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팔이 대신 초지일관 무대에 집중, ‘싱어게인’의 색다른 빌드업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솔직히, 몇 주 전까지도 JTBC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무명가수전>에 쏟아지는 호평 일색의 평가에 딱히 동의하지 않았다. 다양한 세대와 장르의 가수를 모은 색다른 매력이 있고 트로트가 아닌 음악이 중심이 된 훌륭한 무대긴 하지만, 서태지의 재림이라든지 남발되는 레전드평가라든지 등등 기존 오디션쇼를 넘어섰다는 칭찬 세례에 동참하기에는 극찬만큼 충격을 받지 못했고, 재미와 기획의 원천이 되는 익숙한 레퍼런스 또한 꽤 많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첫 방송된 <싱어게인>은 그동안 세상이 미처 알아보지 못한 재야의 실력자, 한땐 잘 나갔지만 지금은 잊힌 비운의 가수들이 대중 앞에 다시 설 수 있도록 돕는 신개념 리부팅 오디션 프로그램을 표방한다. 신규 예능 프로그램 앞에 신개념이라는 말이 붙어있다면 보통은 딱히 새롭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선한 기획의도는 존중하지만 <싱어게인>도 각종 오디션쇼와 음악예능을 모아놓은 뷔페처럼 보였다.

기존 시스템 밖의 무명가수들이 조명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슈퍼스타K>, 스러져간 아이돌의 재기라는 측면에선 숱하게 쏟아진 아이돌 오디션쇼의 명맥을, 반가운 옛 가수,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OST 가수를 만날 때는 <슈가맨>의 추억이, 번호로 불리는 이름의 미스터리는 <복면가왕>, 일기예보나 유미와 같은 구력 있는 가수들의 등장은 <나는 가수다>의 계급장 뗀 승부가 떠오른다.

물론 이런저런 음악예능과 오디션의 조합 자체는 신선했다. 덕분에 세련된 요즘 팝부터 사장된 헤비메탈까지, 인디 가수에서 오디션 출신, 아이돌 출신까지 다양한 음색과 장르를 가진 다른 음악을 품은 그릇이란 점은 분명 높이 살 부분이다. 하지만 이 정도만으로는 기존 오디션쇼를 넘어선 무엇이 있다고 보기 힘들었다. 음악 예능을 즐기는 사람들에겐 반갑고 긴장감 넘치는 프로그램일 수 있겠지만, 없던 관심을 만들어 끌어당길 정도로 새롭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 결정적으로 마음을 열게 된 이유는 초지일관 무대에 집중하면서 비로소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존 오디션쇼와 <싱어게인>의 가장 큰 차이는 출연자 수가 많은 오디션임에도 완곡에 가깝게 무대에 집중해 호흡을 길게 가져간다는 점이다. 참가자의 캐릭터를 발굴하고 경쟁 구도와 승부의 결과보다 무대에 집중한다. 경연의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편집의 묘미를 최소화하고 사연 대신 무대를 앞둔 긴장감, 심사위원들이 편하게 나누는 대화를 통해 기대를 전하며 현장감을 높인다. 1726호나 1029호처럼 라이벌 구도를 만드는 대신 우정의 관계로 전개시킨다. 모두 색다른 방식의 빌드업이다.

4라운드 이전까지는 절실함을 전시하는 무대 밖 인터뷰도 흔치 않았다. 승패의 생사가 갈리는 오디션장이지만 심사위원들도 평가한다기보다 즐긴다. ‘찐리액션과 환호, 극찬과 같은 심사위원들의 반응은 시청자들에게 가이드가 된다. 전통적 의미의 방청객 역할을 겸하는 셈이다. 그래서 승패는 두 번째 관건이다. 누가 올라갈까보다 오늘은 어떤 노래를 들을 수 있을까. 오늘은 누가 얼마나 대단한 무대를 보여줄지 더 기대하게 된다. 지금까지 어떤 오디션쇼에서도 없던 이야기 방식이다.

오디션쇼임에도 아이러니하게도 따뜻한 인간미가 분위기를 주도한다. MC 이승기의 착한 진행과 유희열, 조규현이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어주면 멘토 역할을 톡톡히 하는 김이나 작사가, 김종진 등의 언변술사들이 음악처럼 마음에 남는 말을 남긴다. 이선희에서 이혜리까지 다른 모든 심사위원들도 진심으로 무대를 지켜봐주는 진정성과 즐기는 흥이 매력적이다.

자신의 재능과 음악에 대한 사랑으로 꿋꿋하게 버텨온 사람들에게 함부로 평가나 충고를 던지지 않는다. 심사평이 아니라 프로듀스의 디렉팅처럼 아낌없는 조언을 조심스런 태도로 전한다. 대선배인 이선희, 김종진은 같이 무대 위에서 연주하면 소원이 없겠다.” “코러스해주고 싶은 마음이라는 말로 찬사를 대신한다. 그들이 무대를 보는 따스한 시선과 응원의 심정은 이름 없이 번호로 불리는 삭막한 설정을 불식시키고 무대에 온기를 더한다. 일반적인 경연과 다르게 웬만하면 바로 탈락 시키지 않고 탈락후보자, 슈퍼어게인, 패자부활전 제도를 통해 재기의 기회를 촘촘히 부여한다.

조작까지 일삼던 Mnet과 달리 출연자의 상품성을 따지며 생기는 편견도 없다. 간혹 몇몇 참가자들에게 쏟아내는 극찬이 낯설게 느껴지고, 때로 심사평에 일관된 기준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캐릭터의 매력을 무대에서 찾기 때문에 평가는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무대가 아니었다면 오늘날 음악 산업에서 사장되다시피 한 락 보컬의 마력을 느끼기 어려웠을 테고, 심사위원단이 애정 하는 30호나 63호 같은 가수들의 끼와 음악성이 대중에 전달될 기회 마련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여전히 재능 넘치는 인재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이 설레게 만든다. 주목받지 못한 재능들의 존재는 단순히 즐기는 것 이상의 몰입을 형성한다. 말 그대로 <싱어게인>착한 오디션쇼인 이유다. 예능계를 장악한 식상한 음악예능, 절실함을 전시하며 긴장감을 조성하는 뻔한 오디션쇼가 따뜻한 축제의 장이 될 수 있음을 다시 보여줬다. 따뜻한 인간미와 다양한 세대와 장르를 아우르는 음악, 새로운 스타를 만나는 설렘으로 가득한 <싱어게인>은 프로그램 내 화법으로 따지자면 과거 TV콘텐츠의 최대선이었던 온 가족 콘텐츠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기대하게 만든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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