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마술사, 심사 타짜들의 오디션, ‘싱어게인2’

[엔터미디어=정덕현] “37호 저 분. 보컬 타짭니다.” JTBC 오디션 <싱어게인2>에서 유희열은 농담을 섞어 37호 가수의 놀라운 가창력을 상찬했다. 모두가 빵 터졌지만, 본인은 자못 진지한 얼굴로 심사평을 이어갔다. “본인은 아닌 척 하고 있지만 보세요. 저 하관은 노래를 못할 수 없는 하관입니다. 가왕의 하관. 후렴 부분 나오기 전에 막 긴장시키더니 옥타브를 뚝 떨어뜨려요. 갖고 노는 거예요. 우리를. 저분 타짭니다. 보통 분 아니에요.”

농담처럼 보이지만 37호 가수의 무대를 본 시청자들은 유희열의 이 말이 그저 농담처럼만 느껴지진 않는다. 이해리 심사위원의 말대로 김범수가 떠오르는 37호 가수는 정인의 ‘오르막길’을 말 그대로 마음대로 갖고 놀 정도로 자유자재의 보컬 실력을 보여줬으니 말이다. 청자들의 마음을 쥐락펴락 하며 긴장하게 했다가 이완시켰다가 하는 가수. ‘보컬 타짜’라는 표현이 얼토당토한 농담만은 아니라 여겨질 수밖에 없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어떤 출연자가 나오는가 하는 점이라는 건 상식이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그 출연자들의 옥석을 가려내고, 때론 잠재된 능력을 끄집어내주는 심사위원들의 심사다. 그런 점에서 보면 <싱어게인2>의 심사위원들은 유희열의 표현을 빌리자면 ‘심사 타짜’가 분명하다. 이들의 심사평을 듣다 보면 어디서 저런 적확하면서도 은유적이고 심지어 문학적이기까지 한 표현들이 나올까 싶은 생각이 든다.

<싱어게인2>보다는 <슈퍼밴드>가 더 어울려 보이는 13호 가수가 제시의 ‘어떤 X’를 록 버전으로 부르며 만만찮은 기타실력을 보여줬을 때 유희열의 심사평은 그가 얼마나 세심하고 재치가 넘치는가를 잘 보여준다. “아니 슈퍼밴드 아쉽다고 하셨는데 아쉬워하실 것 없습니다. 제가 있잖아요. 그 아쉬움을 달래드리기 위해서 슈퍼밴드식의 평가를 하자면 프런트맨으로서 최고의 역량을 갖고 계시고요..”

어찌 보면 음정이 다소 불안하게 들리지만 자신을 ‘말하는 가수’라 표현한 것처럼 어찌 들으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빠져드는 노래를 선사한 53호 가수에 대해 윤도현과 규현이 전한 심사평은 이 가수의 매력을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노래 한 곡으로 수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신 무대였던 것 같습니다. 내 옆에서 얘기해주는 것 같고 제 어깨를 누군가 만져 주는 것 같고 말하는 가수라는 수식어가 너무 잘 어울리는 무대였던 것 같았습니다. 감동받았습니다.(윤도현)” “멜로디가 가진 힘이란 게 있잖아요. 저는 멜로디를 들었는지 이야기를 들었는지 분간이 안갈 정도로 가사에 대한 전달이 되게 많이 됐던 것 같아요.(규현)”

심사위원이 그저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라 무대에 어렵게 오른 출연자들의 개성과 가능성을 찾아내고 극대화하는 자리라는 걸 <싱어게인2>의 심사는 보여준다. 심사위원들은 그래서 권위를 세우기보다는 너무나 깊은 애정의 시선으로 무대를 바라보고, 그런 마음은 심사평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너무 우리 70호님이 정말 몽글몽글하게 생기셨어요. 마치 연두부처럼. 그런데 갑자기 ‘아침에 사과-’ 하시니까...(선미)”

너무나 굵직한 허스키 보이스로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통해 짙은 호소력을 전한 33호 가수에 대해 규현은 “가면 갈수록 어게인을 더 누를 순 없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남의 걸 제가 누르고 싶을 정도”였다고 매력을 전했고, 이해리는 말할 때와 너무 다른 톤이 나와서 놀랐다며 그 놀라움을 “성대가 교체가 되는 건지”라는 말로 표현했다. 보컬 실력에 더 집중하는 이선희 심사위원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묵직한 남성 보컬의 짙음을 내가 언제 들어봤지 라는 생각을 했어요. 33호님만이 주는 이 쓸쓸함과 고독함이 너무 좋은 거예요.”

최고령 가수로서 우리에게는 배따라기 멤버로 잘 알려진 39호 가수에 대해 민호가 “오히려 트렌디하다”고 표현하며 “같이 작업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말하고, 피아노 연주와 더불어 다양한 보컬의 맛을 들려준 10호 가수에게 유희열이 “머리 속으로 상상한 걸 실현 해버리면 어떡하냐”고 심사평을 내놓는다.

그렇다고 모든 출연자들을 상찬하지만은 않는다. 음주운전으로 가수 활동을 접었다 다시 나온 30호 가수의 경우에는 보다 냉정한 심사평을 내놓기도 한다. “나는 직업이 가수다, 라고 본인을 밝혀주셨어요. 본인의 잘못으로 실직을 하신 분이에요. 다시 직업을 구하고자 싱어게인에 구직서 지원서를 내신 겁니다. 그리고 저희들은 예전의 선후배 관계가 아니고 면접관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직업은 결과로 얘기하는 자리잖아요. 저희는 무대를 보고 음악을 평가를 할 거구요, 벌어질 냉혹한 현실은 본인이 감내하셔야 할 거구요. 그걸 역전시키고 앞으로 끌고 나가셔야 할 일도 본인에게 달려 있습니다.(유희열)”

우리에게 이미 <슈퍼밴드>와 <포커스>에 나와 독보적인 음색으로 널리 알려진 73호 가수 이주혁에 대한 김이나의 심사평은 청각을 후각으로 표현해낼 정도로 문학적이다. “전 정말 특이한 경험이었어요. 후각을 자극하는 목소리는 처음이어 가지고. 우리가 겨울이 왔다 라는 걸 처음 아는 게 온도보다 바람 냄새에서 알잖아요. 그런 느낌이었어요. 되게 뭔가 차갑고 깨끗하고... ‘냄새가 나는 보컬’이라고 하니까 말이 좀 이상해지는데...”

거의 언어의 마술사들 같은 심사위원들이다. 이들의 가감 없는 리액션과 너무나 공감가는 표현들은 <싱어게인>처럼 다시 노래 부르기를 원하는 이들이 서는 무대를 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아닐 수 없다. 평가가 아니라 공감을 해주며, 섬세한 감수성으로 해석된 이야기로 공감대를 넓혀주는 역할. 실로 ‘심사 타짜’라 불러도 될 법한 이들이 있어 <싱어게인2>라는 오디션이 빛나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