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동거’ 빵빵 터트리는 강한나, 김도완과의 멜로도 기대된다

[엔터미디어=정덕현] “합의하고 싶다고 바짓가랑이라도 붙들어도 모자랄 판에.” 자신의 몸을 음흉하게 훑어봤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오게 된 남자가 그렇게 말하자, 양혜선(강한나)는 진짜로 그 남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진다. 그러면서 되묻는다. “얼마나 붙들어야 합의해 주는 거야?”

tvN 수목드라마 <간 떨어지는 동거>에서 양혜선은 구미호 신우여(장기용)와 700 년 간의 우정(?)으로 이어진 인간이 된 구미호다. 그래서 ‘인간세계’에 익숙하지 않고 특히 ‘관용적 표현’을 어려워한다. 신우여가 “선을 넘는 건 여전하구나”라고 말하면 진짜 선이 있다고 생각하고, “참 부산스럽구나”라고 말하면 “부산스럽다니. 나 고려 때는 개경에 살았고 조선 때는 한양에 살았고 지금은 서울특별시민이거든? 난 수도 아니면 안 살아...”라고 말한다.

이 드라마에서 양혜선이라는 캐릭터는 간간이 등장해 신우여라는 구미호 캐릭터의 과거사를 대신 이야기해주거나, 구미호의 입장에서 신우여에게 조언을 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그런데 먼저 인간이 됐고, 연애 조언을 해주는 입장이지만 양혜선은 한 마디로 허당이다. 관용어 표현에 익숙하지 못해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그는 천자문을 떼는 데만 80년이 걸렸다며 신우여에게 놀림을 당하는 존재.

이 조언을 하는 인물이 그 무식함을 드러낼 때마다 과도하게 진지한 신우여라는 인물과 대비되면서 코믹한 웃음이 만들어진다. 인간들을 선물에 약하다며 “장신구 좋아하면 다이아몬드, 골드, 사파이어, 진주, 그리고 펄까지” 사주라는 조언을 던지면, 신우여가 특유의 진지하고 낮은 목소리로 “진주가 영어로 펄이야”하는 식이다.

“날 보면 하루라도 빨리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아? 구미호 때와는 360도 다르게 스스로 삶을 개척해가는 내 모습 부럽지 않냐고?” 양혜선의 이런 잘난 척에 신우여는 여지없이 “360도면 제 자리야.”라고 툭 던지고, 이담(혜리)의 연애를 돕자며 도재진(김도완)이 “담이를 위해 발 벗고 나서보자”고 하자 “발까지 벗어야 돼?”라고 되물으며 신발을 벗는 인물. 이러니 그 허당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그런데 이런 조력자 역할을 맡은 양혜선과 어쩌다 엮이게 된 도재진 사이의 기류가 심상찮다. ‘연알못’ 도재진의 아무 생각 없이 툭툭 던지는 말이 자칭 ‘연애 고수’ 양혜선의 마음을 의도치 않게 뒤 흔들기 때문이다. 왜 자신을 그렇게 불편해하냐는 양혜선의 질문에 도재진은 “여신 트라우마”가 있다며 과거 여신 같은 누나랑 사귀었지만 알고 보니 일진이었고 삥을 뜯기고 있었다는 사연을 털어놓는다. 그런데 그 이야기에서 양혜선의 마음을 헤집고 들어오는 건 자신을 ‘여신’이라 표현한 도재진의 마음이다.

오랜만에 소개팅에 응한 이담을 위해 조언을 해달라는 도재진에게 양혜선이 “난 왜 소개팅 많이 해봤을 거라고 생각하냐”고 묻자, 도재진은 또 훅 들어오는 말로 양혜선의 마음을 건드린다. “엄청 예쁘니까. 너처럼 예쁘면 소개팅 이런 거 많이 들어오지 않나?” 모든 걸 능숙하고 잘 하고 있다 착각하는 허당 양혜선이 연애를 전혀 모르는 도재진의 순수함에 조금씩 마음을 빼앗기는 이 광경은 그래서 시청자들에게 따뜻한 미소를 안기기에 충분하다.

<간 떨어지는 동거>는 999년을 산 구미호 신우여가 어쩌다 의도치 않게 자신의 구슬을 삼켜버린 이담과 동거를 하며 생긴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저 인간의 정기를 뻬앗고는 구슬을 되삼켜 기억을 지워버리는 일을 반복해온 신우여지만, 이담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구슬을 쉽사리 되삼키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것.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담은 구슬에 정기를 빼앗겨 죽게 될 운명이다.

구미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청춘멜로의 밀당 로맨틱 코미디로 풀어낸 작품이지만,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사랑’에 대한 것이다. 인간적 감정을 잘 모르는 구미호가 인간이 되는 과정의 성장통은 결국 진정한 인간적 사랑을 이해하는 일이 된다. 그저 인간의 정기를 훔치는 것으로 구미호가 인간이 됐다고 해서 그를 진정한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그 설정 안에는 담겨 있다.

그래서 신우여는 이담을 통해 그 사랑을 배우고 있는 것이고, 그 성장통이야말로 진짜 구미호를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과정이 된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되긴 했지만 아직 적응을 못하는 양혜선이라는 인물이 도재진이라는 순수한 남자를 만나 사랑을 알아가는 과정 역시 신우여와 그리 다르지 않다. 그래서일까. 이 허당기 가득한 인물의 빵빵 터트리는 웃음을 통해 점점 그 인물의 인간적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양혜선 역할을 연기하는 강한나는 이 작품에서 확실히 전작들과 대비되는 ‘미친 존재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간 강한나가 맡은 역할들은 대부분 주인공과 대결구도를 만드는 조역들이었고, 특히 똑 부러지는 커리어우먼의 이미지가 강했다. 지난해 방영됐던 tvN <스타트업>에서 원인재라는 인물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그가 아닌가. 그런 그가 <간 떨어지는 동거>에서는 살짝 내려놓는 연기로 인간적인 매력을 드러내고 있다. 보다 폭넓은 연기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 이 작품은 확실히 강한나에게 연기자로서 좋은 자양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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