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탈출’ 시리즈가 마니아 예능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국내 유일 어드벤처 예능을 지향하는 <대탈출3><불타는 청춘>과 함께 현재 방영 중인 예능 중 가장 유니크한 프로그램이다. <불청>이 캐스팅만으로 기존 예능판에서 가장 동떨어진 곳에 자기들만의 생태계를 형성했다면, 정종연 PD의 야심작 <대탈출>은 캐스팅 외에 모든 것이 새롭다. 캐릭터쇼를 기반으로 하는 리얼버라이어티와 모바일 게임, 방탈출 등의 새롭고 과감한 요소를 섞은 설정, 기존 예능의 제작 규모를 넘어선 스케일, 시즌1~3까지 아우르는 이른바 대탈출 유니버스라 불리는 스토리 진행까지 기존 예능과는 전혀 다른 지점에서 팬덤을 형성했다.

<대탈출> 시리즈는 제목에서도 연성할 수 있듯이 번화가에서 유행하는 방탈출게임을 모티브로 삼는다. 2018년 여름 시즌1이 방송됐을 때, 기존 예능에서 이따금 보여주던 방탈출 게임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세트장 수준과 몰입도 있는 시나리오와 장치들로 나름의 팬덤을 형성했고, 시즌2를 거쳐 시즌3에 이르기까지 멤버 변동 없이 탈출러라 명명되는 캐릭터쇼의 관계망을 단단히 다져오고 있다.

무엇보다 매 에피소드마다 새롭게 짓는 세트장의 높은 완성도는 기존 예능에서는 본 적 없는 그림이자 시도된 적 없는 예능 작법이다. 일상성을 추구하는 관찰 예능이나, 큰 설정 속에서 출연자에게 자유도를 부여하면서 콘텐츠를 만드는 오늘날 예능 흐름과는 정반대로 장소 섭외, 맵 구성, 테마에도 맞아떨어지면서 시청자들의 추리를 이끌어내는 절묘한 장치들로 웃음 속에 공포물, 좀비물 특유의 서스펜스를 만들어간다.

비유하자면 <대탈출>은 예전 리얼버라이어티에서 여름이면 한 번씩 했던 납량특집을 세트부터 남다르게 힘을 줘 스토리, 디테일, 스케일 모든 면에서 몇 단계 높여서 정규화한 예능이다. 시즌1<악령감옥>이나 시즌2<희망연구소>, <조마테오 정신병원>, <살인감옥> 등의 에피소드를 보면 <대탈출> 시리즈의 진가, 더 정확히는 구현하려는 스토리를 그대로 재현해낸 무대미술의 묘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기에 방송 자막으로 스스로 희화화하기도 했던 ‘tvN의 돈은 나영석이 벌고 정종연이 쓴다<대탈출> 시청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격언이 나오게 됐다.

코로나의 유탄을 맞아 3주간 쉰 <대탈출3>이해의 편의를 위해 초기 콘텐츠만 방탈출 카페에서 콘셉트를 가져왔다는 예전 정종연 PD의 인터뷰대로, 방탈출보다는 어드벤처에 방점을 찍고 돌아왔다. 코로나의 위협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밀실 탈출을 벗어난 첫 에피소드로 용마랜드를 배경으로 하는 실종 살인사건을 해결한다는 보다 더 큰 스케일로 돌아왔고, 지금까지와는 달리 목적이 탈출이 아니라 구출로 미션 또한 바뀌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이, 사실 어드벤처 키워드를 앞세운 예능은 <대탈출>이 유일한 건 아니라는 점이다. 어드벤처를 앞에 내건 이름도 기억나지 않을 여러 편의 예능이 시대별로 있었고, 톤이 전혀 다르긴 하지만 역시나 가장 유명한 건 SBS <정글의 법칙>이다. 추리 예능 범주로 봐도 JTBC <크라임씬>, 넷플릭스 <범인은 바로 너> 등 해당 장르의 선배, 동료들이 있다. 그러다보니 한 가지 경향성이 나타난다. 모험 어드벤처 계열과 추리와 롤플레잉 게임 요소가 결합한 예능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전자는 웃음에 대한 강박이 없는 반면, 볼거리나 로망과 같은 정서적 재미가 비교적 부족한 후자는 보다 치밀하게 내달리기보다 예능 차원의 빈자리를 어떤 식으로든 메우려 한다는 거다.

<대탈출3>도 마찬가지다. ‘아차랜드편에서 보듯 짜놓은 설정의 묘미 이상으로 캐릭터쇼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서로 미루거나 복불복 같은 코드 대신 암호해독은 유병재가, 눈치를 살려서 뭔가 찾는 일은 피오, 김종민 등이, 겉보기와 다른 겁 많은 허세 캐릭터 김동현이 웃음을 사냥하고 신동과 강호동은 전체적인 진행과 분위기를 맡으며 비교적 유기적으로 이야기를 굴려간다. 그리고 이런 캐릭터쇼를 즐기기 위해선 일종의 입장권으로 마네킹을 실제 시체로 여기고 실종살인 사건에 몰입해주는 의지가 필요하다.

이 관문을 통과하면 매우 실감나는 게임 중계를 보듯 탈출러들의 시선을 빌려 깜짝 놀라기도 하고 소스라치기도 하고, 협업과 몸개그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대탈출>이 자랑하는 세트의 스케일과 디테일한 장치들은 보이지도 않게 된다. <대탈출>이 아무리 수준이 높다지만 영화처럼 한 편 한 편 공들여 제작할 환경은 아니다보니 스토리 구성에서 종종 허술함을 보일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이를 중화해온 무기가 바로 김동현, 신동 등이 활약한 리얼버라이어티의 캐릭터쇼다. 따라서 그 공포감에 함께 몰입할 의지나 마음이 열린 사람들에겐 손에 땀을 쥐게 하고 머리에 쥐가 나게 만드는 추리극, 어드벤처물이지만, <런닝맨> 정도의 게임예능으로 받아들인 시청자들에겐 중년 남자들이 모여 왁자지껄하는 철지난 지루한 리얼 버라이어티처럼 느껴질 공산이 크다.

이번 시즌에 들어서 흥미로운 지점은 아는 사람들은 더 재밌는 대탈출 유니버스를 파고들기보다 누구나 쉽게 이해 가능하도록 스토리라인을 단순화하고, 긴장감 넘치는 장면을 만드는 장치 구성에 더 큰 힘을 쏟는 데 있다. 제작진의 장기라 할 수 있는 긴장감을 자아내는 치밀한 연출과 세 시즌 째 이어오면서 톱니바퀴처럼 각자의 영역과 역할을 구축한 캐릭터쇼가 조화를 이루며, 지금까지 시리즈 중 대중적 반응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코로나를 분기점으로 기조도 소재도 보다 새롭고 자유로워진 <대탈출3>가 더 많은 대중성을 확장하려면 본격 추리나 탈출에 들어가기까지 시동이 오래 걸리고, 본격적인 어드벤처의 매력을 가리는 캐릭터쇼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다.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건 불리한 방영 시간이나 어드벤처 예능을 지향하기 때문이 아니라, 재미(웃음)을 담보한다고 생각하는 리얼버라이어티식의 익숙한 웃음코드에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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