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난·역사·판타지·미스터리까지 ‘지리산’이 품은 다양한 재미요소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조난자와 구조대. 산을 소재로 하는 스토리는 다소 익숙하다. 골든타임 안에 조난당한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는 레인저들의 긴박한 과정들이 담기기 마련이다. tvN 토일드라마 <지리산> 첫 회도 그 익숙한 스토리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기상악화로 인해 입산 자체가 위험한 지리산에서, 조난자를 찾아 구출하는 과정이 첫 회 70분 분량에 50분을 채웠다.

단조로워 보일 수 있는 구출과정은 폭우가 쏟아져 급격히 불어난 계곡물의 위협 속에서 조난자를 찾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장면이나, 미끄러운 바위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올라가는 장면 같은 긴박한 영상들로 채워지면서 몰입감을 높였다. 그 과정에서 지리산은 여러 얼굴을 드러냈다. 평화롭고 신비롭기까지 한 얼굴에서 순식간에 모두를 잡아먹을 것 같은 공포의 얼굴까지 가진 여러 얼굴들을 보여준 것.

이러한 지리산의 여러 얼굴은 향후 이 드라마가 생각보다 다채로운 스토리들로 채워질 거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조난자를 구조하는 그 긴박한 스토리는 물론이고, 빨치산의 아픈 역사와 얽혀진 미스터리가 펼쳐질 전망이다. 게다가 김은희 작가라 빠지지 않을 살인사건 또한 등장하지 않을까.

산에 이성으로 설명하기 힘든 기운이 있다거나, 조난자가 구조됐던 상수리 바위에서 발견된 빨치산들이 사용하던 연락수단으로서의 표식이 등장하고, 강현조(주지훈)가 조난자들의 모습을 보는 능력을 가졌다는 등의 설정들은 <지리산>에 여러 장르적 색채를 부여한다. 오컬트적 신비로움이 더해지기도 하고, 역사의 비극이 덧붙이지기도 하며 나아가 판타지적 색깔이 묻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2018년 강현조와 서이강(전지현)이 처음 만나 조난자를 구조했던 그 시간대에서 드라마는 급작스레 뛰어넘어 2020년으로 넘어간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지리산 국립공원 해동분소를 떠났던 서이강이 다시 돌아온다.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그리고 강현조는 2019년 12월 20일 수술을 받고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에 누워 있다. 이들 사이에 무언가 사건이 벌어졌다는 걸 암시하는 것으로 궁금증으로 증폭시킨 것.

게다가 서이강이 돌아온 이유가 흥미롭다. 조난자들을 구조한 사진 속에서 일련의 빨치산 표식이 모두 들어 있었던 것. 강현조와 자신만이 아는 그 표식을 발견하게 된 서이강은 누군가 자신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다며 자신이 돌아온 이유가 그것이라고 말한다. <지리산>은 그래서 앞으로 과거에 벌어진 사건들과 연관되어 있을 미스터리를 서이강이 풀어나가는 과정이 그려질 것으로 보인다.

실종된 지 한 달이 넘게 구조대원들이 찾아 나섰지만 결국 찾지 못해 수색을 마무리하려던 중 서이강의 조언으로 개암폭포 근처에서 발견된 조난자 양근탁의 가방과 해골 역시 미스터리다. 그 해골은 과연 조난당한 시신일까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살해 유기된 시신일까. 서이강이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추리 과정이 더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과연 <지리산>은 어떤 결의 이야기로 풀어질까. 조난자를 보는 능력(능력이라기보다는 환영 같지만)을 가진 강현조의 판타지일까, 아니면 누군가 치밀하게 꾸며놓은 음모에 의해 만들어진 미스터리와 그걸 풀어나가는 서이강의 추리 스릴러일까. 아니면 이 두 가지가 모두 뒤섞인 형태의 이야기일까.

사실 산은 그저 산일뿐이다. 하지만 그 산에 투영되는 인간의 여러 욕망들과 감정들이 겹쳐져 그 산이 여러 얼굴을 가진 존재처럼 느껴진다. <지리산>은 그래서 어쩌면 인간의 욕망들을 드러내는 리트머스지 같은 공간으로서 산을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앞으로 어떤 욕망들이 이 산에 투영될까. 첫 회에 담긴 여러 요소들이 산 위에 포자처럼 뿌려져 꿈틀꿈틀 그 욕망의 얼굴들을 드러내려 하는 중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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