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돈룩업’, 코로나 시국이 만든 디스토피아 카타르시스

[엔터미디어=정덕현] <오징어게임>, <지옥>의 뒤를 잇는 올해 넷플릭스의 최대 화제작이 아닐까. 아담 맥케이 감독의 영화 <돈룩업>의 글로벌 반응이 심상찮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 메릴 스트립, 케이트 블란쳇, 롭 모건, 티모시 샬라메, 론 펄만, 아리아나 그란데 등등 엄청난 스타 캐스팅을 한 영화 <돈룩업>은 넷플릭스 순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서 전 세계 영화 부문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인도영화인 <민날 무랄리>에 대한 반응이 뜨거운 인도만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1위로 마치 <오징어게임>의 성공 흐름을 재연하는 느낌이다.

<돈룩업>은 천체 과학자들이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하게 된 거대한 혜성이 6개월 후 지구에 충돌해 종말에 이르게 될 거라는 설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런 소재의 영화는 이미 익숙하다. <딥 임팩트>나 <아마겟돈> 같은 영화가 떠오르니 말이다. 하지만 <돈룩업>은 이런 재난영화의 흐름과는 다른 전개를 보여준다. 6개월 후 다가온 종말의 상황에도 당장의 선거만 신경 쓰는 정치인들과 그 와중에도 돈벌이를 생각하는 글로벌 기업, 종말 얘기도 시청률을 위해 웃으며 소비하는 언론, 믿고 싶은 대로만 믿는 미디어들의 광기 등등을 블랙코미디로 그려낸다.

거의 유일하게 이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보는 천문학자 랜들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 그리고 테디 박사(롭 모건)는, 이 상황을 전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저마나 자기 눈앞에 있는 욕망에만 집착하는 이들을 보면서 미칠 지경에 이르고, 이 상황들은 그 자체로 빵빵 터지는 풍자 블랙코미디로 그려진다.

흥미로운 건 <돈룩업>이 보여주는 재난장르를 뒤틀어 그 디스토피아에서의 인간군상을 들여다보는 그 관점이 <지옥>의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다. <지옥>이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 앞에서 광기에 휩싸이는 군중들의 디스토피아를 어둡게 그려냈다면, <돈룩업>은 역시 다가오는 종말 앞에서 얼토당토하게도 위기에 대처하지 않고 제 욕망만을 채우려는 이들을 코미디로 풀어낸다. 놀라운 일이지만 <돈룩업>이 보여주는 종말은 그래서 참혹하기보다는 심지어 통쾌하게 다가온다.

이것이 이토록 통쾌한 종말(?)의 카타르시스를 주는 건, 최근 코로나19는 물론이고 전 지구적인 위기로 대두되고 있는 기후 변화 같은 재앙 앞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취하지 않고 눈앞의 이익에만 집중하는 현 세태의 부조리를 통렬하게 꼬집고 있기 때문이다. <돈룩업>이라는 제목에 담겨 있듯이 “(다가올 종말을) 올려 보지 말라”는 말에는 다가오는 정해진 재앙을 바라보지 않는 이들에 대한 조롱에 가까운 비판이 담겨 있다.

코로나 시국이 가져온 정서적 변화이겠지만, 올해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주목되는 키워드는 역시 ‘디스토피아’였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오징어게임>과 <지옥>이 그랬고, 이제 <돈룩업>이 그 뒤를 이어 올해의 대미를 장식하는 느낌이다. 전 세계 대중들은 올 한 해 적나라한 디스토피아를 담은 콘텐츠들을 통해 저마다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돈룩업>을 보며 빵빵 터지는 웃음 속에는 그래서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세계에 대한 강렬한 비판과 자조가 뒤섞여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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