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차’, 김선호·신민아가 그려내는 멜로가 마음을 잡아끄는 이유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성공한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은 당대의 대중들이 가진 욕망들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tvN 토일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는 그 이야기 구조와 캐릭터에서 과거와는 달라진 대중들의 정서가 읽힌다. 먼저 이 드라마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공진이라는 가상의 갯마을이 주는 욕망이 그렇다. 코로나19로 인해 갑갑한 도시(심지어 방콕하며)에 붙박여 어딘가로 떠나지 못하게 된 대중들의 마음을 이 갯마을은 푸른 바다와 하얀 구름이 떠 있는 갯마을 풍경으로 사로잡는다.

도시를 중심으로 그려지곤 하던 멜로가 공진 같은 변방으로 나가게 된 건 그리 낯선 풍경만은 아니다. 이미 KBS <동백꽃 필 무렵>이 옹산이라는 변방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동백(공효진)과 용식(강하늘)의 가슴 따뜻한 사랑이야기를 전해주지 않았던가. <동백꽃 필 무렵>에서 옹산은 선입견과 편견, 차별이 존재했지만 차츰 이해와 화해를 통해 인간에 대한 신뢰와 희망을 주는 공간으로 드라마의 메시지를 대변했다. 물론 여기에는 변방으로 밀려난 공간이 공유하는 소외와 차별에 대한 공감이 그걸 가능하게 했다는 메시지도 담겨있다. 그만큼 공간은 인물과 닮았다.

<동백꽃 필 무렵>의 옹산이라는 변방이 용식이라는 캐릭터와 닮은 것처럼, <갯마을 차차차>의 공진이라는 갯마을은 주인공 홍두식(김선호)을 닮았다. 작은 변방의 마을처럼 보이지만 결코 얕잡아 볼 수 없는 곳인 공진에서 홍두식은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살아가지만 무능력한 인물은 아니다(사실상 모든 걸 다 잘 하는 사기캐릭터!). 게다가 홍두식은 변방에 떠밀려 온 그런 인물이 아니라 스스로 그 삶을 선택했다. 서울대까지 나왔고 직장생활도 했지만 그런 스펙들을 모두 던져버리고 공진이라는 마을에서 자신이 찾아낸 진짜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멜로드라마의 남녀 서사 구도로 보면 서울에서 내려와 이 작은 마을에 치과를 개원한 윤혜진(신민아)과 홍두식의 관계는 스펙으로 서열화 되곤 하는 과거의 구도에서 벗어나 있다. 홍두식은 빈부나 직업, 지위 같은 것으로 판타지화되어 세워진 인물이 아니다. 번듯한 서울 깍쟁이 치과의사인 윤혜진이 홍두식에게 빠져드는 건 도시의 경쟁적인 삶과는 정반대로 살아가는 공진 사람들의 가치관과 맞닿아 있다.

소나기를 만나 찝찝해하는 윤혜진에게 홍두식이 “그냥 그런대로 널 그냥 좀 놔둬”라고 하는 말은 이 멜로가 담은 판타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무언가를 지키려고 또 더 얻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 말만큼 달콤하게 다가오는 면이 있을까. 욕망의 끝에서 그 부메랑처럼 날아온 코로나19 같은 지구적 재앙 앞에서, 꽉 쥔 주먹을 이제 좀 느슨하게 풀어놓으라고 이 드라마는, 공진이라는 공간과 홍두식이라는 인물을 통해 말한다.

물론 이런 메시지는 홍두식이라는 인물만이 아닌 드라마 곳곳에 포진된 공진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도 담겨 있다. 오래 함께 살다보니 서로에 대한 소중함을 잊고 지내다 결국 이혼까지 하게 된 여화정(이봉련)과 장영국(인교진)이 서로의 가치를 알게 되는 이야기나, 불확실한 이야기까지 소문을 내 피해를 주기도 하는 떠버리 조남숙(차청화)이 사실은 딸을 잃은 상처를 이겨내기 위한 안간힘이었다는 이야기, 연애가 서투르지만 나름 표미선(공민정)에게 최선을 다하는 최은철(강형석)의 투박한 사랑, 함윤경(김주연)의 힘겨운 출산을 경험하며 그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된 남편 최금철(윤석현)의 이야기 등등. 소소하지만 결코 작지 않는 삶의 소중한 존재들이 바로 당신 옆에 있다고 공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빌어 드라마는 말한다.

수도권 인구가 사상 첫 50%를 돌파하고, 그 곳에 어떻게든 집 한 채 마련하기 위해 영끌해 투자하는 청춘들이 늘어났고, 내년 대선을 가를 관건으로 부동산 문제가 떠오르고 있는 현실이다. 도시를 둘러싼 삶은 이토록 시끄럽고 경쟁적인 전쟁터나 다름없다. 가만히 있어도 누군가 욕망을 툭툭 건드리고, 그렇게 피어오른 욕망들은 가시가 되어 가슴을 찌른다. 여기저기 피 흘리는 사람들 지천이다.

성공보다는 행복, 미래보다는 현재, 결과보다는 과정이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도시의 욕망은 성공을 꿈꾸고 좀 더 나은 미래를 원하며 어떤 결과를 얻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런 삶이 만들어내는 피로함은 점점 그 가치관의 중심지인 도시를 떠나 더 멀리 변방으로 우리의 마음을 이끌고 있다. <갯마을 차차차>의 홍두식 같은 삶의 선택(물론 그 역시 도시에서 어떤 상처를 입고 떠나왔지만)과, 그런 그를 동경하고 공감하며 사랑해가는 윤혜진 같은 인물이 그려내는 멜로가 자꾸만 마음을 잡아끄는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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