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드라마에서 신파 정서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한국 드라마에서 신파는 그 어원과 달리 뉴웨이브가 아니다. 시청자들은 이미 신파, 하면 지루하고 빤한 드라마의 장면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달달하다 못해 오글거리는 사랑의 로맨스에서부터 부모자식간의 끊을 수 없는 혈연의 정, 불치병 스토리 등등. 이런 요소들은 시청자에게 빈정거림의 대상이 되는 일이 잦다.

그럼에도 많은 드라마들은 여전히 신파를 끌어들인다. 이쯤 되면 시청자와 신파 요소는 대결 구도에 이른다. 시청자들은 불치병이나 로맨스 설정을 비웃으면 이 대결에 이긴 것이요, 신파의 카운터펀치 한 방에 눈물 콧물을 쏙 빼면 결국 두 손을 다 든 것이다.

다만 과거처럼 신파는 대놓고 시청자의 눈물샘을 노리는 주재료로 쓰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장르극의 무뚝뚝한 피맛이나 웹툰 드라마의 얄팍한 단맛을 가리기 위한 양념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수사물이나 법정 드라마, 혹은 의학드라마에서는 종종 피해자의 사연이 신파적인 요소를 띄고 지나간다. 주인공들은 오히려 냉정한데, 스쳐가는 인물들의 사연은 굉장히 극적인 것이다. 이처럼 극적인 요소는 자칫 딱딱하고 긴장감만 있는 스토리에 인간미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그렇기에 SBS <낭만닥터 김사부>의 김사부가 냉철해도 이야기는 종종 촉촉해지는 것이다.

혹은 웹툰 기반의 드라마에도 신파 정서는 큰 역할을 한다. JTBC <이태원 클라쓰>의 복수극라인은 빤한 신파에 기반을 뒀지만 만화에 비해 큰 몰입도가 있다. SBS <어게인 마이 라이프>의 초기 가족서사의 바탕 역시 신파다. 하지만 만화에 비해 이야기는 몰입도가 올라간다. 아무래도 만화 속 2D 주인공의 대사가 아닌 배우들이 감정 연기가 실린 이야기는 그 힘이 다르기 때문이다.

맞다. 신파의 힘은 배우들의 감정 연기에 힘이 실릴 때 감정적인 무게가 실린다. 게다가 신파가 가지고 있는 사랑, 효, 복수 등의 감정은 인간이 지닌 가장 기본적인 감정이기도 한다.

2022년의 신파 정서는 tvN <우리들의 블루스>와 JTBC <나의 해방일지>를 통해 다시 중심에 올라서기도 했다. 두 드라마 모두 남녀 사이의 사랑, 우정, 부모와 가족의 이야기들을 감정적으로 끌고 간다. 신파 정서가 다량으로 들어갔지만, 두 작품은 그것을 각각 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제주도를 배경으로 인물들의 수많은 감정적 대립을 그린다. 그들은 전통적인 신파의 방식으로 오해와 갈등을 지나 결국 화해의 선으로 다가간다. 자칫 너무 감정과잉으로 느껴질 만한 이야기는 생각보다 깔끔하게 다듬어진다. 일단 각 스토리에 메인으로 등장한 차승원, 이정은, 엄정화, 한지민, 김우빈, 이병헌, 김혜자, 고두심 등의 배우들이 노희경 드라마에 어울리게 혹은 낯선 방식으로 캐릭터의 감정 연기를 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냈다.

특히 고미란(엄정화)과 정은희(이정은), 이동석(이병헌)과 강옥동(김혜자)의 감정 충돌 연기는 드라마를 굉장히 몰입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드라마를 잔잔하고 시원하게 다듬어주는 제주의 풍광 역시 한 몫을 했다. 드라마는 더 이상 스토리만의 승부가 아니다. 그 스토리를 품고 있는 영상이 이야기를 한 단계 다른 차원으로 끌어가기도 한다.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제주 풍광은 그런 역할을 톡톡히 했다.

반면 <나의 해방일지>가 보여주는 방식은 또 다르다. <나의 해방일지>는 말 그대로 신파 드라마의 뉴웨이브, 새로운 방식이다. 느린 속도로, 호소를 털어내고 ‘추앙’에 힘을 실어 감정에 침잠한다. 그래서 시청자들이 <나의 해방일지>가 품은 것이 드라마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임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허나 감정적으로는 스며들게. 그렇게 <나의 해방일지>는 굉장히 새로운 드라마처럼 다가왔으며, 구 씨(손석구)라는 익숙하지 않은 멜로 남주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늘 신파가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수많은 장르 드라마와 웹툰 원작 드라마에서 신파는 얄팍한 감정선을 엮는 풀칠처럼 쓰이다가 비웃음을 사기도 한다. 너무 빤한 신파의 감정선이 얄팍한 드라마를 더 초라하게 만드는 것이다.

한편 잘못 쓰인 신파는 드라마에 독이 되기도 한다. 아마 최근 방영중인 JTBC <클리닝 업>이 대표적일 것이다. <클리닝 업>은 예고부터 증권회사 용역 미화원 어용미(엄정화)와 그 동료들의 활약을 그릴 것처럼 묘사되었다. 하지만 드라마 초반은 어용미의 구구절절한 사연과 동료미화원들의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드라마의 맥을 끊었다. 구구절절을 덜어내고 좀더 깔끔하게 직진해야 했다. 드라마는 4회차에서 어용미와 안인경(전소민), 맹수자(김재화)가 단합해 대박 투자를 위한 작전을 짜는 전개에서야 탄력을 받는다. <클리닝 업>의 경우 쿨한 블랙코미디적 요소와 감정적인 신파 요소가 물과 기름처럼 겉돌았다. 이야말로 신파를 잘못 쓰는 최악의 조합인 것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tvN, SBS,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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