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광과 이성경의 사랑은 어떻게 최고의 복수가 됐나
‘사랑이라 말해요’, 감히 디즈니+ 최고의 K드라마라 말할 수 있는 건

[엔터미디어=정덕현] “제가 한동진 씨를 좋아해요. 아줌마 아들인 거 처음부터 모르지 않았고, 그 사람이 상처받을 걸 뻔히 알면서도 못 멈췄어요. 아줌마한테 사과는 안 해요. 안 미안하니까. 대신에 오늘부터 그만 미워하고 그만 원망할게요. 그리고 잘 사시길 바랄게요. 진심이에요.”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 <사랑이라 말해요>에서 심우주(이성경)는 한동진(김영광)의 엄마 마희자(남기애)에게 그렇게 고백한다. 불륜으로 아버지를 빼앗아갔고, 아버지가 사망한 후 그들이 살던 집까지 빼앗아간 마희자. 심우주는 마희자에게 복수하려 했고, 그래서 의도적으로 그 아들인 한동진의 회사에도 들어갔었다.
그렇게 미워하고 복수하려 했던 마희자에게 심우주는 ‘그만 미워하고 그만 원망한다’고 말하며 심지어 “잘 사시길 바란다”고까지 한다. 아버지의 유언장을 숨기고 사기로 집을 팔려고까지 했던 마희자는 그 사실이 발각되어 감옥에 가게 될 처지였다. 그래서 뻔뻔하게도 심우주를 찾아 처벌불원서를 받으려 했었다.

그런데 도무지 염치라는 것 자체가 없어 보이는 마희자가 심우주의 이런 말들에 흔들린다. 그건 다름 아닌 그가 자신의 아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이야기고, 심우주와 그 집안에 그토록 패악질을 해댄 자신이 그들을 헤어지게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 역시 알기 때문이다. 염치 없는 마희자도 아들 이야기에는 흔들린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온 마희자는 아들에게 묻는다. “동진이 너도 걔 좋아했니?” 그러자 동진이 아무런 힘도 없이 툭 내뱉는 말이 마희자의 심장을 찌른다. “네. 심우주 씨 덕분에 처음으로 행복했고 제가 더 좋아했어요.” 거의 버려지다시피 자란 동진은 마희자에게 내내 행복한 적이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 말과 드디어 심우주를 만나 처음으로 행복했다는 말이 못내 밟힌다. 그렇게 아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고 그래서 행복했지만 그들은 헤어질 수밖에 없다. 바로 자신 때문에.

<사랑이라 말해요>는 복수극이다. 아버지의 불륜으로 인해 집안이 풍비박산되고 아버지가 죽고 나서도 그 집을 빼앗은 내연녀 마희자에 대한 심우주의 복수극. 하지만 그 복수극은 엉뚱하게도 미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사랑으로 인해 비로소 이뤄진다. 심우주와 한동진의 사랑은 마희자에게는 비수 같은 상처가 된다. 자신이 저지른 일들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만들 정도로.
“가끔 남들은 다 앞으로 걷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나만 늘 뒤로 걷는 기분일까. 궁금했는데, ‘미워하는 마음이 무거워서 그랬구나’ 내려놓고 나니까 결론이 났어요. 한동진 씨 안 만났으면 나는 평생 뒤로 걸었을 거예요.” 미워하는 마음이 만들어내는 삶의 무거움. 그래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뒤로 뒤로만 걷게 되는 삶. 그건 어쩌면 자신마저 파괴하는 삶이 됐을 터였다.

하지만 한동진이라는 사람은 아프고 힘들어도 올바르고 선한 길을 꿋꿋이 걸어 나가는 사람이었다. 어머니인 마희자가 자기 인생의 ‘약점’이었지만 그마저 등에 짊어지고 가는 사람. 그래서 자신이 망가지더라도 마희자가 상처 준 피해자들에게 대신 사과하고 보상을 해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또한 끝내 그 선한 길을 선택하는 것으로 새로운 길이 열릴 거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심우주가 준 상처보다 심우주한테 받은 마음이 더 커서 미워할 수가 없었어요.... 다 줬어요. 응원, 위로, 사랑. 나는 다 받았어요. 나도 고마워요. 나 사랑해줘서.” 그건 사랑의 고백이면서 동시에 이별의 말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사랑은 그 누구보다 상처를 줬던 사람들에 대한 최고의 복수이기도 했다.

멜로드라마의 틀에 복수코드와 더불어 휴먼드라마의 온기를 더해 넣은 <사랑이라 말해요>는 최근 보기 드문 깊이를 가진 작품이었다. 인물 하나하나의 내면을 섬세하게 따라가는 대본의 촘촘함은 이를 통해 사랑과 미움의 변주를 기막히게 포착해냈고, 김영광과 이성경은 물론이고 성준, 하니, 김예원 같은 배우들은 깊은 몰입으로 캐릭터를 살아 숨 쉬게 했으며 이광영 감독의 감성적인 연출이 인물의 감정들을 켜켜이 쌓아 시청자들을 빠져들게 만들었다.
디즈니 플러스에서 다양한 오리지널 K드라마들이 소개되었지만, 감히 단언컨대 <사랑이라 말해요>만큼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은 보기 힘들었다. 배우들에게도 인생캐릭터를 부여한 작품으로 남을 것이고, 아마도 시청자들에게도 인생드라마라는 칭호를 받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디즈니 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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