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주의 훈련 ‘나는 살아있다’, 납득할 만한 목적과 미심쩍은 방법 사이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TV삼분지계]를 통해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tvN <나는 살아있다>는 어느 각도로 서서 보는가에 따라 그 감상이 다소 달라지는 프로그램이다. 티저 예고편이 공개됐을 때, 예고편에 등장한 목봉체조나 IBS 훈련 등의 장면을 짚으며 여성판 <가짜 사나이>’를 우려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가짜 사나이>의 팬들은 아류작이라는 의혹의 목소리를, <가짜 사나이>를 싫어했던 이들은 또 하나의 군사주의 예능의 등장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프로그램의 포커스가 생존주의에 맞춰져 있으며 교육강도 또한 상대적으로 낮다는 이야기가 나온 뒤, 그와 같은 의혹과 우려의 시선은 잦아들었다.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는 어떻게 보았을까? 정석희 평론가는 출연자와 교관이 힘을 모아 함께 살 길을 모색하는 프로그램이란 평과 함께 훈련 예능의 그림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선영 평론가는 여섯 명의 여성 멤버가 서로 돕고 연대하는 것으로 생존을 도모하는 모습이 우리 사회 마이너리티의 생존 조건을 환기시킨다고 평했다. 반면 이승한 평론가는 목적이 생존주의 훈련이라고 해서 얼차려와 같은 군의 언어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며, 민간인을 상대로 한 훈련은 민간의 언어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독자 여러분은 ‘나는 살아있다’를 어느 각도에서 보고 계시는지, 세 평론가의 평을 함께 만나며 가늠해 보시기를.

◆ 훈련 예능의 그림이 달라졌다

돌아보면 민망한 일이지만 삐딱한 시선으로 tvN <나는 살아있다>를 보기 시작했다. 아마 많은 분들이 그랬으리라. 첫 회 완강기 훈련에 앞서 예상되는 그림이 있었다. 체력 좋기로 호가 난 이시영 씨와 펜싱 금메달리스트 김지연 씨가 모범을 보이고 50대 배우 김성령, 아이돌 우기, 개그맨 김민경 씨가 울며불며 시간을 끌겠거니 했다. 그간 오죽이나 많은 예능 프로그램이 그래왔던가. 하지만 오정연 씨가 첫 주자로 산뜻한 출발을 보여줬고 마지막까지 뛰어내리기를 두려워한 건 오히려 이시영 씨였다.

박은하, 박수민, 이창준 교관은 무조건 윽박지르고 다그치기보다는 용기를 낼 수 있도록 격려하고 개인의 능력에 맞는 생존 방법을 제시해주는 의외의 모습이었다. 독하고 냉철했던 여느 예능의 교관들과는 확연히 차별된다. 예상과는 달리 각종 재난 상황에서 출연자와 교관이 힘을 모아 살 길을 모색해보자는 것이 <나는 살아있다>의 기본 취지였던 것.

 

2회 ‘침수 차량 탈출 훈련’ 때 이시영 씨가 동료를 구하고자 기꺼이 뛰어드는 장면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설정과 연출이 아닌 자발적인 상황, 이미 골든타임을 넘겼으나 박은하 교관은 동료애와 협동 정신에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3회에는 유속 70M 극복훈련에서 김민경 씨가 오랜 물 공포증을 극복해냈고 오정연 씨는 감자전의 기름기를 활용해 불붙이기에 성공하기도 했다. 한때 북적이던 스키장이 폐허로 바뀌었듯이 가학성을 당연시해온 훈련 예능의 흐름도 달라졌다.

정석희 TV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분명 민간에 맞는 교습법도 있을 텐데?

극한 상황엔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이 필수다. 그런데 그 체력과 정신력을 꼭 군대식 용어와 집단 얼차려로 가르쳐야 할까? 그게 오히려 트라우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외에서도 극단적인 생존주의자 캠프가 아닌 이상 오래 전부터 더 성의 있는 브리핑으로 풀어서 설명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게다가 생존주의자들조차 입을 모아 고강도 대규모 재난 대비에 앞서서 우선 일상적인 재난에 대처할 훈련을 먼저 하는 게 맞다고 말한다.

다른 곳에선 차근차근 말로 일상적인 재난 대처법부터 가르치는 걸, 왜 우리만 가장 극단적인 상황을 상정한 뒤 ‘마지막 구호 생략’을 걸고 뜀뛰기를 시키고 훈련생을 모래사장 위에서 좌로 굴러 우로 굴러를 시키며 고강도 재난 대비법부터 가르쳐야 하나? 한국인은 극미량이라도 얼차려가 들어가야 간신히 뭘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건지, 아니면 얼차려 없이는 사람을 가르치는 법을 모르시는 건지, 둘 다 아니면 그런 그림이 있어야 흥행이 될 것 같다는 제작진의 기우인 건지.

온통 크고 작은 재난으로 가득한 시대에 생존기술을 익히는 게 나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목적이 괜찮고 그 강도가 낮다고 해서, 민간인을 상대로 한 군대식 훈련을 용인해선 안 된다. 여기는 군대가 아닌 사회이며, 민주사회라면 군의 언어가 아니라 민주적인 민간의 언어로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 <나는 살아있다>가 환기한 마이너리티 생존의 조건

“생존은 생명과 연관되어 있어요. 긴장감을 항상 늦추지 말고 훈련에 임해야 됩니다.” ‘나는 살아있다’ 3회에서 IBS 훈련에 돌입한 6명의 생존교육생은 100kg짜리 고무보트를 겨우 옮기는 데 성공하고도 땅에 내려놓아야 하는 최후의 순간에 잠깐 힘을 빼는 바람에 다 함께 무너지고 만다. 훈련을 책임진 박은하 교관은 이들에게 생존의 뜻을 다시 한번 되새겨준다.

그의 말대로 생존은 생명과 연관되어 있지만, 결코 동의어는 아니다. 생명이 태어난 순간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라면, 생존은 그 생명을 지키기 위한 모든 처절한 노력이다. 단순히 개인의 의지만이 아니라 삶의 지속을 뒷받침해줄 사회적 조건도 필요하다. 실제로 기울어진 운동장의 아래편에 위치한 이들에게는 생존 자체가 고난도의 미션이라는 점을 떠올릴 때, 6명의 여성이 무너지고 무너지면서도 굳건한 연대를 통해 끝내 살아남는 모습은 같은 위치에서 이를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모든 사회적 기반이 폐허가 된 재난의 땅에서 사투를 벌이는 여성들의 모습을 담은 <나는 살아있다>는, 그래서 단순한 생존 예능을 넘어 우리 사회 마이너리티의 생존 조건을 환기하는 프로그램이 된다.

김선영 칼럼니스트 herland@naver.com

[사진·영상=tvN. 그래픽=이승한]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