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녀가 끝내 화합하지 못하는 이유(‘생존남녀’)
‘생존남녀’에 깃든 게임의 법칙, 작은 갈등도 배신으로

[엔터미디어=정덕현] 이들은 왜 끝내 화합하려 하지 않을까. 카카오TV 예능 <생존남녀>는 6일차에 룰을 바꿔 남녀가 하나의 중앙쉘터에서 함께 지내는 상황이 마련됐다. 밖에는 술래가 돌아다니고 있고 술래 역시 점점 경험치가 높아져 상상을 초월하는 전략으로 생존하려는 남녀들을 잡으려 위협한다. 당연히 이런 상황이면 그간 갈등해왔다고 해도 남녀가 한 팀이 되어 화합하는 게 유리하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들은 화합보다는 배신을 계획한다.

남녀가 팀을 나눠 10일 간 술래에게 잡히지 않고 생존해 최종 더 많은 생존자가 있는 팀이 1억 원의 상금을 나눠 갖는 게임. <생존남녀>는 그래서 남자팀과 여자팀이 다른 쉘터로 나뉘어져 5일 간 생존게임을 치렀다. 그간 많은 것들을 알게 됐다. 매일 보급품이 제공되지만 술래가 돌아다니고 있고 그래서 밖으로 나다니다 잡히면 감옥에 갇히게 된다는 것. 감옥에 갇힌 자들은 쫄쫄 굶어가며 추운 밤을 보내야 함으로써 스스로 자진 퇴소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것. 결국 6일이 지나 남자팀과 여자팀에서 각각 한 사람씩 퇴소를 결정했다.

이처럼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6일차가 되어 남녀가 한 쉘터에서 지내게 됐어도 이들은 처음 남자팀 여자팀으로 나뉘어 지냈던 때 서로 갖고 있던 갈등과 반목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각자 하나씩의 물건들을 갖고 중앙쉘터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여자팀은 남자팀을 믿지 못하고 자신들이 가져온 물건들을 숨긴다. 특히 무언가를 끓여먹을 수 있는 화구 버너가 있지만, 이를 드러내지 않는다.

여자팀이 무언가 남자팀을 속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남자팀은 한 명은 퇴소하고 다른 한 명(오킹)은 감옥에 잡혀 있어 수적으로 열세한 상황이라 여자팀과 겉으로 화합을 제의한다. 바깥에서 물을 가져오거나 감옥에 갇힌 동료를 구하는 일 등에 자신들이 나서는 모습으로 여자팀에게 호의를 갖게 만들려 한다. 하지만 남자팀 중 한 명(윤비)은 판세를 뒤집기 위해 은밀히 ‘배신’을 제의한다.

윤비와 그의 이런 제안을 마음에 들어하는 남자 팀원 룩삼이 바깥으로 나가 룩삼은 중앙쉘터에 남녀가 함께 있는 걸 아직 모르는 술래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고 술래가 쉘터를 공격할 때 안에 있던 남자팀 한 명(큐영)이 문을 열어주는 계획이다. 그리고 그 사이 바깥에 나가 있던 윤비가 감옥에 갇힌 오킹을 구해오는 것이었다. 사실 미친 계획처럼 보이지만 계획대로 된다면 진짜 남자팀과 여자팀의 판세가 뒤집힐 수 있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이것이 게임판이고 그래서 살아남아야 하는 전략이라고 해도 안에서 문을 열어줘 술래가 들어오게 만들고 그래서 더 쉽게 잡힐 수 있는 여자팀원들을 공격하게 만드는 계획은 어딘가 심리적으로 불편함을 만들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 전략은 먹혀 술래가 중앙쉘터의 문을 열려고 하자 큐영은 갈등한다. 그는 평소에도 화합이 자기 스타일이라며 강조했던 인물이었다. 문을 열어줄 것인가 말 것인가 갈등하지만 다음 회 예고를 보면 결국 그는 문을 열어준다. 어째서 이런 일들이 벌어진 걸까.

남자팀 여자팀으로 나뉘어 있지만, 그런 팀으로 갈라지며 생겨난 갈등의 틈들은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하나의 쉘터에서 함께 지내며 공존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전에 만들어졌던 불신들은 계속 이어지고, 여자팀이 신뢰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자 남자팀은 자신들을 ‘호구’처럼 본다고 생각하며 역시 불신하기 시작한다.

룩삼이 혼자 있을 때 여자팀들이 농담으로 남자팀이 다 잡히고 나면 구하러 갈 거냐고 묻자, 룩삼을 “안 간다”고 웃으며 말한다. 그러자 여자팀은 다른 남자팀원들이 다 잡혔다는 가정하에 룩삼을 받아주냐 마냐를 갖고 농담을 던진다. 이것저것 구해달라고 웃으며 요구하는 것. 그 앞에서 룩삼은 그런 농담을 받아주는 것처럼 넘어갔지만 “그건 노예잖아”라고 하는 말에는 슬쩍 감정이 묻어났다. 농담이라고 해도 기분을 건드린 것. 그는 인터뷰를 통해 당시 상황에서 “같은 팀이 되고 싶지 않은 행동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결국 이런 감정의 골은 윤비가 제안한 ‘미친 플랜’에 룩삼이 선뜻 참여하게 된 계기로 작용한다. 물론 이런 비슷한 일은 남자팀도 마찬가지로 저지른다. 맹승지가 전에 했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해 다시 묻자 아까 했던 말이라며 윤비가 “누나 치매 아니지?”라고 툭 던진 말 같은 게 그렇다. 그 말은 순식간에 맹승지를 기분 나쁘게 만들었고, 그런 감정은 에리카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작은 틈새도 소통의 부재를 넘어 불신 나아가 불쾌함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배신과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런데 이런 양상이 벌어지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애초 남녀를 대결구도로 먼저 세워져 있던 게임의 법칙 때문이다. 그런 법칙 자체가 없고, 남녀를 구분하는 일도 없었다면 화합보다 배신으로 치닫는 이런 양상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존남녀>는 물론 게임이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대결 양상을 통해 애초 ‘게임의 법칙’이 그 게임 안에 있는 인물들을 어떻게 만드는가를 들여다보게 해준다. ‘갈라진 세상’이라는 부제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남녀 사이를 ‘갈라치기’ 하는 게임의 법칙을 던져 놓으면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치고받는 싸움이 벌어지는 것. 그걸 관조적 관점에서 보게 만드는 <생존남녀>는 그래서 우리가 사는 현실을 반추하게 만든다. 지금 누군가와 별 이유도 없이 소모적인 대결을 벌이고 있다면 그 법칙을 던져놓고 즐기는 자와 싸워야 한다는 것. 괜히 게임 안에서 가치 없는 감정적 소모전을 벌일 게 아니라.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카카오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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