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 말해요’에 담겨 있는 ‘나의 아저씨’의 향기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그래도 안 망해요. 사람 걸음걸이만 봐도 알아채지고 그런 거 있잖아요. 근데 그쪽은 절대 안 망해요.”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 <사랑이라 말해요>에서 우주(이성경)는 동진(김영광)에게 그런 말로 위로를 건넨다. 퇴사해 회사를 차렸다는 이유로 앙심을 품고 망하게 하려는 신대표(신문성) 때문에 힘겨운 상황에 놓인 동진에게 무심한 듯 건네는 위로.

그런데 우주는 이 회사의 인턴사원이다. 그리고 복수하기 위해 회사에 들어왔다. 아버지의 내연녀였던 동진의 어머니 마희자(남기애) 때문에 인생 자체가 꼬여버렸기 때문이었다. 마희자를 따라 아버지는 집을 나갔고, 화를 속으로 삭이던 엄마는 암에 걸렸다. 마희자와 함께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량으로 우주는 자신이 얼마나 망가지는가를 보여주겠다는 듯 뛰어들었고, 그것으로 양궁 유망주로서의 꿈도 꺾어졌다.

아버지가 사망하고 자식들이 살아왔던 집이 마희자에게 넘어가자 우주는 무슨 짓이든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심정이 된다. 그래서 동진의 회사에 인턴으로 ‘위장(?) 취업’을 했고 그렇게 망하게 하려던 것이었는데 마음이 바뀌었다. 자꾸만 이 지독하게 쓸쓸한 남자의 등이 눈에 걸린 것이었다. 복수를 위해 배신을 하려던 인턴이 마음을 돌려 그를 위로하고 보호하게 되는 이야기. 이 구도는 어딘지 <나의 아저씨>를 떠올리게 한다. 사환으로 있던 이지안(이지은)이 도준영(김영민) 대표의 사주를 받아 박동훈(이선균)을 곤경에 빠뜨리려 했지만 그의 외로운 실체를 공감하고 외려 그를 이해하고 도우려 했던 그 이야기.

“나는 그쪽이 맘 편히 그 집에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한동진 씨는 절대로 나 좋아하지 마요. 그 쪽만 나 좋아하지 않으면 아무 문제없는 거니까. 부탁하는 거예요.” 퉁명스럽게 말하지만 그 안에 남다른 애정과 연민의 느낌이 담겨있는 말투나, 직장 내에서의 위기상황 속에서 그들을 위협하는 이들과 맞서 싸우고 이를 응원하는 구도도 그렇다.

무엇보다 직업이 드라마가 하려는 메시지를 은유하는 방식이 비슷한 감흥을 준다. <나의 아저씨>에서 흔들리는 건물을 내력과 외력으로 진단하는 박동훈의 직업 건축구조기술사가 흔들리는 중년의 삶을 은유했듯이, <사랑이라 말해요>에서 동진이 하는 캠핑 관련 사업은 이 드라마에서 중요한 소재인 ‘집’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우주도 동진도 진정한 의미의 ‘집’이 없어 쓸쓸하게 방황하는 청춘이다.

물론 동진은 자신의 집이 있지만 그 집에는 온기가 없다. 엄마도 없고 사랑했던 이도 그를 배신하고 떠났다. 공간으로서의 집은 있지만 그건 집이 아니다. 우주는 남매가 살아왔던 집을 빼앗겨 절친인 윤준(성준)의 집에 얹혀산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는 유독 동진과 우주가 퇴근 후 밤거리를 배회하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것 역시 <나의 아저씨>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퇴근길 밤거리 풍경을 닮았다.

동진과 우주가 함께 캠핑을 하러 가는 장면은 그래서 이 드라마에서는 의미심장하다. 집이 아닌 캠핑장에서야 느끼는 편안함. 진정한 의미의 편안한 집이 없는 청춘들이 집 바깥에서 대안적인 집을 찾는 이야기. <사랑이라 말해요>가 소재로 삼고 있는 직업 관련 이야기는 이처럼 그저 소재의 차원을 넘어 이 드라마가 하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랑이라 말해요>를 보면서 마음 한 구석이 아련해지고 또 불쑥 들어오는 진심 때문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런 순간들은 <나의 아저씨>가 보여줬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건네는 마음에서 비롯됐던 그 감정들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이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그 상황을 공감하며 나아가 위로와 응원을 건네는 일. 그것만큼 우리의 마음을 촉촉하게 해주는 게 있을까.

<나의 아저씨>와 달리 <사랑이라 말해요>는 제목에 담긴 것처럼 우주와 동진의 사랑을 본격적으로 담는다. 그런데 그 사랑에는 단지 남녀 간의 사랑 그 이상의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는 그런 의미에서의 사랑이 들어 있다. 그래서 <사랑이라 말해요>라는 제목은 복수를 하려다 마음이 자꾸 가게 되는 그 상황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남녀 간의 사랑의 차원을 넘는 인간애에 가까운 마음 역시 ‘사랑’이라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디즈니 플러스,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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