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와 범죄스릴러가 만나 청춘을 이야기하는 ‘악귀’
‘악귀’로 돌아온 김은희 작가, 장르 속에 숨겨진 깊이와 통찰

[엔터미디어=정덕현] 김은희 작가는 오컬트 장르와 범죄스릴러를 겹쳐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한 걸까. 어찌 보면 죽음과 밀접한 이 두 장르의 결합은 더 강력한 극성을 떠올리게 한다. 귀신같은 초자연적인 존재가 등장하는 것만도 잔뜩 긴장하게 만드는데, 여기에 보이스피싱 사기부터 몰카범 같은 공분을 자아내게 만드는 범죄까지 더해지기 때문이다.

새로 시작한 SBS 금토드라마 <악귀>는 그래서 극성이 세다. 첫 회부터 줄줄이 죽음이 이어진다. 구산영(김태리)의 아버지인 민속학자 구강모(진선규)가 그 첫 희생자다. 무언가에 쫓기듯 자신이 거처하는 화원재로 돌아온 그는 무언가 건드리지 말아야할 물건을 꺼내놨고, 문 밖에서 문을 열어달라는 그의 어머니 김석란(예수정)의 목소리에 결국 문을 연다. 하지만 문 앞에 서 있는 건 김석란이 아니라 구강모와 똑같이 생긴 악귀였다. 그가 씩 웃으며 “문을 열었네?”라고 툭 던지는 말은 이제 <악귀>라는 세계가 열렸다는 의미처럼 들린다.

이 악귀는 돈도 없고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흙수저 청춘 구산영의 몸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가 관계한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하는데, 구강모가 죽기 전 도움을 요청했던 귀신 보는 민속학 교수 염해상(오정세)은 그것이 악귀 때문이라고 한다. “악귀는 그 사람의 욕망을 들어주면서 커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구산영이 싫어하거나 없어졌으면 하는 사람들이 죽어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구산영의 어머니에게 보이스피싱 사기를 치고도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사기범이 무언가에 홀린 듯 돈을 찾아 건물에서 흩뿌린 후 자살을 하고,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한밤중 창문을 열고 몰카를 찍다 들켜 달아나던 학생 중 한 명이 계단에서 굴러 사망한다. 귀신의 존재 따위 믿지 않던 구산영은 실제로 자기 주변에 이런 죽음들이 생겨나자 염해상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되고 문밖에 서 있는 귀신을 거울을 통해 보게 된다.

이처럼 <악귀>는 귀신이 나타나 누군가를 죽이는 오컬트 장르지만, 귀신이 죽이는 존재가 보이스피싱 사기범이나 몰카범 같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힌 범죄자들이라는 점에서 범죄스릴러가 겹쳐져 있다. 그런데 이 겹침에는 겉으로 드러난 사건들 이면에 존재하는 ‘감정들’이 있다. 즉 보이스피싱 사기범이나 몰카범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공분의 감정이 그것이다. 즉 악귀라는 초자연적인 존재의 탄생은 ‘저런 짓을 하는 이들은 사라졌으면 좋겠다’ 느끼는 그 감정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그 악귀가 빙의된 인물이 하필이면 구산영이라는 흙수저 청춘이라는 점은 그가 갖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불만이나 불편, 분노 같은 감정들을 이 오컬트 범죄스릴러에 깃들게 해준다. 범인을 추적하고 심지어 그 일을 저지르는 귀신들을 뒤쫓는 흥미진진한 장르적 묘미를 전해주지만 거기에는 현실에 짓눌려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청춘’의 서사가 더해진다. 오컬트와 범죄스릴러를 통해 ‘청춘’의 이야기를 담을 거라고 한 김은희 작가의 말이 실제로 구현되는 세계관이다.

역시 스릴러의 대가인 김은희 작가의 필력은 첫 회만으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고, 진선규로부터 시작해 김태리, 오정세, 홍경, 김원해 같은 연기 구멍이 1도 느껴지지 않는 배우들이 시작부터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만든다. <VIP>로 오피스 멜로에 사회적 메시지까지 담아냈던 이정림 감독의 서늘하게 느껴지는 화원재 같은 공간연출이나 첫 회부터 꾹꾹 눌러내는 배우들의 감정 연기를 담아내는 연출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이 모든 요소들 중에 가장 도드라지는 건 역시 김은희 작가가 펼쳐놓은 독특한 세계관이다. 민속학이라는 한국 문화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소재를 가져와, 자신이 가장 잘하는 범죄스릴러에 오컬트라는 장르까지 덧붙여 그 재미는 물론이고 심지어 ‘청춘’들을 위한 깊이와 통찰이 담긴 메시지까지 담아내는 세계라니. 향후 어떤 숨 막히는 전개가 펼쳐질지, 또 그런 전개를 통해 어떤 울림 가득한 메시지를 던질 것인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