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외면받는 예능들, 그래도 기대할 제작진들이 있다는 건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천년만의 폭우가 지나가자 이번엔 폭염이다. TV가 유일한 위안거리일 분들께 한 점의 청량함을 선사하면 좋으련만 어째 TV를 보면 더 더워진다. 울화가 치밀기 때문일 게다. 7월 31일 tvN story <회장님네 사람들>에 조영남이 출연했다. 김수미가 ‘언니 얘기 하지마’ 입단속을 했지만 이미 뱉은 말을 어찌 주워 담겠는가. 눈 가리고 아옹이랄 밖에.

2021년 4월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 여러 예능 프로그램을 섭렵해온 조영남. 시상식 두 달 뒤 6월 KBS <살림하는 남자들>을 시작으로 MBN <신과 한판>, SBS <미운 우리 새끼>에는 수차례나 출연했고 올 3월 채널A <금쪽 상담소>에도 나왔다. 그런데 내용이 거기서거기다. 그분 얘기를 우리고 또 우려낸다.

이번 <회장님네 사람들>에서는 심지어 막내 조하나가 제일 예쁘다며 주책을 떨기까지 했다. 사실상 출연 목적은 그림 대작 사건이 무죄 판결이 났다는 얘길 하고 싶어서가 아닐는지.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김수미가 진중권에게 부탁해서 옹호 글이 나왔었다는 소리를 되풀이 했다. 은혜를 갚고자 <회장님네 사람들>에 나왔다나. 이건 나오라고 부른 사람이 문제다.

그런가하면 그 전날인 30일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중식 요리사 이연복이 자신의 동생이 경영하는 식당을 소개했다. 아들, 사위, 제자로 부족했는지 이젠 동생까지 데리고 나온다. 개인방송인가? 제발 업계 원로를 자처하는 분들, 어른에 합당한 행보를 보여주면 좋겠다. 그리고 몇 시간 뒤 <걸어서 환장 속으로>에서는 박나래가 어머니와 친구 분들을 모시고 이탈리아에 갔다. 딸이 땀을 뻘뻘 흘리며 사온 피자 앞에서 박나래 어머니가 말하길 우리나라 피자가 더 낫단다. 이런 분들이 앞세우는 말이 있다. ‘내가 솔직해서’, 아니다. 배려 없고 무례한 거다.

이 모든 것이 며칠 동안의 일이다. 이러니 TV가 사양길일 밖에. 볼게 없어도 너무 없다 보니 ‘예능도 이리 만드는 게 가능하구나’, 감탄했던 예전 예능 프로그램 생각이 났다. 재미와 감동이 있고 울림이 있고, 기승전결이 있는, 한편의 작품 같았던, 2014년 2월에 방송된 KBS <1박 2일> ‘서울 시간여행’ 편이다. 그날 서울 곳곳에서 촬영을 하는 미션으로 고 김주혁이 명동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오버랩 되듯이 한 장의 사진이 공개되었다. 1967년 명동성당에서 포즈를 취한 김주혁 부모님 사진이었다. 제작진이 김주혁, 차태현, 김종민, 각자의 아버님과 합성한 사진을 선물로 주었다. 어떠한 미사여구가 필요 없는, 출연진과 제작진, 시청자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시간이었다.

“처음부터 특별한 장소는 없다

추억이 그곳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뿐“

이날의 자막을 노트에 적어두었다. 공감의 달인, 유호진 PD의 감성이다. 예능 프로그램은 PD의 예술이 아니겠나. 똑같은 재료라 할지라도 PD의 시선이며 가치관에 따라 천차만별 다를 수밖에 없다. 편집이라는 게 일종의 요리인지라 손맛에 따라, 재료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달라지는 거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믿고 보는 PD들의 태반이 유호진 PD를 사수로 조연출 생활을 했단다. <홍김동전>의 박인석 PD, <유퀴즈 온더 블록>의 김민석 PD, <대화의 희열>의 신수정 PD, 아 그래서 그랬구나! 무릎을 쳤다.

흔히 예능이 재미를 위해서, 화제성을 쫓아서 출연자를 먹잇감으로 던지는 일이 종종 있다. 특히 일반인들의 경우 가차 없이 이용하고 망설임 없이 버린다. 그러나 유호진 PD의 최근작 tvN <부산 촌놈 IN 시드니>를 보라. 멤버들의 사수, 현지인들을 어떤 식으로 담고 그렸는지 보신 분들은 아마 잘 아실 게다. 배려와 존중이 있었던 <어쩌다 사장> 시리즈는 두 말하면 잔소리이겠고.

<유 퀴즈 온더 블록> 애청자라면 이 프로그램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실 게다. <유 퀴즈 온더 블록>이 없는 수요일은 상상하기 어려웠건만 요즘은 솔직히 의무감으로 보고 있다. 달라진 이유는 요리사가 바뀌었기 때문이리라. 다시 말해 이제는 김민석 표 <유 퀴즈 온더 블록>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창 때의 <유 퀴즈 온더 블록>은 프롤로그부터 에필로그까지, 귀여운 모션그래픽이며 PD들이 공들인 내레이션이며 자막 하나하나가 한편의 작품이었지 않나.

그러나 언젠가부터 유명인들이 줄을 대듯이 출연하기 시작했고 김민석 PD가 아예 업무에서 배제됐다는 뒷말이 들렸었다. 오죽하면 자식 같은 <유 퀴즈 온더 블록>을 뒤로 하고 퇴사를 했겠는가. 그런 김민석, 박근형 PD의 새 프로그램 JTBC <택배는 몽골몽골>이 오는 18일 첫 방송된다고 한다. 전쟁터 같은 금요일 방송이고 ‘용띠클럽’이 주는 기시감이 살짝 걱정이긴 한데 공개된 티저 영상을 보니 다시금 기대감이 부풀어 오른다. 차태현과 김민석 PD의 조합, 기대해도 되겠지?

 

정석희 TV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사진=tvN story, KBS, tvN,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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