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반대의 색깔 금토드라마 쌍강 ‘원 더 우먼’ vs ‘검은 태양’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적어도 시청률에 있어서 금토드라마 경쟁에 승리자는 SBS <원 더 우먼>이 되고 있다. 7회에 <원 더 우먼>은 15%(닐슨 코리아)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쌍강구도를 그리고 있는 MBC <검은 태양> 역시 선전하고 있지만 3회에 최고시청률 9.8%를 기록한 이후 7회에는 8.4%로 하향세다. 시청률이 드라마의 성패나 성취를 말해주는 잣대가 되던 시대는 지났지만, 적어도 주말에 시청자들이 어떤 드라마에 채널을 돌리고, 그 어떤 요소가 동인으로 작동하며 거기에는 현 대중들의 어떤 정서들이 반영되어 있는지는 들여다볼 수 있다. 과연 이 흐름은 뭘 말해주는 걸까.

완전히 다른 장르이고 접근방식도 다른 두 작품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원 더 우먼>과 <검은 태양>은 그 색깔이나 소재, 방향성이 정반대라는 점에서 비교가 흥미로운 면이 있다. 먼저 두 작품은 모두 원 톱 주인공이 이끌고 가는 드라마다. 그런데 두 작품을 끌고 가는 주인공의 성별이 다르다. <원 더 우먼>은 어쩌다 사고를 당해 기억을 상실한 채 재벌가 며느리가 된 부패한 검사 조연주(이하늬)가 원톱인 드라마. 재벌가라는 지점과, 며느리이자 검사라는 지점은 부정한 세상과 싸우는 안티 히어로에 가부장적 세상과 대적하는 여성을 판타지로 세워놓았다.

반면 <검은 태양>은 국정원 요원으로 임무를 수행하다 실종된 한지혁(남궁민)이 국정원 내부에 존재하는 배신자이자 적폐세력들과 홀로 맞서 싸우는 드라마다. 그는 그 적폐세력들을 찾아내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기억을 지운 채 국정원으로 돌아와 사건들을 해결해가며 저들의 실체에 접근한다. 엄청난 운동으로 벌크업한 남궁민이 연기해 보여주는 강렬한 액션과 베일에 가려진 국정원 내부의 세력과의 팽팽한 대결이 몰입감을 주는 드라마로 다소 마초적인 남성 판타지가 드라마의 중요한 동력이다.

<원 더 우먼>과 <검은 태양>은 각각 여성과 남성 판타지를 내세우고 있을 뿐만 아니라, 드라마의 색깔로 상반된다. <원 더 우먼>은 가벼운 코미디를 전면에 내세웠고, 장르적으로도 액션이 들어 있긴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에 가깝다. 그래서 발랄한 이 여성 캐릭터는 검사이자 재벌가 며느리 역할의 양다리를 걸친 채 그에게 점점 호감을 갖게 되는 한승욱(이상윤)과의 티키타카 멜로를 선보인다.

반면 <검은 태양>은 무겁고 진지한 스파이물과 스릴러 장르를 선택했다. 한지혁은 국정원의 거의 모든 사람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들여다본다. 기억을 스스로 지워버린 것도 어떤 선입견을 없애려는 선택이었을 테다. 그러니 관계에서의 끈끈함이 결코 만들어질 수 없다. 파트너인 유제이(김지은)와 함께 사건을 추적해도 멜로 관계는 전무하고, 사적으로 도움을 주는 천명기(현봉식) 같은 인물과도 동료애나 우정 같은 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드라마가 드라이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이렇게 완전히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두 드라마지만, 공교롭게도 비슷한 지점은 <원 더 우먼>의 조연주나 <검은 태양>의 한지혁 모두 기억을 잃고 정체성의 혼돈을 겪으며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물론 이들이 겪는 정체성의 혼돈은 드라마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활용된다. <원 더 우먼>은 ‘왕자와 거지’ 판타지를 공고히 하는 방식으로 활용되는 반면, <검은 태양>은 마치 ‘오이디푸스’처럼 사건을 추적하다 자신을 만나게 되는 방식으로 활용된다.

물론 두 드라마가 전혀 다른 방식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사뭇 사회비판적이다. <원 더 우먼>은 재벌가 며느리로서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사법현실이 피해자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도 담고 있다. 조연주 검사는 그래서 집안에서는 재벌가 며느리로서 싸우고 집 밖에서는 그들이 결탁한 법조계 카르텔과 싸우는 입장이 된다. <검은 태양>은 한지혁이 국정원 내부의 배신자들을 찾아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지만, 거기에는 또한 그간 국정원에서 해왔던 일련의 부정과 비리들(이를테면 민간인 사찰 같은)에 대한 비판도 담겨 있다. 한지혁이 하고 있는 싸움이 국정원의 쇄신과 적폐청산의 이야기처럼 보이는 이유다.

<원 더 우먼>과 <검은 태양>이 건드리고 있는 판타지와 대중정서는 그 상반된 성격만큼 다르다. <원 더 우먼>은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여성 판타지를 속 시원한 사이다로 담는다. 조연주가 핍박받던 재벌가 며느리에서 할 말은 다 하는 인물로 변신하는 모습은 가부장적 체계가 가정에서부터 사회에까지 여전한 현실의 억압을 마구 풀어내주는 판타지를 준다. 반면 <검은 태양>의 한지혁은 ‘강한 남자’에 대한 전형적인 영웅 서사 판타지를 담고 있다. 시청률에 있어서 <원 더 우먼>이 <검은 태양>을 압도한 건, 작품의 완성도나 성취와 상관없이 현 시점에서 대중들의 시선이 어느 쪽을 더 향할까 하는 ‘기획’에서 만들어진 판가름이라고 보인다.

여성 서사가 우선적으로 시선을 잡아끄는 게 최근의 경향이고, 무엇보다 복잡한 이야기 구조보다 단순 명쾌한 대결구도가 펼쳐짐으로서, 당장의 사이다나 달달함을 주는 드라마에 시청자들은 시선을 준다. 어떤 면에서 보면 진지한 고민을 외면하는 이런 관점의 변화는 다소 퇴행적인 면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것 역시 갑갑하고 고구마만 가득한 현실의 반영이라는 건 분명하다. 그래서 <원 더 우먼>의 코믹이 <검은 태양>의 진지함을 이긴 이유를 들여다보면 현재의 대중들이 갖고 있는 마음이 읽힌다. 너무도 갑갑하고 답답한 현실 속에서 다소 힘들어도 근본적 원인을 찾아가려는 진지함을 버텨내기보다는 당장 시원함을 원하는 갈증의 갈급함이 바로 그것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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