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부일체’의 지구청년회, 의미 있지만 어울리지 않는 옷

[엔터미디어=정덕현] SBS 예능 <집사부일체>에 JTBC <비정상회담>이 떴다? 지금껏 특별한(?) 사부를 찾아가 인생 상담을 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던 <집사부일체>는 갑자기 ‘지구청년회’라는 콘셉트로 외국인 청년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토론을 벌였다. 알베르토(이탈리아), 마국진(중국), 타일러(미국), 럭키(인도), 로빈(프랑스)이 출연한 이 토론은 프로그램 안에서 양세형이 말했듯 <비정상회담>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결론적으로 보면 기획 의도는 나쁘지 않았다. 의제(?)로 다룬 코로나19를 둘러싼 다양한 이슈들과, 도쿄 올림픽 그리고 미얀마 사태 등은 국제적인 이슈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각국 청년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실제로 도쿄 올림픽을 두고 일본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대 운동의 양상을 호사카 유지 교수를 화상통화로 연결해 들어보는 부분이나, 미얀마 사태에 대해 그 진실을 알리는 일을 함으로써 블랙리스트가 되었다는 찬찬을 통해 생생한 이야기를 듣는 부분은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충분히 가치 있는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비정상회담>이라는 콘셉트를 가져와 진지하고 때론 심각할 수밖에 없는 의제들을 토론한다는 것이 그간 <집사부일체>가 해왔던 그 예능과 어울리는가는 의문이다. 실제로 지난주 방영분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생겨난 음모론에 대한 토론을 벌이면서 중국을 대표해 나온 마국진과 타국 청년들이 다소 격앙된 분위기를 보인 건 <집사부일체>라는 프로그램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코로나19가 중국으로부터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갖가지 음모론과 더해져 타국 청년들이 일제히 중국 청년을 몰아세우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국가의 문제일 수 있지만, 자국을 비판하는 타국인들의 한 목소리를 토론 프로그램도 아닌 예능 프로그램에서(그것도 <집사부일체>에서) 담는다는 건 어딘가 불편한 지점들이 존재했다.

이런 불편한 지점 때문이었을까. ‘지구청년회’ 두 번째 시간에는 중국 청년 마국진의 방송 분량이 거의 없었다. 한 시간이 넘는 방송 시간 속에 그저 리액션을 하는 모습만 몇 번 비춰졌다. 그리고 미얀마 사태를 의제로 다뤘을 때 역시 중국의 입장은 곤란해질 수밖에 없었다. 미국이 경제제재로 쿠데타 세력의 자금을 동결하고 있지만 사실상 가장 교류가 많은 중국과 러시아 때문에 큰 타격이 없다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해 미얀마 쿠데타 세력에 대한 국제 제재가 불가한 상황이 아닌가. 역시 이 부분에서 마국진의 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아마 내기도 어렵겠지만 나왔어도 방송이 담기가 어려웠을 게다.

결과적으로 보면 <집사부일체>가 갑자기 가져온 ‘지구청년회’는 요즘처럼 글로벌한 이슈들이 많아진 시국에 <비정상회담> 같은 프로그램이 충분히 의미 있고 재미도 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면이 있다. 다만 아쉬운 건 <집사부일체>라는 프로그램과는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는 점이고, 무엇보다 다소 심각하고 무거운 주제들을 과감하게 끌어안을 수 있는 여력이 있어야 이런 다소 논쟁적인 프로그램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프로그램은 말미에 언제든 또 이슈가 있으면 돌아오겠다는 멘트로 끝을 맺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집사부일체>라는 프로그램의 정체성과 맞는 새로운 형식이나 선별된 소재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글로벌 시대에 글로벌 이슈에 대한 여러 나라의 입장이나 의견을 들어보는 건 가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걸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틀에 담기 위해서는 보다 정교한 접근방식이 요구된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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