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만 빌리지’, 일하는 사람 따로 누리는 사람 따로 라는 건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그래. 나는 어차피 그런 걸로 너한테 큰 도움이 못돼. 한 달 뒤에 한 번 와볼 테니까 그럼 알아서 사람을 쓰든가 해가지고 해봐.” KBS <땅만 빌리지>에서 김구라는 김병만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돌아갔다. 땅만 빌려 놓고 아직 아무 것도 없는 양양의 바닷가가 보이는 곳. 그 곳에 김병만이 꿈꾸고 있는 건 입주자들(연예인들)의 로망이 담긴 세컨드 하우스를 짓고 마을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집방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트렌드에 발맞춰, 집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원하는 집을 짓겠다는 콘셉트는 참신하다. 세컨드 하우스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고, 집을 직접 짓고픈 욕망들도 커진 요즘이다. 시청자들로서는 김병만 소장(?)을 필두로 이들이 땅만 있던 곳에 집을 짓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로망을 건드리는 대리만족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3회까지 방영된 분량을 보면 집을 짓고 있는 건 김병만과 그 후배이고 먼저 온 김구라, 유인영, 윤두준과 후에 합류한 이기우, 효정, 그리는 그걸 그저 누리는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애초 이들은 자신들이 꿈꾸는 세컨드하우스의 콘셉트를 대충 스케치로 그려준 바 있다. 거기에 맞게 김병만이 후배와 함께(물론 다른 전문인력들도 투입되었다) 하나하나 집을 지어가고 있었던 것.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한창 집을 짓고 있는 와중에 태풍이 강타해 침수피해를 겪은 것. 물이 차버린 마을은 자재들까지 모두 침수되는 난감한 상황을 맞이했다. 결국 그 물 속에 뛰어들어 자재들을 꺼내오고 양수기를 동원해 물을 빼낸 후 다시 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 과정을 거쳐 조금씩 마을에 애초 입주자들이 꿈꿨던 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방문한 입주자들은 반색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훌륭한 집들이 지어지고 있어서였다.

물론 향후에는 어느 정도 지어진 집에 입주자들이 저마다 제 손으로 무언가를 짓고 채워나갈 것으로 보이지만, 처음부터 집 짓는 과정 자체를 함께 입주자들이 하지 않는다는 건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땅만 빌리지>의 콘셉트는 세컨 하우스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런 꿈꿨던 집을 손수 짓는다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하는 사람은 일을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걸 누리기만 하는 모습은 방송으로서는 그리 보기 좋은 장면들은 아니었다. 특히 김병만의 후배 개그맨으로 실제 집을 짓는데 옆에서 함께 노력해온 김정훈을 방송이 전혀 비춰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마치 그림자 노동을 보는 듯한 불편함을 줬다.

중간에 김구라가 나서서 누구냐고 묻고 그래서 KBS 26기 개그맨으로 서태훈과 동기라는 정도가 나왔을 뿐, 그가 김병만과 함께 어떤 일들을 거기서 했는지는 3회 분량 동안 단 몇 초도 나오지 않았다. 김병만이 뚝딱 즉석에서 만들어낸 얼굴을 가리지 않는 방송용 피크닉 테이블에서도 김정훈은 앞에 앉아서 뒷사람을 가리는가 아닌가를 판별하는 그런 역할을 했다. 공식적인 출연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집을 짓는 과정에서 그 노동을 함께 한 이를 이렇게 배제할 수 있을까.

<땅만 빌리지>는 꿈꾸던 세컨 하우스를 짓고 마을 공동체를 만든다는 현 대중들의 로망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기획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 들어가는 노동을 제대로 비춰주고 있는가는 아쉬운 점이다. 자신의 노동이 들어간 집의 가치를 더욱 끌어냈어야 했고, 누군가의 노동이 들어갔다면 그걸 감추기보다는 드러내줬어야 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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