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월드’, ‘하이드’, ‘멱살 한번’, 어째서 남편들은...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남편들이 어딘가 수상하다. 그저 자상한 남편들처럼 보였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사건은 그 남편들의 수상하고 충격적인 비밀을 아내들 앞에 꺼내놓는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에 공통적인 서사로 들어가 있는 이야기들이다. 어쩌다 남편들은 이런 수상한 존재가 되어버린 걸까.

MBC 금토드라마 <원더풀 월드>는 평범했던 은수현(김남주)네 가족에 벌어진 비극이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지는 사건들을 그리고 있다. 은수현의 아들 강건우(이준)가 뺑소니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처벌도 사죄도 하지 않은 가해자 권지웅(오만석)을 은수현이 참지 못하고 살해한다. 은수현은 그 죄에 대한 처벌을 받고 옥살이를 하다 나오지만, 그의 사적 보복은 그 가해자의 아들 권선율(차은우)에 의해 또 이어진다. 정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사회의 문제들을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통해 꼬집는 드라마다.

그런데 이 드라마 속 은수현의 남편 강수호(김강우)는 어딘가 수상하다. 방송사 스타 앵커이고 자상한 남편이자 아빠처럼 보였지만 감옥에서 나온 은수현 앞으로 어느 여인과 불륜행각을 벌이는 사진 한 장이 도착한다. 은수현은 그 상대 여성이 금 갤러리 관장이자 이웃집 여자 윤혜금(차수연)이라 판단하지만 아직까지 확증하기는 어렵다. 은수현의 전 매니저이자 친자매 같은 동생 한유리(임세미)와 모종의 관계가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그는 권지웅을 처벌받지 않게 한 정치 권력자 김준(박혁권)과 대립하고 있지만 어딘가 그 자신도 수상한 냄새를 풍긴다.

JTBCX쿠팡플레이 드라마 <하이드>에서도 나문영(이보영)의 남편 차성재(이무생)는 수상하다. 어느 날 갑자기 출근하겠다고 나갔던 남편이다. 그런데 실종이 됐고 급기야 벼랑 끝에서 떨어진 차량에서 사체로 발견됐다. 시어머니의 강권으로 자살로 종결처리되고 부검없이 화장됐지만 나문영은 그저 자상하기만 해보였던 남편의 실체와 마주하게 된다. 수십 억에 달하는 빚에 쪼들리고 리조트 건설과 연루된 비리와 결탁한 사실들이 드러나고, 급기야 죽은 줄 알았던 남편이 자살한 척 자작극을 벌였다는 것 또한 알게 된다.

평범하고 자상해 보였던 남편이 실상은 다른 인물이었다는 설정은 KBS 월화드라마 <멱살 한번 잡힙시다>에서도 등장한다. 서정원(김하늘)은 멱살 잡힐 각오로 현장 인터뷰에 뛰어드는 열혈 방송국 기자. 어느 날 연달아 살인사건을 목격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남편 설우재(장승조)와 내연관계라고 스스로 밝힌 연에인 차은새(한지은) 또한 살해당한다. 베스트셀러 추리소설 작가이자 자상해보였던 남편 설우재가 점점 수상해지는 서정원은 옛 연인이었던 형사 김태헌(연우진)과 수사를 해나가며 남편의 실체와 마주하게 된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 중 무려 세 편이 비슷한 부부의 설정을 갖고 있다는 건 흥미로운 면이 있다. 그건 여성을 주인공으로 세운 드라마이고, 미스터리 스릴러를 장르로 가져옴으로써 생겨난 우연의 일치처럼 보이지만, 거기에는 남편이라는 존재를 바라보는 현 시대의 정서 같은 것들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대부분 성공해 사회적 부와 지위를 가진 이들 남편들은 그 번지르르한 겉모습과는 다른 숨겨진 비밀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을 섬뜩하게 만든다.

아내가 남편을 대결 상대처럼 그려내는 이 서사의 구조 속에는, 기성 사회의 엇나간 시스템 위에 적응해 일찍이 성공한 자들에 어른거리는 부패와 결탁의 그림자들이 엿보인다. <원더풀 월드>의 강수호는 피해자의 아버지로서 김준과 맞서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찌보면 저들의 방식(보복을 통한 문제의 해결)을 답습하는 인물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다. 사적 복수를 하고 감옥까지 갔지만 그것이 진정한 문제의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걸 절감하고 권선율이 자기처럼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은수현과는 다른 길 위에 서 있다는 것.

<하이드>의 차성재는 성공한 로펌 대표처럼 보였지만 실제는 직원 월급도 주지 못할 정도로 쪼들렸던 인물이다. 경영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든 리조트 비리에 얼룩진 금신물산과 결탁했고 돈을 빼돌렸다. 자살한 것처럼 꾸민 건 저들의 압력으로부터 도망치려 했거나 혹은 가족까지 그 위협이 다가오는 걸 막기 위해서였을 테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잘못된 길을 선택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마찬가지로 <멱살 한번 잡힙시다’>의 설우재는 재벌2세이자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지만 차은새 같은 연예인과 불륜을 저지를 정도로 도덕적인 문제를 가진 인물이다. 그는 차은새를 스토커라 했지만 알고보니 내연녀였고, 내연녀가 살해당하던 날 알리바이 역시 또 다른 여성과 함께 한 사실이었다. 아직 그 실체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CCTV에 포착된 그의 폭력적인 성향은 서정원의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인사건들에 그가 연루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만든다.

세 드라마에서 남편들은 이처럼 저마다 성공한 위치에 있는 인물들이지만 그 뒤에 구린내를 풍기는 자들이다. 그래서 부부 관계의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지만, 이들의 대결은 마치 사회의 축소판 같은 느낌을 준다. 기성사회의 부조리한 시스템 안에서 성공한 자들(남편으로 그려진)의 뒤편에 숨겨진 폭력과 구린내들을 여지없이 마주해 싸워나가는 여성들의 서사가 이들 부부들의 스릴러로 극화되어 있으니.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쿠팡플레이,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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