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당신에게 단 하나의 무대가 주어진다면(‘테이크 원’)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제가 얘기를 듣자마자 떠오른 상상은 댄서 200명이 선글라스 이렇게...레이저, 트로이목마... 그래서 비행기로 해야 돼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테이크 원>에서 제작진을 처음 만난 악동뮤지션의 이찬혁은 두서없이 상상을 있는 대로 늘어놓았다. 죽기 전 단 하나의 무대를 만든다면 어떤 무대를 할 것인가라는 <테이크 원>의 질문은 이찬혁이 이런 황당한 상상을 마구 쏟아내게 된 이유가 됐다.

그가 선택한 단 하나의 곡은 ‘낙하’. 다시 제작진을 만난 이찬혁의 상상 폭주가 이어졌다. “비행기 활주로에서 무대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스카이다이버가 프로페셔널하게 구름 위에서 뛰어내려서 떨어진 곳이 비행기 활주로인데, 그곳에 댄서 200명이 있고, 다 같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요. 외계인들처럼 거기에서 이제 암전이 돼요. 야외지만 암전이 돼요. 저를... 저를 멈춰주세요.” 마구 상상을 쏟아내던 이찬혁은 자신도 황당하다고 느꼈는지 자신을 멈춰달라고 말했고 제작진과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이 상상을 <테이크 원> 제작진이 실제로 실현해냈다는 점이다. 하늘에서부터 시작된 무대는 스카이다이버들의 화려한 활강으로 문을 열었고, 지상에서는 200명의 선글라스를 낀 댄서들이 순차적으로 계획된 카메라의 움직임에 맞춰 일사분란한 댄스를 선보였다. 이찬혁과 이수현은 단 한 번으로 끝나는 이 무대를 위해 카메라가 다른 곳을 잠시 비추는 사이 다음 장소로 뛰어가 다음 장면을 이어받아 찍는 일을 반복했다.

이찬혁과 이수현도 힘겹지만, 댄서들의 동선을 맞추고 그걸 단절 없이 영상으로 담아내는 카메라 촬영감독들의 촬영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스카이다이버가 액션캠으로 잡아낸 영상과 드론촬영으로 찍힌 영상들 그리고 카메라 감독과 스텝들이 이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만들어내는 영상까지 악동뮤지션이 원했던 ‘인생 무대’가 펼쳐졌다. 어떤 관객이 왔으면 하냐는 질문에, “나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 이찬혁의 말대로 그는 결코 잊지 못할 자신만의 무대를 완성했다.

<테이크 원>은 콘셉트가 심플하다. 제목에 모든 게 다 담겨있다. 단 하나의 인생 무대. 그래서 단 한 곡을 선택해야 하고, 그 곡을 어떤 무대로 선보일까를 뮤지션이 의견을 내면 제작진은 충실하게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준다. 악동뮤지션 이찬혁의 황당한 상상을 실현시켰던 것처럼, 비는 그 누구도 서보지 못한 공간에서의 공연을 이야기했고 결국 청와대에서 무대를 펼쳤다. 6년 만에 돌아온 임재범은 그간의 힘겨움을 재개발 아파트에서 코로나19로 힘겨운 나날들을 보냈던 소방관, 의료진, 자영업자들을 위해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부르는 무대로 풀어냈다.

다양한 공간에서 노래하고 버스킹도 했던 박정현은 한강 위에 바지선을 띄워놓고 유람선으로 초청한 관객들 앞에서 ‘송포미(Song for me)’를 노래 제목처럼 자신을 위한 노래로서 불렀다. 마마무는 오랜 만에 관객 앞에 서는 무대를 통해 자신들이 지금껏 불렀던 노래들을 작은 역사처럼 메들리로 불러 주었다. 단 하나의 무대와 단 하나의 곡으로 단 한 번의 공연을 한다는 <테이크 원>은 콘셉트는 심플하지만 그 묵직한 의미 때문에 뮤지션들마다 색다르고 다채로운 무대들이 만들어졌다.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뮤지션도 뮤지션이지만 이러한 전면에서 보이는 뮤지션들 이면에서 뛰고 또 뛰는 제작진과 스텝, 댄서 같은 무수한 분들의 노력이 카메라에 담겨졌다는 사실이다. 흔히들 K팝을 생각하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위에 서 있는 아티스트에만 집중하지만 그들을 완성시키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노력들이 있다는 것. 그것이 진짜 최근의 K팝이 가진 저력이라는 걸 <테이크 원>은 부지불식간에 드러낸다.

그것만으로도 이 프로그램이 가진 가치는 충분하다고 여겨질 정도다. 악동뮤지션의 진짜 악동 같은 이찬혁이 마음껏 상상할 수 있어 우리가 느끼는 그 기발함과 신박함이 어찌 보면 그 상상을 실현해내는 이면의 많은 이들 덕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테이크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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