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액션 위주의 음모론적인 드라마인 줄 알았더니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드라마 찬(贊)△. 추격 액션물을 표방하는 tvN 드라마 <루카-더 비기닝>의 놀라운 만듦새가 화제다. 누구의 솜씨일까. OCN에서 <보이스1> <the guest> 등 자기색깔을 지닌 독특한 장르물을 만들어왔던 김홍선 감독과 드라마 <추노>, 영화 <해적>, <7급 공무원> 등을 쓴 천성일 작가의 합작품이다. 특히 촬영, 액션, 장소 캐스팅이 영화를 보는 듯한데, 이는 영화 <베테랑>, <베를린>, <도둑들>의 최영한 촬영감독과 영화 <안시성>의 장재욱 무술감독의 손맛이다. 인트로를 장식한 둥근 건물의 내부 장면이나, 골목 추격신 만으로도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엘리베이터 액션신은 여러 컷을 마치 원래 한 컷인 것처럼 이어붙이는 원 컨티뉴어스 샷기법이 돋보인다.

배우들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특별한 능력을 지녔지만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쫓기는 지오 캐릭터는 영화 <해바라기>에서 보았던 김래원의 처절함과 영화 <초능력자>에서 보았던 강동원의 신비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부모의 실종을 쫓는 구름 캐릭터는 드라마 <검블유>에서 보았던 이다희의 시원시원한 움직임과 드라마 <구미호뎐>에서 보았던 조보아의 간절함이 동시에 서려 있다. 김상호, 안내상, 박혁권 등이 맡은 캐릭터들도 스테레오 타입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이는 서사에 필요한 말 이상의 잉여의 대사들에 담긴 개성과 노련한 연기로 불어넣은 생기가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 액션 위주의 음모론적인 드라마인가 했더니

루카(L.U.C.A)’는 모든 생명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만나는 최후의 보편적인 공통조상(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을 뜻하는 약자이다. 드라마는 유전자편집기술에 의해 여러 동물의 기능을 갖도록 가진 창조된 인간을 그린다. 비밀스러운 조직이 불법적인 생체 실험을 벌이고, 그 결과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인간이 탄생했다. 그가 자신을 만든 비밀 조직과 싸우는 서사와 액션을 그린다는 점에서 영화 <마녀>나 드라마 <낮과 밤>이 떠오르기도 한다. 드라마는 1-2회를 통해 추격 액션, 초능력, 혹은 생체 실험 음모론에 관한 드라마라는 인상을 강하게 남겼지만, 3-4회부터 자신만의 색깔과 주제의식을 서서히 드러낸다.

<루카>인간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존재론적인 질문인간성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윤리적 질문들을 담고 있다. 드라마는 초반에 두 개의 핵심적인 질문을 던진다. 첫째는 인간의 유전자에 박쥐, 전기뱀장어, 해파리 등등의 유전자가 섞여 있다면 그것을 인간이라 할 수 있는가?” 이다. 참고로 이 말을 한 사람이 (생체 실험을 미친 과학자와 대조되는) 과학윤리에 관한 상식을 설명하는 오종환(이해영) 박사다.

두 번째 질문은 인간에게 동물들을 잔인하게 고문하고 죽일 권리가 있는가?”이다. 이 말은 실험동물 사체를 소각하는 김주임(이원종)이 던진 말이다. 이 질문에 지오는 권리가 아니라, 힘이 있으니까 하는 것이라는 냉랭한 답변을 들려준다. 그런데 그 질문은 지오를 향해 되돌아온다. 지오와 실험동물의 처지가 완전히 포개지기 때문이다. 즉 이 질문들은 지오를 대상으로 다시 물어져야 한다. “인간의 유전자에 여러 동물의 유전자가 섞여 있는 지오는 인간인가 아닌가.” 그리고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인간들이 그를 잔혹하게 대해도 되는가.”

◆ 초능력을 지닌 영웅이라기보다는 핍박받는 소수자

지오는 강한 힘과 전기를 일으키는 능력을 지녔지만, 뛰어난 살상 능력을 갖춘 전사가 아니다. 그의 힘은 정교하게 조절되기보다 위기의 순간 제어할 수 없는 분노와 함께 뿜어져 나온다. 폭탄이 터진 것처럼 정전을 일으키고 화재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정작 상대는 살아남는다. 그는 초능력을 지닌 액션 히어로의 이미지보다 사회로부터 학대받고 착취당하는 존재로 재현된다.

어린 시절 지오는 휴먼 테크에서 생체 실험을 당한다. 묶여서 피를 뽑히며, 아프다고 그만하라고 울부짖는다. 보육원의 수녀는 그에게 악마라며 가스라이팅을 해댄다. 어른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지오는 보육원의 형들로부터 따돌림과 폭행을 당했다. 분노로 괴력이 튀어나와 불이 났지만, 뇌전증 환자처럼 그 순간을 기억 못 하는 지오에게 수녀는 뻔뻔한 악마의 자식이라며 저주를 퍼부었다. 보육원에서 도망친 후 그는 부적응자처럼 떠돌았다.

