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홀’, 이 거대한 구멍이 은유하는 심연의 공포

[엔터미디어=정덕현] 숲 속에 생겨난 거대한 싱크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구멍에서 검은 연기가 마치 살아있는 듯 흘러나와 누군가의 코로 스며든다. 그걸 마신 이들은 눈빛이 검게 변하고 저마다의 트라우마가 환영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그 공포는 이들을 미쳐 날뛰게 만들고, 타인에 대한 공격성으로 이어진다. OCN 금토드라마 <다크홀>이 갖고 있는 종말의 세상을 담은 아포칼립스의 세계관이다.

먼저 눈이 검게 변해 거리로 뛰쳐나온 ‘변종’들이 마구 사람들을 공격하는 광경은 좀비 장르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다크홀>의 변종들은 좀비가 아니다. 변종에 물린 유태한(이준혁)은 선명하게 이빨 자국이 팔에 났지만 변하지 않았다. 대신 이들을 변화시키는 건 그 거대한 다크홀에서 흘러나온 검은 연기다. 왜 <다크홀>은 우리에게 익숙한 좀비 설정이 아닌 다크홀의 검은 연기라는 장치를 쓴 걸까.

혼돈에 빠져버린 도시에서 이화선(김옥빈)이 어린 도윤이(이예빛)를 데려간 사이비 종교 집단과 사투를 벌이는 에피소드는 이 드라마의 세계관이 무엇을 은유하고 있는가를 잘 드러낸다. “새하늘님을 믿으십시오”라 말하는 이 사이비 종교 집단의 교주는, 이 작품을 쓴 정이도 작가의 <구해줘>에 등장했던 구선원 임주호(정해균)가 겹쳐진다. 바로 이 ‘광신의 문제’를 가져왔다는 사실은 <다크홀>이 <구해줘>의 아포칼립스 버전처럼 읽히는 면이 있다.

즉 다크홀이 상징하는 건 누구나 저마다 갖고 있는 ‘심연의 공포’다. 사이비 종교는 바로 그 공포를 건드려 거짓 믿음을 이끌어낸다. 그래서 여기 검은 연기를 마시고 눈이 검게 변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미혹된 이들은 고스란히 사이비 종교에 빠져 거짓 믿음을 갖게 되어 제대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광신도들과 겹쳐진다. 결국 구원이라 외치며 집단 자살을 선택하는 그들.

<다크홀>이 흥미로운 건, 이 아노미 상태로 변한 도시를 통해 사이비 종교 집단만이 아닌 학교, 경찰서, 병원 같은 공공기관들 역시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그려낸다는 점이다. 무지고교는 외부인들이 들어오는 걸 철저히 차단시킨 채 최경수(김병기) 이사장의 독단적인 명령 체계로 움직이게 된다. 밖에서 들어오려는 변종들보다 더 무서울 수 있는 게 최경수 같은 인물이라는 걸 드라마는 그려낼 작정이다.

경찰인 박순일(임원희)은 인간적인 면이 있는 인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경찰로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 인물이라 보긴 어렵다. 현직 렉카 기사지만 과거 경찰이었던 유태한이 그 역할을 대신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무당 김선녀(송상은)가 하필이면 병원으로 들어와 있는 설정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공포의 상황 속에서 무당이 보여줄 신기와 병원의 의술이라는 지점이 분명 갈등을 야기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다크홀>의 세계관은 그래서 <구해줘>의 확장에 가깝다. 어떤 극한의 공포 상황을 마주한 이들이 가장 경계해야할 것은 변종 같은 외부의 적이 아닌 이성을 눈 멀게 만드는 공포 그 자체라는 걸 그려내고 있어서다. 그리고 이 지점은 코로나19를 2년 째 마주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남다른 의미를 던져준다. 백신이 부작용보다 더 유리하다는 여러 전문가들의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목적이 다분해 보이는 기사들이 야기하는 공포 분위기가 때론 코로나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이 드라마의 세계관의 은유가 말해주는 것처럼 보여서다.

이화선이 검은 연기를 마시고도 변종이 되지 않았고, 그 이유가 자신이 사랑했지만 먼저 떠난 이의 기억 때문이라는 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공포에 잠식당해 눈 먼 채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공포를 마주하며 이겨낼 것인가. <다크홀>의 질문이 자못 무게감을 갖는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O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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