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이다희가 점점 김래원의 처지와 같아진다는 건
‘루카’, 김래원이라는 타자를 세워두고 이 드라마가 보여주려는 것

[엔터미디어=정덕현] 이건 초능력을 가진 영웅의 서사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tvN 월화드라마 <루카 : 더 비기닝(이하 루카)>에서 유전자 실험을 통해 동물들의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된 지오(김래원)는 적들과 맞서 싸우는 인물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도주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어려서 실험실에 끌려가 실험을 당했고, 보육원에서도 ‘악마 취급’을 받았다.

그가 가진 전기를 일으키는 능력은 공격목적이 아닌 철저한 자기 보호수단으로 발현된다. 누군가의 위협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발현되는 능력. 그 전기를 일으키고 나면 뇌세포도 죽어버려 기억까지 잃어간다. 그가 쫓기는 이유도 그를 실험동물 삼아 그 능력을 배양해내려는 휴먼테크의 욕망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그건 능력이 아니라 저주다.

의지할 곳 하나 없이 살아가는 지오에게 따뜻한 은신처를 제공했던 유일한 인물은 소각장에서 일하는 김주임(이원종)이었다. 연구실에서 나오는 실험동물을 수거해 소각하는 일을 하는 그는 그 곳에서 벌어지는 잔인한 실험에 대한 이야기를 지오에게 해준다. 그러면서 사람이라는 이유로 동물들을 마음대로 실험하고 고문하고 죽일 권리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건 권리가 아니라 힘이 있어서라고 말하는 지오는 다름 아닌 바로 그 동물들처럼 살았던 존재였다.

그래서 유일하게 자신을 거둬준 김주임을 의지하며 살아왔지만, 결국 그 곳까지 찾아온 휴먼테크의 해결사들은 김주임마저 소각로에 던져 죽인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이 말해주는 건 힘이 있는 자들은 실험동물이나 사람이나 다 똑같이 대하는 비정한 세상이다.

그러니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나타나기만 하면 털이 곤두서는 ‘살기’를 늘 느끼며 살아가는 지오는 철저히 인간들을 피해 도망중이다. 그런데 그의 앞에 살기가 느껴지지 않는 유일한 인물 하늘에구름(이다희)이 나타난다. 어려서 자신의 집에 왔었던 지오와 함께 부모가 나간 후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구름이 지오를 부모를 죽인 괴물로 생각하게 하지만, 지오는 그 아픈 기억을 품고 살아온 구름의 고통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느낀다. 평생 겪어온 그 고통이 끝났으면 하는 바람으로 차라리 자신이 구름의 부모를 죽인 괴물이었으면 좋겠다고까지 말하는 지오. 그런 지오가 괴물이 아니라는 걸 구름은 조금씩 알아간다.

그런데 지오와 가까워진 김주임이 저 소각로 속에 던져진 것처럼, 그와 가까워진 구름 역시 저들의 위협 속에 놓이게 된다. 그 때마다 지오가 나타나 구름을 구해내지만, 사실 그건 지오에게 더 절실한 일이기도 하다. 지오는 세상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는 인물이다. 친구마저도 그를 이용해 먹었고, 심지어 자신을 ‘아버지’라 말하는 미치광이 박사 류중권(안내상)마저 그를 자신의 연구업적을 위한 실험동물로 여긴다. 구름은 그런 그에게 유일하게 남은 의지처다. 그래서 그 사지에서 온몸에 피를 흘리며 빠져나온 그가 구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는 장면은 처연하고 슬프게 다가온다.

흥미로운 건 구름 역시 부모를 찾기 위한 자신의 욕망에 눈이 멀어 처음에는 지오를 대상화한다. 오종환 박사(이해영)에게 데려가 갖가지 고통스런 검사를 받게 하는 그 순간 지오는 과거 자신이 당했던 실험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검사 결과를 본 오종환은 구름에게 그는 인간이 아닌 괴물이라고 말하며 당장 죽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종환 박사마저 저들에게 살해당하고, 지오가 붙잡혀 다시 실험을 당했던 연구소를 찾아갔다가 구름은 저들에 의해 살인자 누명을 쓰게 된다. 그리고 믿었던 강력1팀 최진환(김상호) 팀장마저 휴먼테크 실험을 주도해온 김철수(박혁권)의 사주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도망자 신세에 배신마저 당한 구름의 처지는 점점 지오와 비슷해진다. 그래서 지오와 구름의 관계는 일반적인 멜로적 관계와는 조금 다른 고통 받는 약자의 ‘동병상련’의 관계처럼 그려진다. 조금씩 구름이 비슷한 처지에 놓이고 그래서 지오를 이해해가는 과정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그건 이 드라마가 그리려는 것이 지오라는 ‘타자’를 세워두고 우리가 그 타자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결국 목적을 위해 구름 역시 실험동물 취급당했던 지오와 다를 바 없는 처지에 놓여있으니 말이다.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실험동물’에 대한 윤리적 문제는, 우리가 동물이라는 타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과거 동물을 대상화함으로써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던 걸 정당화하던 시대가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저들을 달라도 ‘공존’해야 할 존재로 바라보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래서 지오라는 타자가 겪는 고통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진중한 질문을 던진다.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괴물이라 부르는, 타자를 대상화하는 저들이야말로 진짜 괴물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엔터미디어 채널 싸우나의 코너 '헐크토크'에서 김래원표 액션이 돋보이는 드라마 ‘루카’를 다뤘습니다. 업계에 알려진 ‘루카’ 탄생 뒷얘기를 전하며 정덕현 평론가가 헐크지수를 매겼습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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