군인까지 끌어들일 만큼 국가권력과 결탁한 휴먼 테크는 유일하게 성공한 생체 실험의 결과물인 지오를 쫓는다. 지오는 사람을 꺼리고 불편해하며 낯선 사람을 보면 도망치기에 바쁘다. 김주임은 그에게 인간미와 사회성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성격은 그가 유전자조작으로 태어난 존재여서가 아니라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고아이자 부적응자로 떠돌며 살아온 날들의 결과처럼 보인다. 지오는 휴먼 테크사람들에게 쫓기고 분노로 괴력을 쓴 후에는 자꾸만 기억을 잃는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로 깨어나는 그의 상태는 사회에 무방비상태로 던져진 존재를 상징한다.

◆ 지오를 괴롭힌 건 ‘휴먼 테크’ 만이 아니었다

<루카>는 광신도 수녀에 이어 뭔가 우호적이거나 선량할 것 같은 인물들이 그를 학대하거나 착취하는 모습을 연달아 보여준다. 지오를 안다며 몹시 반기는 친구가 등장했을 때, 그에게도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잠시 안도했던 시청자의 마음은 곧 무너진다. 그는 지오의 능력을 활용해 좀도둑질을 하던 범죄자였고, 심지어 그를 두 번이나 팔아넘긴 배신자였다. 구름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이다. 구름은 지오가 자신의 부모를 해친 것은 아닌지 의심해왔다. 구름에게 감정이입이 된 시청자는 그의 아버지가 무고한 피해자일 것으로 상상해왔다. 그러나 실상은 아버지도 생체 실험에 가담한 과학자이자, 자기 가족의 안전을 보장해달라는 조건으로 어린 지오를 휴먼 테크에 팔아넘긴 가해자였다.

지오에게 함부로 대하기는 구름이나 오종환 박사도 마찬가지이다. 구름은 지오를 박사에게 데려가 억지로 검사받게 한다. 박사는 충분한 설명 없이 척수검사 등 침습적인 검사를 해댄다. 그가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는 장면이 어렸을 때 휴먼 테크에서 아프다고 울던 장면과 겹친다. 지오가 참지 못하고 뛰쳐나오자, 따라 나온 구름이 먼저 사과하는 게 아니라 이제 안 아픈 검사만 남았다며 계속 검사를 받기를 종용한다.

◆ 결국 윤리의 문제

드라마 <루카>는 과학과 종교가 윤리를 잃고 자기 논리에 함몰되어 버린 사태를 끔찍하게 보여준다. 과학자는 과학윤리를 벗어난 생체 실험을 해대고,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얼마든지 지오를 학대한다. 수녀는 뭔가를 알아보는 능력 때문이 아니라 광신적 편견에 사로잡혀 지오를 악마로 낙인찍는다. 드라마는 휴먼 테크를 설립한 황정아(진경)이 종교적 광신을 이용하여 임신부들에게 신생아를 생체 실험에 바치도록 하는 끔찍한 상황을 암시한다. 어떻게 이런 믿음이 가능한지 의아하지만, 애국의 신념으로 난자 공여의 윤리적 문제를 아무렇지 않게 여겼던 황우석 사태를 연상해 보면 아주 조금은 짐작이 되기도 한다.

지오에게는 괴물이나 초능력자라는 SF적인 정체성 위에 고아로 보육원을 뛰쳐나와 도시의 뒷골목을 불안정하게 떠도는 하층 노동자의 정체성이 겹쳐져 있다. ‘휴먼 테크는 그를 인간이 아닌 실험동물로 취급했고, 수녀는 그를 악마의 자식이라며 증오했으며,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를 착취의 대상으로 대했다. 즉 현대판 프랑켄쉬타인의 괴물인 그에게는 실험동물, 고아, 학대당하는 아이, 보호받지 못한 채 가까운 이로부터도 착취당하고 이용당하는 인물의 이미지가 있다. 사회적 편견과 차별과 배제에 시달리는 소수자인 셈이다.

지오를 인간으로 대하며 조언해준 유일한 인물이 김주임이었는데, 그가 인간에게 실험동물을 학대할 권리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존재였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그는 드라마 초반에 허무하게 죽어버린다. 이 질문이 구름을 통해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구름은 도망만 다니던 지오가 이타성을 발휘한 유일한 대상이자, 팔뚝의 털이 곤두서지 않는 등 위험하지 않은 존재로 감각된 최초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또 하나의 질문도 이어가길 바란다. 인간의 유전자에 다른 유전자가 섞이면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은 과연 맞는 걸까. 백인 유전자에 유색인종의 유전자가 조금이라도 섞이면 백인이 아니라는 인종주의처럼, 인간과 동물 사이의 종적 위계를 전제한 종차별주의적 시각에서 빚어진 생각은 아닐까. 인간과 동물, 인간과 기계는 얼마나 다를까. 인간 아닌 것을 받아들일 때 진정한 인간성이 발휘되는 것은 아닐까.

황진미 칼럼니스트 chingmee@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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