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태양’ 벌크업 성공한 남궁민, 여전히 ‘믿보배’가 틀림없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시작부터 강렬하다. 그런데 그 강렬함은 거대해진 스케일이나 19금 표현 수위 때문만은 아니다. 피칠갑을 한 채 마치 가까스로 무인도에서 탈출한 로빈슨 크루소 같은 털복숭이 얼굴에 터질 듯한 맨몸 근육으로 씹어 먹을 듯 노려보는 눈빛으로 등장한 남궁민 덕분이다. MBC 금토드라마 <검은 태양>은 그 짧은 한 장면의 강렬함으로 먼저 시선을 잡아끌었다.

한지혁이라는 인물의 첫 등장으로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는 남궁민은, 이 드라마를 위해 벌크업을 했다. 덩치나 온몸의 근육만으로도 위압감을 주는 인물을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은 첫 회부터 효과를 발휘했다. 국정원의 비밀 작전을 수행하던 중 어느 순간 증발했다, 중국인 밀항선에서 갑자기 등장한 그가 배 위에서 밀항자들의 장기적출을 해 팔아먹으려는 이들을 하나하나 도륙하는 장면에서 그 만들어진 몸이 이 인물에 강력한 인상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터질 듯한 근육질 몸에 난 상처들과 누군가에 의해 주입된 약물로 그간의 기억이 모두 지워져 텅 비어버린 눈빛은 그가 실종된 후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건드리면 언제든 야수로 돌변해 물어뜯을 것 같은 긴장감은, 그 텅 빈 눈빛으로 가만히 앉아 있는 자세에서 더 커진다. 아마도 남궁민은 <검은 태양> 초반의 긴장감이 온전히 자기 자신이 만들어내는 위압감과 궁금증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알았을 게다. 그래서 몸을 만들고 표정을 찾아내 하나씩 이 인물을 빌드업 했을 테고.

사실 국정원이 등장하는 이야기와, 기억을 잃은 요원, 어떤 사건 뒤에 숨겨진 음모 같은 스토리들은 그리 새롭다고 보긴 어렵다. 이미 <본 아이덴티티> 같은 영화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던 <아이리스>나 <아테나> 스타일의 블록버스터 드라마들이 이런 캐릭터들을 그린 바 있기 때문이다. 방영찬(김병기) 국정원장이나 정용태(김민상) 국정원 안보수사국 국장, 이인환(이경영) 국정원 국내파트 1차장 같은 국정원 고위급 인물들은 등장부터 1년 전 증발됐던 한지혁이 나타난 사실에 대해 귀찮아하는 모습으로 어딘가 이 음모와 연관된 느낌을 준다. 결국 한지혁이 향하는 칼은 이들 국정원 고위 간부들과 결탁된 어떤 그림자 세력(검은 태양이란 제목은 여기서 나온 듯 하다)일 게다.

다소 뻔할 수 있는 구도지만, 드라마는 첫 회 마지막 장면에서 한지혁이 기억을 잃은 것이 국정원 내부의 쥐새끼를 잡아내기 위한 스스로의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냄으로써 색다른 전개로 방향을 튼다. 기억을 갖고 있던 자신이 향후 기억을 잃을 자신을 향해 남긴 영상을 보게 된 한지혁은 이제 무엇 때문에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가를 찾아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숨겨져 있는 거대한 괴물과 마주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검은 태양>의 첫 회는 주인공이 스스로의 기억을 찾아내고, 기억까지 지우면서 조직 내 어떤 어둠의 세력을 찾아야 하는 미션을 제시하며 끝을 맺는다. 결국 드라마의 향후 스토리 역시 한지혁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만큼 이 인물 연기를 맡은 남궁민이 얼마나 시청자들을 몰입시키고 공감하게 만드는가에 그 성패가 갈릴 수밖에 없다.

제작비 150억은 최근 제작규모가 갈수록 커지는 드라마업계에서 엄청나게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다고 보기도 어렵다. 최근 거의 1년 넘게 이렇다 할 드라마를 내놓지 못하고 있던 MBC로서는 <검은 태양>에 거는 기대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제작규모도 규모지만, 이렇게 과감하게 투자한 작품마저 잘 안되면 MBC드라마 자체가 휘청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건 남궁민이라는 배우가 역시 믿을만한 연기력과 노력을 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몸을 만들고 말투나 표정 같은 것들을 하나하나 쌓아 축조해 놓은 캐릭터가 시청자들로 하여금 기꺼이 멱살을 내주고픈 몰입감을 주고 있어서다. 첫 회 시청률은 7.2%(닐슨 코리아). 동시간대 경쟁작인 SBS <원더우먼>의 8.2%보다 근소한 차이로 뒤지고 있지만 실망할 만큼 낮은 수치는 결코 아니다.

물론 전체적으로 너무 어두운 분위기와 더불어 남주인공만큼 주목되는 여주인공의 존재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스파이 액션물이 주는 스릴러의 묘미와 기억을 찾아가며 맞닥뜨리게 되는 어떤 음모 세력과의 대결이라는 장르물 특유의 팽팽한 긴장감을 즐기는 분들이라면 충분히 남궁민이 멱살 쥐고 끌고 가는 이 드라마에 매력을 느낄 게다. 남궁민은 과연 이 드라마를 성공시킴으로써 MBC드라마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낼 수 있을까. 향후 행보가 자못 궁금해진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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