없다. 그러니 대신 과거의 재난을 분석하자. 과거의 사건사고 분석을 통해 그나마 지금의 재난도 해결되는 듯한 안도감을 무의식적으로 줄 수 있으니.

이후 MBC 역시 <심야괴담회>를 선보이며 이 대열에 합류했다. <심야괴담회>는 실제 사건이 아닌 시청자가 보낸 무서운 이야기 첼린지를 해나가는 방식이다. 먼저 선방한 <꼬꼬무>와 같은 시간대에 붙어 시청률은 못 미치지만 나름 화제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킬링’ 예능의 특징은 스릴러 드라마 같은 잔인한 자극이 아니다. 범죄와 재난에 대한 공감의 기류가 형성되는 것에 있다. 처음에는 과거의 끔찍한 재난이니 잔혹한 범죄에 함께 두려움에 떨며 공감한다. 이후 전문가들이나 패널들이 그 원인을 집어내고 칼 같이 분석하는 것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다. 처음에는 무서워서 등골이 시원하고, 다음에는 과거의 비극에 함께 공감하며 안타깝고, 마지막에는 그래도 이 사건의 원인이나마 알게 되어 속이 시원하다.

KBS 역시 최근의 추세에 발맞춰 표창원, 이수정 등 범죄수사 계의 유명인사를 내세운 <표리부동>을 선보였다. 다만 이제 첫 발을 내디딘 <표리부동>은 성공한 ‘킬링’ 예능에 비해 특별함은 없어 보인다.

아쉽게도 <표리부동>은 이미 익숙한 범죄 스토리텔링을 유명 인사를 통해 그냥 풀어내는 느낌이다. <알쓸범잡>이 지닌 범죄와 일상을 연결해 분석하는 관점이나 <꼬꼬무>가 보여준 긴장감 넘치는 토크의 밀고 당기는 편집점 같은 신선함이 없다. 스릴러 드라마와 킬링 예능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에게 <표리부동>은 느슨한 범죄 교양 다큐 정도의 감흥만을 주어 아쉽다. <표리부동>은 ‘킬링’ 예능 특유의 쫀쫀한 긴장감을 만드는 요소를 미처 생각하지는 못한 듯하다. 표창원과 이수정이 메인으로 등장한다고 무조건 킬링 예능의 몰입도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tvN, KBS, S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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