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무계한 ‘우리는 오늘부터’, 막장 아닌 정서적 공감의 문제

[엔터미디어=정덕현] SBS 월화드라마 <우리는 오늘부터>는 ‘혼전순결’ 이야기로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요즘 시대에 공감하기 어려운 대목이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의료사고로 라파엘(성훈)의 마지막 남은 정자를 받아 임신까지 하게 된 오우리(임수향)는 당연히 임신중단을 결정할 거라 생각했지만 갑자기 ‘생명’ 운운하면서 출산을 하기로 결심한다.

사실 현실성이 없고 시대착오적인 내용이지만 그래도 시청자들이 그러려니 했던 건 그 장면들을 코믹하게 그려내고 이건 대놓고 ‘막장’이라는 걸 작품이 솔직히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요즘은 과거와 달리 막장도 즐기는 시대에 들어섰고, 그래서 적당한 재미와 공감 포인트만 있으면 현실성과 상관없이 막장 전개도 그 황당함을 오히려 즐길 수 있게 된 것.

하지만 제 아무리 막장이라고 못을 박고 시작했어도, 공감할 수 없는 억지 설정은 즐기는 것조차 방해할 수 있다. 라파엘 아버지 이사장(주진모)이 제시한 20억도 받지 않겠다고 하고 아이를 낳아 라파엘 부부에게 주겠다는 오우리의 ‘이상한 선택’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자신이 낳을 아기에게 라파엘 부부가 최고의 가족이 되어줘야 한다며 그들을 뒷조사하는 오우리의 행동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아기의 미래가 걱정된다면 자신이 키우는 편이 낫지 않을까. 라파엘이 바람둥이라는 소문에 뒷조사를 하고, 아내 이마리(홍지윤)와 헤어질 결심을 한 라파엘에게 자꾸 부부사이는 괜찮냐고 묻는 오우리라는 인물은 과연 생각이 있는 인물인가가 의심스럽게 만든다. 최소한 막장이라도 주인공에 대한 공감대는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이상한 생각과 판단, 선택을 하면서 바보같이 웃는 인물에 어떻게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

물론 텔레노벨라 <제인 더 버진>을 리메이크한 작품으로서 저들과 우리 사이에 정서적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정화 감독은 이러한 정서적 차이를 봉합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는데, 어떤 노력을 했는지가 의심스럽다. 단지 자극적인 장면들을 덜어내는 것으로 정서적 차이를 넘어설 수 있을까. 그보다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통념과 상식의 잣대로 이야기와 캐릭터를 재구성했어야 하지 않을까.

<펜트하우스> 같은 막장드라마가 황당하고 자극적인 전개를 했어도 시청자들이 떠나지 않은 건 적어도 오윤희(유진)나 천서진(김소연), 심수련(이지아) 같은 인물들이 하는 일련의 선택에 나름의 이유나 근거를 제시하며 이를 설득하려 한 노력이 있어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는 오늘부터>는 오우리라는 인물이 그 ‘생각 없음’으로 인해 매력도 없고 공감대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현재 <우리는 오늘부터>는 어쩌다 의료사고로 타인의 정자를 받아 임신하게 된 ‘황당한 상황’만이 있을 뿐이다. 그 황당함을 재미로 이어갈 동력이 보이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시청률은 3.5%(닐슨 코리아)로 떨어졌다. 대놓고 막장이라고 주장하는 드라마가 재미도 최소한의 공감도 없다면 무슨 힘을 발휘할 수 있겠나.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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