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분 토론'에서 얻은 '주토콘'을 되살릴 힌트

[서병기의 대중문화 트렌드] 지난주 MBC ‘100분토론’에서는 ‘나꼼수 현상, 어떻게 볼것인가?’를 다루었다. 4명의 패널이 나와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주목한 것은 누가 논리에서 더 강한가 하는 점이 아니었다. 이 프로그램을 보고 느낀 것은 ‘진지’와 ‘유희’가 싸우고 있다는 것이었고, 둘 간의 싸움은 ‘유희’가 이긴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시사토론 프로그램 같은 대표적인 교양프로그램에서 진지한 것과 유희적인 것이 만나면 진지한 것이 이겼다. 하지만 이제는 교양프로그램조차 유희에는 유쾌와 발랄로 대응해야지 엄숙한 방식으로 상대할 게 아니다.
 
‘나꼼수’를 비판한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우선 표정에서부터 졌다. 언변은 좋았지만 표정이 너무 진지했고 뚱한 표정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거부감을 갖게 했다. 일부러 웃는 표정까지는 지을 수 없다면 화난 것 같은 표정만은 짓지 말았어야 했다. 김 위원은 조중동 등 기성언론의 무능을 질타하며 ‘나꼼수’의 역할을 옹호하며 살살 긁어대는 정청래 전 민주당의원의 지적에 열을 받은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유희는 유희로 맛대응하며 제대로 실리를 챙긴 패널은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였다. 유희를 유희로 맛받아치는 부드러움을 가지고 있으니 오히려 출연진중 가장 다각도로 ‘나꼼수’ 현상을 짚어보는 전문성과 여유를 보여주었다. 반면 김진 위원은 계속 ‘나꼼수’를 향해 “사실보도를 해라, 비판 대상이 제한돼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양상이었다.
 
김호기 교수는 ‘나꼼수’가 ‘숙의적 공론장’을 ‘유희적 공론장’으로 바꾸는 역할을 했다고 했다. 이미 권력의 축은 엘리트적인 것, ‘파워 엘리트’ 시대에서 시민 중심적인 것으로 넘어왔다. 여기에는 SNS의 역할이 지대했다. 풍자, 키치, 시사 코미디가 판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유희적 소통법에는 유쾌 상쾌 발랄 엉뚱의 대응법이 더 잘 어울린다. 김진 위원이 한국의 디지털 소통문화는 경박하다고 했는데, 경박함 자체는 새로운 소통문화의 특징이다. 경박함은 나쁜 것도 아니며 비판의 대상이 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시사토론 교양프로그램이 이럴진대 예능프로그램에서는 더 이상 말할 나위가 없다. 과거 이경실이 ‘똑(떡) 사세요’라고 장미희 성대모사를 했다가 장미희가 화를 냈고, 김영철이 흉내내는데 대해 김희애는 여전히 불쾌하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농담과 유희를 진지로 받아들인 대표적 케이스다.
 
하지만 하춘화는 김영철의 성대모사 덕분에 버라이어티 토크 예능 출연의 기회를 잡아 이미지를 조금 젊게 만들었다. 하춘화는 “내가 언제 그렇게 눈을 까뒤집었냐”라며 김영철을 흉내내며 예능을 한다.
 
옷을 못 입는 것으로 소문난 정형돈이 “(연예계의 패셔니스타인) 지드래곤, 보고있나?”라고 말한 후 한 케이블 채널의 패션프로그램 MC가 됐다. 대중성이 강한 음악을 내놓지 않은 정재형도 예능물에서 정형돈에게 끊임없이 구박을 받으며 이미지가 희화화되면서 대중에게 사랑을 받는 존재로 바뀌었다.


 
짙은 감색이나 회색 양복으로 단정하게 차려입은 주병진 토크 콘서트가 너무 젊잖다고 말하고 있다. 방자 역할이나 깐족 캐릭터가 필요하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 자리에는 웬만한 사람이 들어와도 ‘수맥’ 자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는 사유리가 어울릴 것 같다. 사유리는 어떤 진지한 상황도 ‘유희’와 ‘엉뚱’ ‘발랄’로 맞받아칠 수 있는 인물이다.

사유리는 ‘식탐여행’에서 맛이 없다면 “맛이 별로에요”라고 말하는 건 기본이고 자신이 출연하는 MBC ‘생방송 금요와이드’도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MBC에 나와 TV는 ‘사랑과 전쟁(KBS)’과 ‘TV동물농장(SBS)’ 정도 본다고 했다.

복어요리를 먹으며 복어식당 사장에게 “복어랑 똑같이 생겼다”고 말한다. 사유리는 신선함과 솔직함과 가벼움, 도전, 반전, 몸개그 등 예능에서 필요한 요소는 다 갖추었다. 주병진 토크쇼의 무거움과 진지함은 사유리의 가벼움과 유희성이 희석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칼럼니스트 서병기 < 헤럴드경제 선임기자 > wp@heraldm.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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