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로부터’, 게임 속으로 들어간 듯 가상과 현실이 겹쳐진 예능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이것은 게임 속인가 아니면 현실인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신세계로부터>는 꿈에 대한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어떤 긴 꿈을 꾼 것만 같다. 난생 처음 꾸어보는 꿈. 그곳의 일들은 마치 동화 같았다. 나는 동화를 믿지 않는다. 이것은 나와 우리들이 겪은 그곳으로부터의 이야기다.”

내레이션과 함께 글자로 채워진 동화의 첫 장을 연 것 같은 장면은 실사로 바뀌며 노란 벽면에 책상과 그 위에 놓인 선인장 화분, 찻잔을 보여준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날아온 스마트폰 메시지. ‘당신이 꿈꾸는 신세계는 무엇입니까?’ 휴대폰 속에 등장한 이승기, 김희철, 카이, 조보아, 박나래, 은지원은 저마다의 ‘신세계’에 대한 꿈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이들을 태운 요트가 그 신세계를 향해 다가간다. 우리나라에 그런 곳이 있었던가 싶은 섬. 외도 보타니아는 이들의 로망이 현실이 되는 완벽한 풍광과 마치 스페인 리조트를 연상케 하는 로망의 공간을 제공한다. 출연자들을 태운 카트가 각자의 신세계에 대한 로망대로 구현해놓은 숙소들을 안내할 때마다 그들은 연실 탄성을 질러댄다. 그리고 그건 시청자들도 마찬가지다. 저런 곳에서 단 하루만이라도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에게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범인은 바로 너>로 익숙한 조효진 PD의 상상팀이 이번에는 <신세계로부터>로 돌아왔다. <런닝맨>을 탄생시키며 게임 예능을 끝없이 진화시켜온 이들이다. <신세계로부터>는 일단 섬 하나를 통째로 빌렸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그것은 단지 블록버스터 같은 규모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이 예능이 이제는 아예 하나의 가상 게임의 공간을 구현해내겠다는 야심이라는 점에서 주목하게 만든다.

물론 <범인은 바로 너>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특정 상황들이 주어지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게임이 진행됐지만, <신세계로부터>는 아예 이 신세계로 명명된 공간 자체가 하나의 게임판이다. 그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이들은 첫 날부터 환영식을 빙자한 일종의 오리엔테이션 게임들을 시작한다. 게임머니를 확보하기 위해 섬 곳곳에 숨겨진 박스를 찾아다니고, 개개인에게 지급된 스마트폰에 확보한 게임머니를 채워 넣으려 안간힘을 쓴다.

여기에는 투표에 의해 누군가의 게임머니를 빼앗는 일종의 ‘서바이벌 투표 방식’도 동원된다. ‘뉴토피아 1.0’으로 불리는 단말기는 이 거대한 게임판이 된 섬에서 계속 주어지는 게임들을 수행하기 위한 중요한 게임도구로 활용된다. 흥미로운 건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마법 카드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런닝맨>에서도 종종 활용됐던 방식이긴 하지만, 완벽히 통제된 섬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이 마법은 훨씬 현실감을 준다. 예를 들어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 카드가 작동하면 신세계 중앙에 있는 시계탑의 시계가 몇 시간 전으로 되돌려지고, 본래보다 두 배 빠른 속도로 시간이 흘러가는 식이다.

게임 속을 현실에 구현해놨으니 당연히 상주하는 NPC(Non Player Character)들도 존재한다. 섬을 안내하는 이들부터 섬 구석구석에 있는 가게 판매원들이나 마법카드를 살 수 있는 상점, 각자 개개인에게 지급된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릴 수 있는 은행 등등에는 모두 NPC 개념의 인물들이 정해진 룰에 따라 게이머들을 응대한다. 상점부터 식당, 은행 등등 현실 세계의 많은 부분들을 게임화된 형태로 섬 곳곳에 구성해 놨고 6일 후 퇴소할 때 게임머니를 실제 돈으로 바꿔준다는 건 이 게임이 서로 연합과 배신이 들어간 서바이벌 요소와 더불어 부루마블 같은 재미요소들 또한 담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무엇보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끄는 건 로망을 자극하는 섬의 이국적인 풍광들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방콕 생활을 어언 2년 째 하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섬 하나를 통째로 빌려 6일 동안 벌이는 게임들은 그 자체로 판타지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치열한 두뇌게임, 심리게임이 벌어지고 그래서 더 격렬한 게임들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이를 모두 감싸 안고 있는 동화 같은 섬의 포옹 속에서 <신세계로부터>는 자극보다는 눈과 마음이 힐링되는 그런 순간들이 더 강렬하게 느껴진다.

이승기와 은지원, 김희철, 박나래 같은 베테랑 예능꾼들이어서 낯선 게임판에도 쉽게 적응하며 두뇌게임을 벌이는 재미요소와 더불어, 만만찮은 조보아와 카이의 반전 또한 기대감을 만든다. 물론 이들이 게임 중간중간 만들어내는 예능적 재미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이 예능 프로그램을 주목하게 만드는 건, 향후 이 프로그램이 게임 예능이라는 분야에 던질 파장이다. 이제 섬을 통째로 빌려 가상을 현실에 구현해냄으로써 아예 게임 속으로 들어가는 예능은 ‘게임을 풀어가는 재미’만큼 그 공간이 주는 즐거움을 강력한 유인으로 삼지 않을까. 우리가 게임을 하며 문득 문득 복잡한 세상의 현실을 잊을 때 갖게 되는 그 행복감을 <신세계로부터>는 제목처럼 예능의 신세계로 제시하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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