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만 빌리지’가 로망을 자극하지 못한 연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굳이 코로나 시대가 아니더라도 자연 속에서 힐링 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을 갖는 것, 나만의 집을 짓는 것은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을 로망이다. 물론, 1가구 1주택을 강력 지향하는 정부 정책에는 반하긴 하지만 디스커버리 채널과 KBS2가 공동 제작하고 방영하는 12부작 예능 <땅만 빌리지>1회 첫 화면부터 이 로망으로부터 시작된 기획임을 밝힌다. 공간과 자연주의, 슬로라이프를 내세운 예능은 지금까지 수도 없이 나왔지만 이번엔 스케일이 남다르다. 얼마 전까지 군사 보호 구역이었던 강원도 양양군의 13,000여 평의 땅을 빌려 각자 각자의 취향과 아이디어가 반영된 세컨드 하우스를 짓고 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을 담은 자급자족 프로젝트다.

2014년 김병만은 SBS <에코빌리지 즐거운 가>를 통해 직접 꿈에 그리던 집을 짓는 콘텐츠를 펼친 바 있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마을을 건설한다. 절친한 후배 개그맨 김정훈과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다른 출연자의 의뢰를 받아 숲속의 오두막 같은 목조주택을 짓고 마을의 커뮤니티 시설도 손수 마련한다. 다만, 그때의 패착 때문인지 집 짓는 과정과 마을 건립의 경과 자체를 볼거리로 삼지 않는다.

SBS <정글의 법칙>처럼 온갖 공구를 다루는 김병만의 다재다능함을 뽐내고 그가 마련한 집과 테이블 위에 나머지 출연자들이 온기를 채운다. 50대에서 20대까지, 아이돌에서 배우, 코미디언까지 두루두루 모인 마을 식구들은 각자의 역할을 찾아 목공일을 돕고, 요리를 하고 둘러앉아 식사를 하면서 또 하나의 유사 가족 커뮤니티가 갖춰지는 과정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무언가 하나의 목표로 공유하는 설레는 분위기는 판타지를 띄우는 따듯한 공기다.

그런데 판타지를 자극하는 예능이라면, 로망의 접점과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핍진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땅만 빌리지>는 애매한 지점들이 있다. 우선 볼거리가 기존 김병만 콘텐츠와 너무 많이 겹친다. 김병만 소장이 감탄을 자아나는 손재주와 활약은 10년 간 <정글의 법칙>에서 봐온 그림이다. 라면 하나 끓이는데도 화로대에 장작불을 피우고 집부터 가구까지 뚝딱뚝딱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내는 모습은 아무래도 어디서 본 듯 익숙하다. 함께 밥을 해먹고, 장작불에 고기를 굽는 쿡방과 먹방 또한 야외 예능의 전형적인 볼거리 중 하나다.

판타지 측면에서는 나영석 사단의 <숲속의 나의 집>이 겪은 어려움과 비슷한 점이 있다. 엽서나 인스타그램으로 보면 숲 속의 작은 산장이 멋지고, 로맨틱하고, 사색적으로 다가올 수 있으나 방송이 보여주는 생활의 관점에서 보면 대중적 판타지, 로망은 아니다. 수도, 화장실, 난방, 주방 등 편의시설을 포기한 단칸의 나무집은 판타지를 키우기에 현실적인 염려가 문턱이 된다.

무려 강원도 양양인데 외부로 노출된 부엌과 수도의 동절기 관리, 난방이 안 되는 휑한 공동 화장실은 로망이 부풀 자리에 현실적인 고민을 떠오르게 만든다. 본 촬영이 들어가기 전 큰 수해를 입은 것에서 알 수 있듯 상습 침수 지역인데 결과적으로 과연 지속가능한 공간일 수 있는지, 촬영이 없을 때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따위의 현실적 의문이 마을을 꾸려가는 이야기에 몰입을 방해한다.

목공이나 공구에 관심이 있다면 그래도 다른 예능에서 보기 힘든 볼거리와 재미를 찾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시청자들에게 내걸만한 색다름이 부족하다. 로망을 내세웠지만, 현실적 지점들이 눈에 띄고, 마을을 만든다는 판타지는 자연 속 소박한 삶에 대한 로망 중에서도 한 단계 더 좁은 카테고리다.

예전 이런 식의 공동체를 만들고 실제로공동의 목표를 갖고 함께 뭔가를 만들어간다는 콘셉트의 예능이 몇 편 있었다. 옥상 텃밭을 일군 KBS2 <인간의 조건3-도시농부>나 일산 모처에 닭볶음탕 한 그릇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직접 키우기 위해 일산 모처에 농장을 만들었던 tvN <식량일기 닭볶음탕 편> 등이 그런 경우다. 두 프로그램 모두 리얼리티에 방점을 찍었지만 시청자들은 그들이 보여준 리얼리티의 수준에 실망하면서 몰입하지 못했다. 그 후 나타난 tvN <윤식당>을 비롯한 팝업스토어 예능은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한정된 기간과 특정한 공간에서 판타지의 세계를 창조했다. 이처럼 로망을 소재로 하는 예능이라면 현실적 고려요소들을 눈 밖으로 밀어내기 위해 시청자와 일종의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

그런 점에서 <땅만 빌리지>에는 아쉬움이 있다. 매력적이고 다채로운 인물들이 등장하고 마을을 이룬다는 대규모 프로젝트는 흥미롭지만, 판타지의 밑바탕이 되는 리얼리티의 범위가 합의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볼거리 자체도 함께 둘러먹는 밥상 같은 기존 예능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원대한 프로젝트인 만큼 목표와 설정 차원에서 울타리가 보다 정교했으면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았을 거란 아쉬움이 있다. 로망에 대한 예능이지만 이런저런 눈에 보이는 리얼리티에 대한 의구심, 방송 설정 등이 로망을 띄우지 못하게 붙잡고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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