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혼산’이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본질적인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2017년을 기점으로 MBC를 넘어 지상파 최고의 예능이자, <무한도전> 이후 가장 강력한 팬덤을 가진 예능 <나 혼자 산다>에 위험 시그널이 들어왔다. 장수예능이면 모두 연례행사처럼 위기설이 붙긴 하지만 7%대로 내려앉은 시청률의 최근 추세는 기존과 사뭇 다르다. 위기의 진앙 또한 갑작스런 결별이나 열애설 등이 변수로 작용한 이전과 다른 차원이다.

시청자 반응에 가장 열려 있고, 또 가장 효과적인 피드백을 해온 제작진은 이번 사태를 맞아 다양한 방식과 조합을 시도하면서 길을 모색 중이다. 유튜브에서는 여전히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는 여은파를 밀어보고, 성훈과 헨리의 얼간이 라인도 가동시키고, 기안84의 경우 잠시 자숙의 시간을 갖고 사과 후 복귀를 시켰다. 이장우와 함께 새로운 무지개 회원의 주역인 손담비, 장도연, 김연경 등을 한 에피소드로 묶어보고, 기존에 없던 여성 예능 캐릭터인 박세리와 김민경을 붙여보기도 했지만 어떤 방향도 신통치가 않다. 가장 중요시하는 여성 시청자들의 니즈를 고려해 김영광, 장우영 등 남자 게스트를 연이어 붙이고 있지만 반응이 없다. 2017년 당시 멤버 중 유일하게 그때 감성을 유지하는 이시언이 돌아와 팔방으로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마찬가지다.

정확히 기안84의 웹툰에서 여성 캐릭터를 그린 특정 표현이 논란이 된 이후, 한 달 동안 탄탄했던 두 자릿수 시청률 회복이 안 되고 있다. 이 논란은 작가 개인에게 비난을 쏟아내기 앞서 국가적 콘텐츠 산업이라 추앙하고, 국내 굴지 IT회사의 미래라 천명한 웹툰을 유통하며 거대한 자본시장을 형성한 사람들의 천박함을 지적해야 한다. 일부 변론처럼 웹툰의 세계에서 그 정도 표현은 별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 일면 타당하기도 하니, 얼마나 심각한 현실인가.

그렇기에 기안84가 불러온 논란과 최근 여성 주도 예능을 추구하던 <나혼산>의 지향이 혼선을 겪으며 모양새가 이상해졌다. 이시언까지 힘을 보탰지만 재미와 시청률의 치트키였던 기안84의 에피소드마저 반등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정확히는 그동안 여러 차례 기안84를 보듬었던 방식인, 논란의 본질은 꺼내지 않고 일반과는 조금 다른 기안84의 순수한 캐릭터와 인간미를 부각하는 출구전략이 이번에는 통하지 않고 있다.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제시한 박세리가 기안84를 토닥이는 장면은 기이하기도 했다. 덮어두고 지나가기를 택했지만 이 논란은 남녀 갈등의 양태로 번지면서 사실상 자충수에 빠졌다.

그런데 더 면밀히 들여다보면 기안84의 논란은 착화력 높은 트리거일뿐 이토록 크게 흔들리는 본질은 리얼리티의 부재에 있다. 엉겁결에 박나래 체제로 들어선 이후 박나래의 개인기로 잘 버텨왔지만 시일이 지나면서 점차 힘이 빠졌고 기존 무지개 멤버를 대체할 캐릭터쇼를 마련하지 못했다. 그 출구전략으로 가져온 것이 박나래를 중심으로 장도연, 손담비 등의 스튜디오토크 라인 구축과 돌아온 한혜진을 중심으로 한 여은파라는 여성 예능 지향 드라이브다. 박세리, 김민경, 김연경 등 새롭고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도 적극 품었다. 그러나 이 모두 정해진, 요구된, 계산된, 분위기와 관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2017, 200회를 함께 보낸 제주도의 그 멤버들처럼 예상치 못한 상황과 관계망을 작동시키는 생동감, 리얼리티는 느껴지지 않는다.

전성기를 함께해온 제작진은 다니엘 헨리와 김사랑 등 워너비와 볼거리를 통해 짠함과 공감에서 예능으로 전환을 이뤄낸 것을 <나혼산>이 최고의 예능으로 올라선 비결이라 자평했다.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보다 정확히는 이런 정책적 드라이브가 통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전현무를 중심으로 갖춰진 멤버들의 조합이 보여준 위대한 캐릭터플레이가 깔려 있었다.

혼자 사는 이야기보다 실제 출연자들이 친밀해지는 과정에 시청자들이 재미를 느끼면서 관찰예능과 리얼버라이어티를 섞은 <나혼산>만의 다른 관찰예능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재미가 있었다. 이때부터 그들의 이야기는 한편의 시트콤이나 드라마가 되어, 혼자 사는 일상과 상관없는 에피소드가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리얼리티의 기반이 무너진 지금은 관찰 예능으로도 애매하고, 시트콤이나 리얼버라이어티를 보는 듯한 재미 또한 사라졌다.

이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나혼산>은 다음 주는 시간여행을 한다. 짠내 감수성으로 <나혼산>의 제1의 전성기를 마련하고, 현재는 SBS 장수예능 <불타는 청춘>을 이끄는 김광규를 5년 만에 다시 불러들였다. 제작진의 예전 인터뷰를 빌리자면 가난하고 우울하고 인지도 떨어지는출연자들과 기존 시청층이 남성이던 시절 <나혼산>의 스타다. 마찬가지로 그 시절 출연자로 공대생 같은 소탈하고 꾸밈없는 남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 배우 하석진도 6년 만에 함께한다. 리뉴얼 이전의 짠내, 연예인도 별다르지 않게 산다의 공감대를 조명한다는 이야기다.

일각에선 <나혼산>이 다시금 사랑받기 위해서는 초심으로 돌아가 최근 tvN <온앤오프>처럼 혼자 사는 모습과 본질을 추구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경험과 수치에서 나온 데이터로 증명되는 틀린 말이다. 지금, <나 혼자 산다>의 위기는 리얼한 캐릭터플레이가 일상을 담은 화면과 스튜디오쇼 어디서도 화학작용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김광규와 하석진이 반갑기는 하지만 이런 일회적 충격요법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나혼산>의 재미는 동경, 선망, 공감 이전에 진짜 멤버들이 친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리얼버라이어티의 감성에 있었다. 그래서 이 리얼리티의 마지막 보루인 기안84가 촉발한 위기가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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