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서사로 돌아온 ‘정법 개척자들’의 빛과 그림자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SBS 예능 <정글의 법칙 개척자들>이 시작됐다. 지난해 8월 말 팬데믹 사태로 인해 첫 국내편 ‘in 와일드코리아를 선보인 이후, 7번째 시리즈다. <정글의 법칙>의 재미는 리셋에 있다. 이국적인 공간에 떨어진 이들에게 기존 환경과 조건, 재능보다는 일상에서 꺼내 볼일이 거의 없는 본능과 모험, 대자연의 매력을 불 피워 대표적인 가족예능으로 거듭났다.

그런데, 정글의 모험과 생존을 세계적으로도 안전하고 부유하며, 사람 찾아보기 힘든 대자연과 오지가 거의 없는 우리 땅에서 선보여야 하니 전략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꺼내든 키워드가 바로 생존 훈련이었다. 유사시 생존을 위한 훈련은 최초의 어드벤쳐 예능 <정법>의 초기 상활과도 맞닿은 부분이며 방송에서 강조했듯 우리 땅에서 <정법>을 이어가야 하는 당위가 되기도 했다.

이후, 국내 편은 정글로 떠나는 대신 다양한 시도를 했다. 야생 식재료를 주로 이용해 음식과 플레이팅을 하는 방랑 식객 임지호 셰프와 함께하기도 했고, 애국심 코드로 독도를 다루기도 하고, 김수미와 제시와 함께한 족장 x 헬머니’, 스포츠 스타들과 함께하는 스토브리그특집 등 다양한 설정과 캐스팅으로 재미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허나 휴양지로 떠나고 싶게 만들었던 남태평양의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과 에메랄드빛 따뜻한 바다를 대체하는 로망까지는 역부족이었다. 한풀 꺾여버린 화제성과 회차가 거듭될수록 하락하는 시청률 추이는 코로나19의 타격을 여전히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더니 이번에 다시 생존키워드로 돌아왔다. 고흥의 한 외딴섬에서 '개척 생존'에 도전한다. 와일드 코리아 때의 생존 교육에서 교육을 뺐고, 초심으로 돌아가 섹시, 털털, 반전 볼거리를 책임지던 여성 출연자 티오도 없다. 해병대 제대한 지 3주 차 샤이니 민호와 군복무 마친 지 1년 쯤 된 15년 경력의 특전사 예비역 트로트 가수 박군, 액션 배우 장혁 등 생존 능력이 기대되는 인력들이 함께한다. 전역한 지 얼마 안 된 출연자들이 포함되다 보니 군대식 문화와 향수가 하나의 코드로 작동하는 게 특징이다. 신승환, 최성민은 과거 노우진이나 류담 역할로 참여하고, 여성 출연자가 없는 대신, 강다니엘이 막내 캐릭터로 합류해 관심을 모은다.

지금까지 예능적 장치와 접점에 공을 들였다면 이번에는 꽤나 영화적 설정이 펼쳐진다. 20094월에서 달력이 멈춘 버려진 섬에서 72시간 생존하는 미션이다. 설상가상 낮 최고 기온이 영하권의 추운 날씨에 보급 받은 먹거리는 아예 없다. 주어진 지도 한 장을 들고 생존지를 확보하고 생존 물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오래 전 주민이 떠난 섬이라는 정보를 알고 보더라도 하루아침에 사라진 듯 입던 옷도 걸어두고, 냉장고 정리도 안 하고 세간을 있는 그대로 두고 살던 사람들만 사라진 묘한 폐가들이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정법>의 매너리즘은 예측불허의 긴박한 생존이 뻔해진 데 있다. 짧은 기간, 무난한 환경에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집 짓고, 불 피우고, 사냥해서 요리하는 패턴의 반복에서 나왔다. 정글에 머무르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국내 편은 아무리 무인도라고 해도 일상의 리셋, 대자연의 감동, 부쉬크래프트과 같은 본능을 자극하는 판타지가 작동하기 힘든 환경이다. 그런 이때 다시금 모험심으로 승부를 본다니 반갑다. 폐허가 된 마을에서 생존하는 것뿐 아니라 무언가 비밀을 찾아갈 것만 같은 영화적 서사의 배경을 가지고 모험담을 만들어 갈 준비를 마쳤다. 모처럼 모험으로 돌아온 특집이 판타지를 자극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다만, 온 가족 예능 콘텐츠를 지향하다보니 쉽고 직접적인 풀이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정법> 특유의 다소 뻔한 캐릭터 플레이와 살아남기 위한 절체절명의 싸움과 같은 몰입으로 이끌어가는 디테일은 여전히 아쉽다. 장혁이 뭐만 하면 여전히 10년 전 <추노> BGM이 깔리고, 육아예능도 아닌데 강다니엘의 일거수일투족에 찬사를 보낸다. 함께하는 협동보다는 해병대 전역자 민호의 군기나, 15년 경력 특전사 출신 박군의 경험에서 묻어나는 야생 식물 채집 등을 통해 늘 해오던 대로 캐릭터를 한 명 한 명 평이하게 소개한다.

생존이란 키워드를 강조하고 로망을 자극한다면, 조금 더 난이도를 높여서 함께하는 스토리로 승부를 보고, 설명을 거둬도 되지 않을까. 주어진 환경에서 예능 촬영이지만 촬영이 아닌 리얼리티가 초창기 <정법>의 핵심 정서였다. 진지한 설정에 비해 예능 촬영임을 너무나 당연시 하는 가벼운 톤이 다소 몰입을 방해해 아쉽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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