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가장 올드한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게 되는 역설

[엔터미디어=최영균의 듣보잡(‘듣’고 ‘보’고 ‘잡’담하기)]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 전 세계 TV 프로그램 순위 1위에 올랐다. 앞서 미국 순위에서 한국 드라마 최초로 등극한 정상을 4일 지키다가 마침내 지난 24일 세계 순위까지 정복했다. BTS와 영화 <기생충>에 이어 드라마에서도 과거 불가능해 보였던 글로벌한 반응이 일어났다. 넷플릭스 순위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미국, 유럽의 높은 관심이 필요한데 이를 이뤄낸 한국 콘텐츠가 또 탄생했다.

<오징어 게임>은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로 이정재, 박해수 등이 출연한다. 등장인물들이 약점을 극복하고 목숨 건 게임을 벌여 아슬아슬하게 살아남는 과정이 스릴과 강력한 감정 이입을 불러일으키면서 국적에 매이지 않는 보편적 관심을 얻고 있다.

그런데 다른 서바이벌 영화, 드라마와 <오징어 게임>의 어떤 차이점이 이처럼 뜨거운 글로벌 반응을 일으키는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고 있다. 사실 이런 류의 콘텐츠는 영화 <배틀로얄>, <카이지>, <신이 말하는 대로>, <아리스 인 원더랜드> 등 특히 일본에서 이미 많은 작품이 선보인 바 있어 일부에서는 <오징어 게임>에 대해 표절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서바이벌은 일본만이 아니라 영화 <10억>(한국), <데스 레이스>, <이스케이프 룸>, <쏘우>(이상 미국) 등 액션, 스릴러, 호러 등 다양한 장르와 결합돼 작품화된 지 오래라 서바이벌을 다룬다고 바로 표절로 단정짓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평가가 많다.

<오징어 게임>은 해외 서바이벌물에 비해 게임룰이 단순하고 게임 진행을 간결하게 다루면서 등장인물들의 서사에 힘을 많이 싣는다는 차이가 있다. 형사 스토리 라인처럼 튀는 요소로 여겨질 수 있는 부분도 있고 후반부 좀 늘어지는 흐름도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군더더기 없고 속도감 있는 전개로 충분히 좋은 반응을 얻을 만한 만듦새를 갖추고 있다.

특히 경기장과 진행요원 등 서바이벌 관련 요소들의 비비드한 색감은 수많은 목숨이 사라져가는 처절한 생존게임 상황이 주는 불편함은 줄이면서도 상황의 비극성은 극대화하는 역할로 <오징어 게임>의 성공에 기여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더해 VIP룸의 디자인과 인테리어적 설정 등 <오징어 게임>의 미술은 전반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이런 장점들만으로 <오징어 게임> ‘갑툭튀’ 대성공의 이유 찾기를 마무리하기에는 아직 아쉽다. 그리고 <오징어 게임>에는 다른 해외 서바이벌물과는 확실한 차별점이 존재한다. 세계 1위의 결정적 원인인지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다른 서바이벌물에서는 두드러지지 않는 장치가 <오징어 게임>에서는 강력하게 작동한다. 신파, 그리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환기다.

신파는 감동을 절제하지 않고 다소 흘러넘치게 하는 창작 방식이다. <오징어 게임>에서는 구슬치기 에피소드의 두 여성 참가자, 그리고 노인과 이정재 사이에서 대표적으로 고조된다. 이외에도 작품 전반에 걸쳐, 생존에 노력하면서도 가능한 한 인간성을 지켜보려는 이정재의 태도로 인해 다른 참가자들과의 관계에서 지속적으로 신파적인 상황들이 만들어진다. 이정재 외에도, 살아남기 위해 결국 흑화되는 참가자들 중 상당수가 그래도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고민하는 초중반부에는 소소한 신파적 순간들이 적지 않다. 이런 신파는 신자유주의 시대 처지가 더 악화된 약자인 참가자들간의 관계에서 발생하고 서바이벌 게임 자체는 신자유주의를 노골적으로 은유한다.

자유시장과 규제 완화, 세계화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는 현실을 생존 서바이벌 게임으로 만든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통한 완전고용의 해체, 복지 축소, 빈부격차 확대를 통한 계층 이동의 단절, 선후진국간의 경제적 상하구조 심화 등이 특징으로 분류된다.

극중 성기훈(이정재)은 실직한 자동차 공장 노동자인데 쌍용자동차 사태를 겪은 노동자를 강력히 연상시키는 회상장면이 등장한다. 쌍용자동차 사태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영향으로 발생한 대표적 사건이다. 그리고 성기훈을 포함한 생존게임 참가자들 대부분은 재기를 위한 사회안전망이 충분하지 않은 신자유주의 세상의 패배자들이다.

더 나아가 VIP-호스트-프론트맨-참가자들로 된 생존게임의 계급 구성은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관점에서의 국제경제 위계질서를 연상시킨다. 영어와 중국어를 쓰는 VIP들은 미국과 중국 등 글로벌 경제 패권국들을, 이들과 로컬의 사회적 약자인 참가자들 사이에서 생존게임을 운영하는 호스트는 한국의 기업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프론트맨이 극히 드문 계층 이동 사례라는 점도 같은 맥락이다.

신파, 그리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디스토피아적인 환기를 적지 않은 비중으로 다루는 것이 <오징어 게임>의 글로벌한 인기 비결인지는 알 수 없다. 외국인들이 SNS에 올린 <오징어 게임> 베스트 에피소드들이 신파에 해당하는 경우가 꽤 많기는 하지만 이 역시 정량화된 분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백신 수급, 자영업 타격 문제 등으로 볼 때 신자유주의적 질서의 문제점(후진국과 경제적 약자의 처지 악화)이 극대화된 코로나19 판데믹 시점에 <오징어 게임>이 뜨거운 반응을 얻는 것은 분명 연관성을 따져볼 만한 일이라 여겨진다.

신파는 한국에서는 요즘 올드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논의는 2000년대 활발하다가 언젠가부터 그 질서를 그냥 받아들이고 사는, 철 지난 테마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보면 <오징어 게임>은 한국에서는 굉장히 올드한 것들로 세계적인 공감을 이끌어낸 사례가 된다.

<오징어 게임>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인용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세계를 감동시킬 수 있는 힘은 그들의 최신 트렌드에 대한 신속한 추종에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오래 벼려지고 숙성된 가치들에서 나올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말이다.

최영균 칼럼니스트 busylumpen@gmail.com

[사진=넷플릭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