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지어 자신을 패러디하는 차인표…이러다 시트콤 전문 되겠네

[엔터미디어=배국남의 눈] 차인표가 시트콤을 한다고 했을 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가 정말 웃길 수 있을까라고 의구심을 표명했다. 그 의구심은 너무 진지하고 바른 생활 사나이로 정평이 난 견고한 이미지와 정극보다 더 세밀하고 계산된 연기 그렇다고 너무 과장돼서는 안 되는 코믹 연기의 특성 때문에 촉발됐다.

정극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보였던 연기자들 조차 시트콤에서 기대했던 활약을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우리시대의 최고의 연기자라고 평가받는 최불암은 연기인생 40여년만에 시트콤에 도전을 했다. 지난 1999년 방송된 시트콤 ‘점프’에 출연해 방송 초반 고전을 면치 못했다. 연기에 너무 힘이 들어가 만족할만한 캐릭터 구축과 자연스러운 코믹 연기를 펼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시대의 최고의 연기자 최불암 마저도 힘겨워 했던 시트콤을 차인표가 1993년 MBC 공채 탤런트로 연기를 시작한 이후 19년 만에 첫 도전한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시청자들은 기대보다는 우려를 더 많이 표명했다.

그동안 차인표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맡았던 배역은 강렬한 카리스마 있거나 반듯하고 규범적인 인물이 주를 이뤘다. 이 성격에서 벗어난 인물을 연기한 것이라고는 1997년 방송된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에서 집안에 문제를 일으키고 군인시절 한 여성을 혼전 임신시키는 문제아 박영규역과 2004년 상영된 코미디 영화 ‘목포는 항구다’에서 지방폭력조직 보스 백성기역을 한 것을 꼽을 수 있다.

그래서 차인표 하면 드라마나 영화에서의 캐릭터 이미지가 금세 떠오를 정도로 강렬하고 단선적이다. 여기에 차인표는 자선과 기부, 입양 등 사적인 영역에서의 다양하고 지속적인 사랑나눔과 노인과 어린이,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으로 ‘바른 생활을 하는 사나이’로 정평이 나 있다.

많은 사람들은 드라마나 영화의 캐릭터와 사적 영역에서의 자연인으로서의 면모가 부합돼 구축된 차인표의 견고한 모범적 이미지가 시트콤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차인표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기보다는 조금은 딱딱한 연기를 하는 스타일이어서 시트콤 출연에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지난 2월 27일부터 KBS 일일 시트콤 ‘선녀가 필요해’가 방송되면서 단연 눈길을 사로잡은 사람이 차인표다. 차인표의 시트콤 출연에 대해 우려와 걱정을 했던 사람들조차 차인표를 보고 큰 웃음을 짓거나 박장대소하고 있다. 방송 초반이지만 차인표는 시청자들로부터 시트콤 첫 도전에 좋은 평가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시트콤은 인물, 관계, 스토리라인을 발전시키는 상황에 의존해 웃음을 유발하는 장르인데 차인표는 단점과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것 같았던 기존의 이미지에서부터 딱딱한 연기스타일까지 기막히게 인물, 관계, 스토리라인에 투영해 큰 웃음을 유발하고 있다.



‘선녀가 필요해’는 전래설화 ‘선녀와 나뭇꾼’을 원형으로 해 목욕하러 지상에 내려온 선녀모녀 채화(황우슬혜)와 왕모(심혜진)이 날개옷을 잃어버려 지상에 머물게 되면서 겪는 좌충우돌 해프닝을 그린 시트콤이다. 이 시트콤에서 차인표는 연예계 비즈니스계 불패신화를 이룬 2H엔터테인먼트 사장 차세주역을 맡았다. 차세주는 준수한 외모에 정직한 눈빛을 가진 젠틀맨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아 신사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고, 정도를 벗어나는 것을 싫어하지만 일탈을 꿈꾸기도 하는 인물이다.

차인표는 ‘선녀가 필요해’에서 실제 성격과 이미지를 차세주라는 캐릭터에 대입시키는 것에서부터 힘이 들어간 연기 스타일을 오디션에서 발연기를 해 탈락하는 에피소드에 녹여내는 것 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유발하고 있다.

차인표는 무엇보다 시트콤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기대(expectation)와 기대밖’의 원리를 기막히게 잘 활용해 웃음을 주고 있다. 실제 반듯하고 뛰어난 능력을 발현하고 있는 차인표가 극중에서 연예기획사 사장으로 그리고 두자녀의 아버지로 이상적인 형태를 보이는 차세주와 일치가 잘돼 웃음을 유발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업가로 가장으로 이상형인 인물이 오디션 탈락을 생각하며 분노의 양치질을 하거나 유리에 묻은 반점을 지우기 위해 결사적으로 노력하는 찌질한 모습을 보이는 기대 밖의 모습을 보이는 반전과 불일치로 또한 큰 웃음을 주고 있다.

그리고 차인표는 실제 이미지가 이입된 차세주라는 인물의 진중함과 가치 있게 보이는 것들을 전혀 성격이 다른 선녀모녀, 쌍둥이 동생, 두자녀 등 다른 등장인물과 상황에 의해 갑자기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전락시키면서 초래되는 불일치와 부조화에서 오는 웃음을 주고 있다.

‘선녀가 필요해’에서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차인표만의 웃음의 경쟁력을 보이는 방식은 바로 특정 대상을 흉내 내는 모방(immitation)에 있다. 모방은 인물이나 사건의 특징을 강조하여 유사성을 나타내 웃음을 주는 기법으로 시트콤에서 패러디로 나타나기도 한다. 차인표는 바로 차세주라는 인물을 통해 실제 차인표 자신을 모방하는 효과를 내 큰 웃음을 유발하고 있다.

19년만에 시트콤에 첫 도전한 차인표는 이처럼 그동안 수많은 연기자들과 개그맨들이 시트콤에서 구사하지 않는 웃음의 생산방식을 동원해 큰 웃음을 주고 있는 것이다. 웃길 것 같지 않는 차인표가 웃기니까 웃음의 강도가 더 세지고 있다.


칼럼니스트 배국남 knbae@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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