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의 법칙’이 다시금 피워 올린 생존 로망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SBS 예능 <정글의 법칙>의 재미는 상상의 세계를 선보이는 데 있다. 캠핑과 탐험과 생존의 삼각형 사이에서 내가 저 곳에 있다면, 저들과 함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로망과 설렘이 온가족 콘텐츠로 장수해온 비결이다. 리얼리티를 강조하지만 도출되는 결과물은 판타지다. 비록 큰 이슈를 만들고 트렌드를 이끌던 전성기 시절의 영향력은 사라졌으나 <정법>의 로망은 평범한 일상처럼 우리 주말의 일부가 됐다. 그리고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다른 일상과 마찬가지로 10년 동안 이어온 병만 족장의 신기하고 신나는 모험을 멈추게 했다.

3개월이란 꽤 오랜 휴식과 정비 기간을 거친 후, <정법>생존이란 자신들의 사명에 걸맞은 재난이란 생존코드로 돌아왔다. 서해안의 외딴섬에서 모의 재난 생존 상황을 연출해 생존필수품을 소개하고 생존의 길을 나선다. 풍광으로 상상의 세계를 만들지 못하는 대신, 상황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또 다시 상상력과 모험심을 발휘하도록 만든다. 기후변화를 직격으로 맞는 우리에게 조난이나 재난 상황에서 생존 방법을 알려준다는 분명한 목적의식은 당위이자 명분이 되었고, 김병만이 이들의 가이드이자 교관이 되는 데 큰 설명은 필요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정법> 콘텐츠를 어떻게 펼칠 것인가라는 의구심은 세계 각지의 대자연을 배경으로 생존 스토리를 써온 이야기를 무리하게 펼치는 대신 우리 주변에도 충분히 있을법한 재난이란 코드로 비껴냈다. 그 덕에 몰입을 방해하는 어색함과 선입견을 최소화했다.

<정법> 우리나라 편(정글의 법칙 in 와일드코리아)의 첫 출연자들은 불시에 조성된 재난 상황에 투덜거리면서도 재빨리 <정법>의 울타리에 적응했다. 흥미로운 점은 판이 바뀐 만큼 전면 재구성된 캐스팅 방식이다. 부족장급 한 명, 샌드백 롤을 맡는 연장자, 남자 아이돌, 섹시함을 책임지는 홍일점 이런 식의 식상한 병만족 구성을 벗어나, 가족 관계나 커리어를 기반으로 나름의 조로 나눠지도록 구성했다. 또한 개성과 경력과 나이가 엇비슷한 어디서도 본적 없는 조합으로 뭉쳤다는 점이 특이하다.

덕분에 따로 또 같이 만드는 볼거리가 풍부하다. 원조 글로벌 스포츠스타 오누이 박찬호·박세리의 열정과 여유, 최근 연예계에서 각광받는 스포츠 종목인 농구의 허재와 허훈 부자의 티격태격, 원격 부부인 박미선과 이봉원의 리얼한 부부 대화, 유일하게 일면식 없는 추성훈과 청아의 의외의 조합까지 병만족 내의 관계망에 다양한 층위를 만들어 이야기와 관계망을 풍부하게 만든다. 그리고 최근 대세 가도를 달리는 박세리는 시종일관 진솔한 감정을 표정에 담아내며 제작진이 위축될 만큼 상황에 몰입한다. 김병만을 돕는 가장 든든한 조력자로서, 장난끼와 허당끼 가득한 허훈을 아버지 대신 잡고, 박찬호가 의지하는 기둥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추성훈은 말 많고, 열정과 말만 많은 박찬호를 존중하면서도 신기해한다.

이런 신선한 관계 속에서 <정법>의 익숙한 클리셰들은 뻔함보다 반가움으로 다가온다. 김병만의 리드로 양식장에서 떠내려 온 코팅된 대나무로 근사한 쉘터를 뚝딱 만들고, 통발 제작을 제안해 쉴 곳과 먹거리 문제를 해결한다. <정법>의 메인 콘텐츠라 할 수 있는 먹방도 다시 가동했다. 점심의 파랫국 생일 파티에 이어 이봉원이 출연하게 된 결정적 이유였을 짬뽕탕 시식은 순간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정법>의 취지에서 벗어났다는 평을 들었지만 이연복 셰프가 웍을 갖고 간 ‘in 북마리아나후발대 편은 최고 15%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짬뽕 전문점을 운영 중인 이봉원은 박미선의 도움 하에 초저녁부터 배낭에 손수 챙겨온 각종 양념으로 해물 짬뽕탕 베이스를 만들어두고 동료들이 구해온 파래와 고둥, , 극적으로 잡은 숭어를 넣고 뚝딱 만들어내 그 맛을 본 추성훈 등으로부터 극찬을 들었다.

이처럼 새로운 기대와 익숙한 볼거리의 조화 속에서 <정글의 법칙 in 와일드코리아>는 이름값에 걸맞은 8%대 시청률로 시작해 2회 만에 두 자릿수를 돌파했다. 2주 만에 토요일 예능 시장에서 장안의 화제몰이 중인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 근접한 기록이다. 익숙한 풍경 속에서 아웃도어, 생존 감성이 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재난이란 새로운 화두로 관심을 붙잡은 데다 관성을 멈춘 신선한 캐스팅 덕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흥미로운 볼거리가 비롯되고, 생존이란 기획의 근본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면서 다시금 로망을 피워 올리는 땔감에 불을 지폈다.

김교석 칼럼니스트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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