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동거’, 로코 남주로 돌아온 21세기 구미호

[엔터미디어=정덕현] 낯선 두려움으로 시작해서 설렘으로 이어진다? tvN 수목드라마 <간 떨어지는 동거>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따라간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남녀의 만남이란 애초 낯선 관계에서 시작해 그 두근거림이 설렘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니 말이다. 다만 다른 건, 그 두려움이 설렘으로 바뀌게 해주는 남자 주인공이 거의 천 년을 살아온 구미호라는 점이다.

본래 <전설의 고향> 속 구미호는 여성이고, 남편의 배신(?)으로 인간이 될 수 있는 단 하루를 못 버텨 눈물을 머금고 떠나는 ‘신파적 캐릭터’였다. 하지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 구미호 캐릭터는 계속 진화했다. <구미호:여우누이뎐> 같은 드라마는 그래서 간을 빼먹는 구미호의 공포보다 더 무서운, (딸을 살리기 위해) 구미호의 간을 빼내려는 인간의 욕망을 그리기도 했고,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같은 로맨틱 코미디로 장르를 옮겨 판타지적 캐릭터로 변주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간 떨어지는 동거>가 그리고 있는 신우여(장기용)라는 21세기 구미호는 어떨까. 신우여의 특이한 점은 구미호의 ‘시대성’을 온전히 다 겪은 구미호라는 점이다. 고려 현종 때 태어나 지금껏 살아온 신우여는 나이가 999세다. 그러니 사람의 간을 빼먹는다는 공포의 존재로서의 구미호의 시대를 거쳐 구미호보다 인간이 더 무서워지는 시대를 통과한 캐릭터. 그래서 그 긴 세월의 쓸쓸함 같은 게 묻어나고, 과연 인간이 되려는 욕망을 여전히 갖고 있는가가 의심스러운 삶의 무상함을 담아내는 인물이다.

하지만 남자 구미호이고, 999년을 산 시대성을 가지고 있는 이 캐릭터의 무게감은 <간 떨어지는 동거>에서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의 설렘과 웃음을 위해 활용된다. 신우여가 낮은 목소리로 너무나 진지하게 어떤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그래서 심각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너무 과잉된 느낌’으로 웃음을 준다.

이런 느낌에는 그와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여자주인공 이담(혜리)이 그와는 완전히 정반대의 우스꽝스럽고 망가지는 캐릭터라는 점이 일조한다. 어쩌다 신우여가 999년을 품고 키워온 구슬을 꿀꺽 삼켜버린 대가로 범띠 남자와 접촉만 해도 힘을 잃어버리는 이담이 범띠인 계선우(배인혁)를 피하기 위해 결사적으로 몸을 굴리는 장면은 코믹 웹툰을 그대로 드라마로 가져온 듯한 웃음을 준다. 게다가 이 여주인공은 화장실 유머까지 거침없이 보여주는 캐릭터다.

그러니 너무나 진지한 남자 주인공의 무게감과 너무나 가벼운 여자 주인공의 합은 그 언발란스한 관계의 합 때문에 코미디적 상황을 만든다. 하지만 빵빵 터지는 웃음 속에서 어딘가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듯한 신우여가, 도무지 연애 세포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이담에게 진지하게 접근하고, 이담은 두려움 때문인지 설렘 때문인지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을 갖게 된다.

<간 떨어지는 동거>는 21세기 구미호를 로맨틱 코미디의 남자주인공으로 해석한 드라마다. 그 설정이나 이야기 전개는 그래서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흐름을 따라간다. 남녀 주인공이 동거하게 되고, 계약서를 쓰게 되는 식의. 마치 시트콤이나 웹툰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코믹한 상황이 주는 웃음과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연애를 두고 벌어지는 설렘은 분명히 전해진다. 그래서 편안하게 별 큰 기대 없이 본다면 나름의 만족감을 주는 드라마다.

하지만 이건 초반의 분위기일 테고, 결국 신우여와 이담의 관계는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의 밀당에만 그칠 수는 없을 것이다. 구슬을 빼지 않으면 이담은 죽을 수밖에 없고, 신우여는 그 구슬을 다시 가져야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지만, 이미 이담에게 마음을 빼앗긴 신우여라면 구슬을 빼는 순간 그들 사이의 기억들을 모두 잊게 될 이담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질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가볍게 보이는 로맨틱 코미디 속에 감춰진 인물들의 비극성은 <간 떨어지는 동거>가 시트콤적인 웃음의 차원에서 운명적인 슬픔의 이야기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과연 이 드라마는 이런 멜로의 확장을 보여줄 수 있을까. 바로 이 지점에 <간 떨어지는 동거>라는 드라마 성패의 관건이 있지 않을까 싶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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