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 진짜 수저 바꿔보는 발칙한 상상력 통했다

[엔터미디어=정덕현] 그 사람의 삶 자체를 바꿔 버리는 금수저의 등장. MBC 금토드라마 <금수저>의 판타지 설정은 사실 너무 직설적이라 우스운 면이 있다. 하지만 자기가 살길 원하는 친구의 집에 가서 그 금수저로 세 번 밥을 먹으면 그 친구와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이 판타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기 힘든 몰입감을 준다. 누구나 한 번쯤 금수저를 상상해 보지 않았을까. 부잣집에서 태어나 뭐든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이른바 금수저들의 세상에서 자신은 뭐 하나 갖기 어려운 흙수저라는 걸 실감했던 경험이 있다면.

만화가인 아버지와 보증 잘못 서 빚만 가득한 흙수저로 태어난 이승천(육성재). 으레 이런 동화 같은 판타지 설정이 그러하듯, 그는 어느 날 길거리에서 예사롭지 않은 노파로부터 ‘운명을 바꿔주는’ 금수저를 사게 된다. 반신반의하며 산 그 금수저를 들고 우연찮게 찾아간 도신그룹 후계자 황태용(이종원)의 집에서 밥을 먹은 이승천은 급기야 황태용이 자신을 친구의 돈을 상습적으로 뜯어낸 학폭 가해자로 몰아세우자 크게 다투고 다리 위에서 강물로 떨어져 죽을 위기를 넘긴다. 결국 절실해진 이승천은 황태용의 집을 찾아가 다짜고짜 밥 한 끼를 요구하고 그걸 먹고 난 후 진짜 운명이 바뀐다.

이승천은 황태용이 되고 황태용은 이승천이 된 상황. 하지만 이들은 스스로가 본래 누구였는가를 알고 있다. 다만 주변 사람들이 그들을 바꿔서 보게 된 것. 황태용이 된 이승천은 그래서 그 으리으리한 재벌가의 삶 속으로 들어가고, 황태용은 이승천이 사는 그 가난한 삶을 살게 된다. 황태용이 된 이승천은 평소 갖고 싶고 원하던 것들을 마음껏 살 수 있고, 또 돈도 많아 여전히 가난한 진짜 가족들에게 선물도 잔뜩 사서 보내준다. 그런데 이승천이 된 황태용도 폭력적인 아버지와 차갑기 만한 자신의 가족과는 너무나 다른 이승천 가족들과의 삶에 만족한다.

이처럼 이승천과 황태용은 서로의 위치가 바뀌어 저마다 갖지 못한 걸 갖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얻은 것만큼 잃는 것이 있다는 걸 경험한다. 재벌가 아들이 되어 이승천은 진짜 부모들의 빚을 갚아주려 하지만 거절당하고, 아들이 아니라 후계자로만 보는 황현도(최원영)나 친모가 아닌 서영신(손여은)과 살가운 가족 관계 같은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된다. 반면 이승천의 집에서 가난해도 진짜 따듯한 가족애를 느끼는 황태용은 바로 그 가난 때문에 무시하고 괴롭히는 박장군(김강민) 같은 아이들에게 상습적인 폭력을 당한다.

<금수저>는 이처럼 이른바 ‘수저계급론’으로 불릴 정도로 태생적으로 그 사람의 미래가 결정되게 된 우리네 현실을 그 배경으로 삼고 있다. 금수저가 되고픈 강렬한 욕망. 그래서 심지어 부모를 바꿔 수저를 바꾸게 된 이승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금수저로 수저를 바꿔 행복하게 될 수 있을까. 한 달, 1년 그리고 10년이라는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지고 그 때마다 수저를 원상태로 돌릴 수 있다는 이 판타지의 설정은 그저 수저를 바꿔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승천의 이야기가 결코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더 많은 걸 가지면 가질수록 커지는 욕망과 그래서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는 진짜 삶의 문제를 아마도 이승천은 수저를 바꿔 살아보는 이 시뮬레이션을 통해 깨닫게 되지 않을까. 어찌 보면 이 드라마가 직설적으로 그리고 있는 금수저 판타지는 황당할 수 있는 설정이지만, 누구나 한번쯤 상상을 하게 되는 진짜 수저로 나뉘는 현실 때문에 그 판타지는 강력하게 시선을 잡아끈다. 그래서일까. 첫 회 5.4%(닐슨 코리아) 시청률로 시작한 드라마는 이 판타지가 본격 가동된 2회 만에 7.4% 시청률을 기록했다.

가상의 드라마지만 저 바뀐 삶 속으로 들어가 그 욕망들이 채워지는 걸 바라보게 만드는 <금수저>. 하지만 그 욕망의 충족은 과연 만족감과 행복만으로 돌아올까. 그만한 대가가 동반되지 않을까. 수저를 직접 바꿔 본다는 발칙한 상상력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이들은 과연 이 판타지의 끝에서 무얼 얻게 될지 자못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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