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재탕 액션 ‘황야’, 마동석이 때리고 이희준이 살렸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넷플릭스 영화 <황야>에 완벽한 비평 잣대를 들이댈 필요는 없다고 본다. <황야>는 B급 액션영화를 염두하고 시작한 프로젝트로 보인다. 지진 이후 약육강식의 미래를 보여주는 플롯은 단순하고, 각 캐릭터의 성격 역시 단순하다. 또 OTT시대의 이소룡이 된 팝콘 근육질 마동석의 시원한 액션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할 시청자들도 많을 것이다. 스트레스해소용 콘텐츠로서의 역할은 하기 때문이다. 사실 스트레스를 주지도 않을 만큼 스토리가 단순해서 그게 문제라고 느껴질 정도이니.

다만 <황야>는 인스턴트한 B급 영화의 툴을 가지고 있지만 이상하게 비평의 잣대를 들이대고 싶은 마음이 들기는 한다. 2023년 화제작이자 대한민국 자본주의 사회의 많은 것들을 은유했던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맞닿는 지점이 많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황야>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배경이 되는 아파트와 그 외 많은 배경을 사골처럼 우렸을 뿐 메시지까지 공유하는 것이 아니다. 그 때문에 <황야>가 미래의 묵시록을 예언하는 진지한 영화로 보인다면 서둘러 그런 생각을 털어야 이 영화를 끝까지 즐길 수 있다.

<황야>는 일단 재미있어 보이는 것은 무조건 끌어와서 한 냄비에 집어넣은 잡탕 성향의 영화에 더 가깝다. 악어고기를 파는 남산(마동석)부터가 <범죄도시> 시리즈의 형사 마석도를 살짝 수정한 듯한 캐릭터다. 심지어 <황야>는 마동석의 캐릭터를 차별화하려는 노력보다 대놓고 비슷한 점을 만들려고 노리는 듯도 하다. 남산은 깡패두목 타이거(박효준)가 훔친 차량을 타고 이주예(이한주)가 납치된 아파트로 돌진한다. 그런데 하필 그 차량이 대형 경찰차다. 그 외에도 할리우드 고전 SF <매드맥스>를 비롯해 다양한 장르물에서 차용해서 헝겊처럼 기운 플롯 역시 수많은 과거 장르물의 재료를 넣고 끓인 재탕으로 느껴진다.

문제는 <황야>가 끌어온 수많은 재탕이 그냥 그대로 끓고 있을 뿐 특별한 맛은 없다는 데 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부터 마동석, 기존의 장르물 요소까지 다 끌어왔지만 정작 그 맛은 좀 평범하다. 아예 B급 감각의 날을 세워 센스 있게 유머코드를 비틀어보거나 속도감 있는 연출로 시원한 느낌을 더 주었다면 어땠을까?

<황야>는 극 초반에 나온 가짜 악어처럼 어슬렁댈 뿐 사람들을 몰입시키는 인상적인 코드는 거의 없다. 단 양기수(이희준) 박사가 지배하는 아파트의 풍경, 특히 10대 청소년을 몰아넣은 교실 풍경이 살짝 북한과 비슷한 느낌이 들기는 한다. 위대한 수령 같은 이미지의 양기수 박사를 위해 어쩌구, 저쩌구 하는 교육이나 이런 것들 말이다. 독재와 세뇌의 세계를 풍자하려 했다면 한 걸음 더 깊게 들어갔어도 나쁘지는 않았을 것 같지만, <황야>는 그 부분에 투자를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황야>는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은 있다. 그 이유는 영화의 숨겨진 잠재력보다 배우 마동석과 이희준 이 두 주인공 덕이 크다. <황야>의 단순하고 유치해 보이는 플롯 안에서도 마동석의 액션만은 생동감을 얻는다. 마동석의 액션은 언제나 그렇듯 날렵한 맛이 있지는 않다. 둔탁하고 느리지만 거침없고 시원하다. 촬영기법으로 꾸미지 않은 날 것의 이 액션은 잡탕 활극 <황야>에서도 빛이 바래지는 않는다. 다만 액션 외에 마동석의 남산 연기가 딱히 호연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연기로 빛을 발하는 건 양기수 박사를 연기한 이희준이다. <황야>에서 이희준은 수많은 콘텐츠에서 보아온 괴물 박사이자, 이상한 광인 캐릭터를 보여준다. 이희준의 연기는 원래 생활연기와 극적 연기의 줄타기 같은 맛이 있다. 그게 이 배우가 그려내는 캐릭터들의 독보적인 생생함이 되기도 한다. <황야>에서 이희준이 양기수 박사를 너무 장르적으로 연기 했다면 오히려 유치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희준은 양기수 박사를 그의 연기스타일로 훌륭하게 재해석한다. 뭔가 빤한 사이코박사와 빤하지 않은 사이코박사 사이에서 친숙한 인간으로 보이는 지점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마술적 리얼리즘의 경지랄까?

결국 <황야>는 빤한 킬링타임 영화지만 마동석이 때리고 이희준이 연기로 살려낸 부분이 크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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